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사되고 반짝이는 빛을 생각하기 - 빛이 매혹이 될때

보이는 것에 대한 탐구이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
글 입력 2022.03.0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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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로 적자면 '빛이 매혹이 될 때'는 과학과 예술을 빛으로 엮어낸 책, 미술사와 광학의 발전의 소개하며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과학자와 화가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 단적으로 1장 51쪽을 보면 '빛을 분석한 과학자들, 빛을 재현한 화가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과학자들은 물리적으로 빛의 속성을 밝히고 인간이 빛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을 파헤친다. 화가는 세상을 그림으로써 눈에 비친 세상을 자기의 방식으로 재현한다. 사물의 형상을 탐구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빛을 관찰하며 세상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민한다. 빛을 두고 다른 작업을 하지만 과학자와 화가는 서로의 발전에 영향을 받고 영감을 준다.


1장에서 3장의 내용은 미술의 흐름을 빛과 색채라는 테마로 살펴보는 느낌이 강하다.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화가들의 여러 가지 시도를 유명 작가와 작품을 통해 소개한다. 쇠라, 고흐, 페르메이르(베르메르), 세잔, 카라바조 등등 미술사의 거장들이 등장한다. 거장들이 작품에서 사용한 빛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빛에 대한 과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을 함께 서술하고 있는데, 중학교 시절에 머물러 있는 과학 상식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어렵거나 낯선 개념은 간단하게 언급하고 각 개념과 현상이 갖는 의미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광학의 발전이 미술에 영향을 준 일화도 함께 소개된다. 예를 들어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의 발견이 그림의 숨겨진 부분을 볼 수 있게 했다거나, 안료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게 되어 가품을 밝혀냈다거나 하는 일화들이다.


저자는 단순히 미술과 과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분야가 가진 공통점을 소개하며 둘을 엮어내려 한다. 가령 메타물질과 초현실주의는 쉽게 연관성을 찾기 어렵지만, 저자는 이 두 가지가 현실을 뒤틀어 본질을 파악하게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투명망토를 실현할 물질로 소개된 메타물질은 자연계에 없는 성질의 물질을 만들어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한다. 너무나 작아서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적당히 조작하여 현미경으로 볼 수 있도록 빛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다. 사실 실제 인식하는 것은 아니고 인식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고 한다.

 

이를 초현실주의 화가인 키리코와 달리와 연결지어 주제를 확장한다. 사물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하여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을 그려냈다.  2층 건물만한 장갑과 조각상이 벽에 달려 있는 모습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키리고가 생각하는 '사랑의 노래'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아렇게 서술된 내용을 보다보면 독자도 메타물질과 초현실주의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현에 방점을 두고 전개되던 미술사의 양상은 사진기와 함께 완전히 바뀌게 된다. 사진기가 등장하며 화가들은 그동안 세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사진기의 도움으로 좀더 정확하게 구도를 잡고 형상을 그릴 수 있기도 하지만, 재현을 역할을 사진기가 맡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에 대한 화가들의 실험과 탐구가 여러 사조로 등장한다.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이 나타났다. 색과 형상이 아닌 구도와 형태, 시점으로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던 무수한 시도들이 현대 미술사를 이끌어왔다. 보이는 빛을 넘어 보이지 않는 빛을 탐구했던 과학자들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를 저자는 '과학과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실존하는 것을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공유하며 이어져 있다.'고 썼다. 이 말을 풀어서 보자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계를 수면 위로 끌어오려는 노력이 미술과 과학 양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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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부터는 현대의 빛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좀 더 수준있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해진다. 원자 이론에서 시작해서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 역학까지 언급되기 때문이다. 정말 걱정됐지만 의외로 예전에 교과서에서 본 내용들이 흥미진진하게 소개되는 덕에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빛은 현미경과 같은 도구를 통해 작은 미시 세계도, 우주와 같은 거시 세계도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파란색 빛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LED 조명이 백색광이 도기려면 빨강 초록 파랑의 광원이 필요한데 파란색 LED의 개발이 어려웠다고 한다. LED에 전기가 통하면 전자들이 이동하면서 빛을 방출하게 되고 이때 나오는 빛의 파장에 따라 색상이 결정된다. 파란색의 경우 파장이 짧고 높은 에너지 준위를 필요로 했으나 이런 물질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1992년 일본인 과학자 세명이 질화칼륨이 파란 빛을 낸다는 것을 발견해내었고 지금의 백색 LED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라스피라줄리나 터키석 같은 보석을 안료로 써야 파란색을 만들 수 있어서 파란색이 굉장히 귀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주 고귀하고 특별한 인물에게만 푸른색을 사용했기에 오래전 그림에서 파란색으로 칠해진 인물은 주목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푸른 빛은 자연에 가득하지만 파란색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결국 과학의 발전으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색이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어 소개되는 내용은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다루고 있다. 교과서에서 배웠다시피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 이론이 정립되고 원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를 발견하게 된 과학사가 소개된다. 그런데 원자의 원리는 일반적 물리적 상식과 다르다. 양자역학을 따르고 있어 저자는 이를 물질과 물성이 완전히 다른 경우라고 정리했다.

 

*

 

빛 역시 양자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원리를 따른다. 그리고 빛은 중첩성을 지니고 있다. 입자면서 파동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인간이 관찰할 때는 입자나 파동인 성질 한 가지만 볼 수 있다. 이는 양자역학에서도 같은데, 대상의 상태가 관찰자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확률로만 이야기를 한다. '현상과 인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인간의 관찰 행위에 종속되는 것인가'하는 논란이 촉발되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슈뢰딩거 고양이' 사고 실험이다. 고양이가 죽었을까 살았을까. 열어보기 전까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인가? 사실은 미시 세계에서 이러한 중첩성이 나타나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결정된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은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가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로 발전했다. 이런 불확정성이 가득한 세계라면 세상은 혼돈과 가능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것만 같다.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하면서도 만약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작동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불확정성의 확률 세계에서 인간의 선택을 무수히 얽혀 가능성을 무한대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불확실한 세계기에 우리는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구성 요소를 파헤치려는 시도를 미술에 적용하면 기초적인 형태와 기초적인 색상으로 세상을 환원한 화가들이 등장한다. 화려한 모습도 결국엔 단순한 기본 도형과 색으로 구성해낸 화가들이다. 세잔, 피카소, 몬드리안, 후안 미로 등이 있다.


양자역학의 세계처럼 관찰자가 작품에 영향을 주는 작품도 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들이다. 해석자의 의미부여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완성된다는 아이디어는 미술의 의미를 완전히 바꾼 아이디어다. 양자역학이라는 내용을 지나고 나면 독자는 '그러면 모든 것이 주관과 상대성 속에서 펼쳐지는 것인가?'라는 회의 어린 생각에 잠길 수 있다. 한줄기 '빛'이 있다. 바로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빛은 세계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준다. 시간마저 상대적인 세상에서 빛의 속도는 언제나 같다.

 

심지어 빛의 부재는 또다른 존재를 설명한다. 빛을 반사시키지 않고 흡수하는 것은 새까맣게 보일 것이다. 아무런 빛이 없는 곳은 다시 말해 빛을 흡수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반증이 되고 그렇게 블랙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인간은 블랙홀 같은 안료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반타 블랙'은 칠해진 곳을 평면으로 만들어버린다. 반대로 빛으로 입체를 표현해내기도 한다. 홀로그램을 통해 기억을 재현해낸다. 

 

빛과 우주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내용 중 하나는 가장 멀리서 온 빛이 가장 오래된 빛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더 멀리서 온 빛을 찾게 된다면 아주 오래 전 우주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빛은 인간이 미시와 거시를 오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게 한다. 그림은 이 빛을 화면에 붙잡아 세상을 향한 인간의 탐구를 기록한다. 빛을 따라 과학사와 미술사를 쫓아왔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이들도 빛을 따라 우리의 궤적을 쫓아와줄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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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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