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아름다운 실내악 산책, 제19회 앙상블오푸스 정기연주회

글 입력 2022.03.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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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앙상블오푸스와 함께하는 산책.jpg


3월 초에 접어들면서 예년보다 일찍 날이 풀렸다. 아직 삼한사온일 법한데, 봄 기운이 물씬 나는 기온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출근길에 그 기온차가 확연히 느껴져서, 이렇게 또 계절이 바뀌어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앙상블오푸스의 제19회 정기연주회를 기다리는 것도 더욱 즐거웠다. 펜데레츠키, 드뷔시 그리고 프랑크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무대를 두고, 앙상블오푸스는 '산책'이라는 부제를 달 만큼 즐거운 시간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산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듣기에는 사실 마냥 가벼운 작품들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뷔시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을 제외하면, 펜데레츠키나 프랑크의 작품은 모두 단조곡으로 무게감이 있다.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며 작품을 미리 들어볼 때, 펜데레츠키의 샤콘느나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는 다소 심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며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났다. 진중하고 무거운 데다가, 결코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을 수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펜데레츠키와 프랑크의 작품 사이로 있는 드뷔시의 작품은 봄날 같으면서 아주 아름답고 즐거운 작품이었다. 이번 앙상블오푸스의 무대에서 가장 윤활유 역할을 해 줄 작품이라는 생각에, 공연 전에 드뷔시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날씨도 봄처럼 온화해져서 더더욱 드뷔시와 어울리는 연주회 당일을 맞을 수 있어서 좋았다.


 



PROGRAM


크쉬슈토프 펜데레츠키  샤콘느 (편곡: 류재준)

Krzysztof Penderecki  Ciccona per violino, violoncello e Pianoforte (arranged by Jeajoon Ryu)

Vn. 백주영, Vc. 심준호, Pf. 김규연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 삼중주 1번 

Claude Debussy  Piano Trio No. 1 in G Major

Vn. 김다미, Vc. 심준호, Pf. 김규연

I. Andantino con moto allegro

II. Scherzo-Intermezzo. Moderato con allegro

III. Andante espressivo

IV. Finale. Appassionato


INTERMISSION


세자르 프랑크  피아노 오중주, M.7

César Franck  Piano Quintet in F Minor, M. 7 

Vn. 김다미, 백주영, Va. 김상진, Vc. 심준호, Pf.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I. Molto moderato quasi lento

II. Lento, con molto sentimento

III. Allegro non troppo, ma con fuoco

 




이번 무대의 첫 곡은 펜데레츠키의 <폴란드 레퀴엠> 중 4악장인 샤콘느였다. 악장의 도입부부터 서글픔과 비통함이 한없이 느껴졌다. 특히 원곡에서는 오케스트라만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류재준이 자신의 스승인 펜데레츠키를 기리는 편곡 작업을 통해 피아노를 포함시켰다.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손끝에서 나오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소리는 원곡 버전에서 관악파트가 해주던 무게감 있고 감싸안는 소리를 자연스럽게 대체해주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삼중주의 규모를 비교하면 당연히 실내악 편성이 훨씬 스케일이 작다. 그런데도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첼리스트 심준호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샤콘느는 원래 관현악 버전의 샤콘느보다 훨씬 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비애의 감정이 시작부터 깊고 짙게 느껴졌는데, 그 격렬한 슬픔이 아홉 번 변주되는 동안 감정이 더욱 절정으로 치달았다. 슬픔의 변화 끝에, 선율은 끝내 모호하게 끝맺어졌다. 아스라이 사라져버리는 그 피날레 후, 모든 것이 멎어버린 듯한 정적이 가슴에 사무쳤다. 가슴을 비집고 나오는 탄식과 함께 박수를 보내게 되는 첫 곡이었다.

 

*


이어지는 1부의 두 번째 작품은 바로 드뷔시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이었다. 이번 앙상블오푸스의 공연을 기다리며 작품을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가장 듣기 쉬운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난해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다채롭고 아름다우며 감각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듣기만 해도 드뷔시의 서정적인 감성에 빠져들 수 있는 이 작품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앙상블오푸스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김다미를 교체하여 무대 위에 세웠다.


1악장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부드러운 도입에 이어 먼저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가, 그리고 뒤이어 첼리스트 심준호가 도입부의 주제 선율을 이어받았다. 복잡하거나 부담스러운 대목 없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선율이 연이어 전개되는데,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꿈결같이 아름다워서 낭만적이었다. 특히 김다미의 바이올린이 저며들 듯한 날카로움보다 부드러움을 주로 전해주어서 녹을 것 같이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1악장을 이어받는 2악장 스케르초는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피아노의 포르테로 시작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나름의 긴장감을 형성하며 시작한다. 뒤이어 2악장의 주제가 연주되는데, 마치 봄날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아름답고 익살스럽다. 이 장난스러운 드뷔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연주자 세 명 모두 몰입 상태로 연주하면서 몸으로도 음악을 표현했는데 객석에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자세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나를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주 짧은 악장이지만 드뷔시의 위트가 가득해 인상적이었다.


스케르초 악장에 이은 3악장 안단테는 느리게 전환되면서 드뷔시의 깊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악장이다. 애수 어린 듯하면서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도 느껴지는 듯 여러 감정을 담은 안단테는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세부적으로 들렸다. 음원으로 들을 때에는 특히 세 악기가 함께 연주될 때 바이올린이나 첼로 선율이 주가 되어 들렸는데 현장에서는 피아니스트 김규연이 현악의 세밀한 소리 사이로 끝없이 일렁이듯 밀어넣는 피아노 소리가 깊게 와닿았다.


마지막 4악장은 열정이 가득하다. 빠르지만 여리게 시작에서 전환하여 열정으로 수놓는 피날레는 화려했다. 세 악기의 소리가 함께 강렬하게 연주되면서 선율이 얽혀드는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강렬한 피아노의 반주와 바이올린, 첼로의 유니즌은 정말 가슴 설레게 아름다웠다. 이미 성큼 다가온 봄을 미리 다 겪은 기분이었다. 올 봄이 드뷔시 피아노 삼중주 같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연주였다. 뜨겁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1.jpg



인터미션 후 이어진 2부는 프랑크의 피아노 오중주 한 곡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충분히 그럴 법한 배치였다. 이번 무대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대곡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 데다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존재감과 무게감만으로도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음원으로 들을 때에도 강렬한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현장에선 얼마나 놀라울지도 이 마지막 곡의 감상포인트 중 하나였다.


1악장은 1바이올린인 김다미의 강렬한 선율과 이를 잔잔한 화음으로 감싸는 현악부의 화음으로 시작했다. 김다미의 호흡에 백주영, 김상진 그리고 심준호 모두 하나의 선율처럼 어우러들며 강렬하게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이를 비집고 나오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 선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도입부의 피아노는 힘있는 소리라기보다 여린 소리에 가까운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담백한 소리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는 담백함보다 페달링되어 부드럽고 여린 느낌이 드는 소리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독주해야 하는 짧은 프레이즈 중에 순간적으로 피아노 소리가 나지 않는 그 찰나의 공백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렇게 여린 소리여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그러나 현악부가 강렬한 포르티시모로 가자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도 이에 대응하여 열렬하게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아마 필요한 데에 확실하게 악센트를 주기 위해 도입부는 대비되도록 힘을 빼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감 있는 소나타 형식의 1악장에서, 두껍게 덧칠한 유화처럼 치밀하게 선율을 덧씌우고 증폭시켜가는 전개는 과연 이번 공연의 클라이막스다웠다.


2악장은 통상적으로 노래악장에 해당하는, 느리고 감성적인 악장이다. 그래서인지 피아니시모의 적절한 사용이 아주 두드러졌다. 그러나 프랑크의 2악장은 마냥 느리고 우아하게 서정성을 펼쳐내는 악장이 아니었다. 부드럽게 주고 받는 듯한 음 사이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마치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가도 이를 좇지 않기로 결심한 것처럼, 침잠해가는 이 치열한 고뇌를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섬약함 속에 서려있는 이 비장함은 그야말로 비범했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1악장과 2악장의 악기 간 긴장감이 치열한 분투를 보이다가 끝내 뜨겁고 열렬한 코다를 통해 하나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일련의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섬세하게, 하지만 빠르게 질주하는 현악기 소리 사이로 피아노가 낮은 음을 내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강약을 넘나들며 피날레는 더욱 열렬해졌다. 그리고 격정적인 코다 말미에 이르러 강렬한 바이올린의 트레몰로와 이에 부응하는 비올라와 첼로, 화려함을 더하는 피아노까지 유니즌으로 이어져 질주하는 순간 느껴진 그 카타르시스란. 오늘의 무대는 이 순간을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압도적인 비르투오소로 2부를 압도해버린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비올리스트 김상진, 첼리스트 심준호 그리고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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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프랑크 피아노 5중주가 압도적이었던 만큼, 객석에서는 아주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손바닥에 불이 일 것처럼 쏟아지는 박수갈채가 이어지자 연주자들은 무대에 다시 나와 앵콜곡을 선보였다. 앵콜곡이 시작되자 생동감 넘치고 활력이 넘치는, 누가봐도 스케르초 악장이 분명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어떤 작품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박자감이 넘치고 어딘가 행진곡스러운 분위기가 아주 매력적이어서 이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가 앵콜의 말미까지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차 선율이 중간중간 아방가르드해지기 시작했다. 그로테스크하게 변화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앵콜 시작 도입부에서 느낄 수 있었던 평화롭고 일상적이게 보이는 표면 속에 내재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현대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 작품, 도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놀랍게도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오중주 3악장이었다. 앵콜곡 공지에서, 앙상블오푸스는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시점에 쇼스타코비치가 전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담았던 작품이라는 코멘트를 함께 게시했다. 너무나 뜻깊은 앵콜이 아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야욕을 드러낸 러시아,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여러 제재를 통해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서구 및 미국의 동맹국가들. 이 혼란의 시기를 거치는 와중에도 우리는 분명히 일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 내재된 불안감과 걱정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해설을 보기 전 앵콜곡을 듣는 와중에도 너무나 절묘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이라 이 탁월한 앵콜 선곡에 다시 한 번 압도되었다.


*


앙상블오푸스는 이번 제19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관객들을 아름다운 실내악 산책로로 인도했다. 동포이자 친구였던 교황 바오로 2세의 서거를 기린 펜데레츠키, 그리고 그런 스승을 기린 류재준의 편곡과 더불어 성큼 다가온 봄을 물씬 느끼게 해준 드뷔시의 작품, 또 강렬한 비르투오소에 압도될 수 있었던 프랑크의 작품까지 모두 관객들에게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순간을 선사하는 동시에 사색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산책이란 게 원래 내면이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순간이 아니던가.


불안한 국제정세를 생각하며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으로 앵콜까지 뜻깊게 선보이며 인상적인 무대를 마무리한 앙상블오푸스. 남은 올 한 해동안 이들은 또 어떤 무대로 관객들이 풍부하고 깊어질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줄까? 오푸스의 다가올 기획무대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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