[Opinion] 내 안의 블루와 마주보다 [음악]

9와 숫자들의 EP [토털리 블루]를 통해서 본 우울과 희망
글 입력 2022.03.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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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봄의 시작, 다시 밤 산책을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그리고 내 생일이 있는 특별한 나의 3월! 매년 이맘때쯤 엔 새학기 준비하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늘 약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새로운 것 하나 없이 고요하고 지루하게 3월을 맞이했다. 그래서일까? 봄의 시작과 함께 우울이 찾아왔다.

 

우울을 해소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타인과 거리를 두고 혼자 그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편이다. 나의 우울이 타인에게 전이되는 게 싫을 뿐만 아니라, 결국 우울은 스스로만이 처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특히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럴 때 음악은 내가 우울에 충분히 담겨있다가 그 상태로부터 잘 걸어 나올 수 있게끔 많은 도움을 준다.

 

많이 걷고 많이 들으며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던 중 잔잔하지만 따스하게 우울을 어루만지는 앨범을 발견했다. 우리는 각자 다른 형태와 깊이의 우울을 가지고 있지만 이 앨범이라면 그 누구에게 닿더라도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올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나의 우울을 보듬어준 앨범, '9와 숫자들'의 <토털리 블루>를 여러분들과 함께 향유하고자 한다.

 

 

*

필자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9와 숫자들 <토털리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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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소개


What's your color? Mine is blue.


'토털리 블루'는 '수렴과 발산'(2016), '서울시 여러분'(2019)의 사이인 2017년 경에 처음 기획되었으나 완성되기까지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철저한 기획 하에 제작한 '서울시 여러분'과는 정반대로 한 곡, 한 곡이 자연스럽게 차오르고 무르익을 때까지 천천히 매만진 결과이다.


기획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던 코로나19라는 시대적 비극으로 인해, 9와 숫자들의 색으로 내세우자고 했던 블루가 모두의 색이 됐다.


우울과 아픔, 죽음이 만연한 이 시대에 우울을 노래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다만 우리는 우울을 직시하는 것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작이라고 믿으며, 누구도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는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토털리 블루'는 희망을 찾기 위한 우울의 향연이다.

 

/앨범 소개글 中

 

 

 

1. 나들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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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어제에 당당하고

내일 앞에 초연할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모든 게 낯설어

나의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닌 것 같아"

 

9와 숫자들 - 나들의 날들, [토털리 블루 中]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가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또 전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슬퍼질 때도 있다. 어렸을 때 내가 상상하던 어른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끝이 없는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처럼 계속해서 방황중이다. 나의 삶의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필자의 원픽. 꽤 오랫동안 필자의 메신저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되어 있던 곡이다. 가사는 우울 한 겹 껴있는 듯한 우리 존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 멜로디는 꽤나 밝고 경쾌해서 자꾸 흥얼거리게 된다.

 

 

 

2. 푸른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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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책 속에 묻혀

밤새도록 영화에 빠져

감명 깊은 글귀 멋진 대사가

내 삶을 대변할 순 없지만"

 

9와 숫자들 - 푸른 피, [토털리 블루 中]

 

 

가만히 보고 있으면 푸르스름한 기운이 느껴지는, 본래부터 푸른 피를 가지고 태어났을 것만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괜찮냐 물으면, 푸른 피를 가진 그 사람은 덤덤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겠지. 나는 날 때부터 남들보다 푸른 피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그래서 슬픔을 이해하고 행복에 닿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천천히 따라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태어나기를 남들보다 쉽게 우울에 빠지는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닐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감당하기 버거워 자주 우울에 빠졌던 시절의 내가 떠오르는 트랙이다. 특히 '슬픔이 너무 어려워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니까'라는 가사를 보며 우울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책을 찾아 읽고 상담을 다니며 나의 상태를 공부하던 내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는 나의 우울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푸른 피’가 남들에게 드러날까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도와 부피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각자의 블루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푸른 피를 가진 사람이면 뭐 어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덤덤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늦더라도 행복에 닿게 될 것이다.

 

 

 

3. 토털리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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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밤이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때마다 마주한 암흑이 무서웠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눈이 밝아져 방안의 사물들이 안도감과 함께 하나 둘 떠오르던 기억.

 

/ ‘토털리블루’ 곡소개 中

 

 

"내 손이 닿기만 하면

파랗게 변해버리는 모든 것들

It's totally blue

I'm completely blue"

 

9와 숫자들 - 토털리 블루, [토털리 블루 中]

 

 

세번째 트랙<토털리블루>. 앨범 제목과 동명의 노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앨범이 전하고자하는정서와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로 다가온다. 듣고 있으면 우울에 침잠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앨범 소개글 중 ”다만 우리는 우울을 직시하는 것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한 시작이라고 믿는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떠올랐다. 나의 깊은 우울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다음단계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4. 죽지는 마


  


 

 

울어도 돼

부숴도 돼

싸워도 괜찮아 죽지는 마

멈춰도 돼

던져도 돼

쉬어도 괜찮아

죽지는 마

 

9와 숫자들 - 죽지는 마, [토털리 블루 中]

 

 

우울과의 투쟁 중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다. 내가 그의 우울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그에게 상처가 될까 봐 말을 삼키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우울이 깊어져 죽음까지도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건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하는 일, 괜찮아지길 기도하는 일, 생각하는 일뿐이겠지.


그 사람에게 나는 이 노래를 보내고 싶다.

 

 

 

5.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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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도 없고 주제도 없어요

떨쳐낼 수 없는 여운만 남아

내 모든 말들은

소설이 아닌 시가돼요

앞뒤도 맞지않는 서툰 단어로 쓰인"

 

9와 숫자들 - 소설, [토털리 블루 中]

  


사랑 앞에선 모든게 무력화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이 된다. 화자는 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서툰 마음이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6. 파도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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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거가 추억일 수 없듯

모든 미래가 축복일 수는 없어

이토록 거대한 파란 앞에선

지금의 숨을 지켜내는 것밖에"

 

9와 숫자들 - 파도에 맞서, [토털리 블루 中]

 


앨범의 마지막 트랙. 어린아이들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트랙이다. 곡의 중반부에서 솔로 보컬로 반복되는 ‘파도에 맞서’는 후반부에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로 확장되며, 이 파도에 맞서고 있는게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청자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모든 과거가 추억일 수 없듯 모든 미래가 축복일 수는 없다'라는 가사처럼 우리의 삶은 수많은 굴곡의 연속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백번 수 천번 마주할 파도를 피하지 않고 헤쳐나갈 수있는 잔잔하지만 단단한 용기와 희망을 건네받으며 [토털리 블루]의 막을 내린다.

 

 

‘토털리 블루’는 희망을 찾기 위한 우울의 향연이다.

 

/ 앨범 소개글 中

 

  

앨범 제목도, 앨범 커버도 그리고 수록곡 들도 온통 파랗지만 오히려 따스하게 남은 앨범이다. 이 앨범이 나의 블루를 어루만졌듯, 각자의 파도에 맞서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큰 용기와 희망으로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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