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옷을 통한 체험, OJOS(오호스)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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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바랜 것들에서 찾은 영감으로 색다른 현재를 만들어나간 집단’이라는 소개글처럼 OJOS(오호스)에서 만드는 옷들은 미래지향적이고, 한편으로 과거 한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발매된 22SS 시즌을 비롯해, OJOS라는 브랜드가 가진 특징을 잘 드러내는 컬렉션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20SS Millennium Bug
Y2K ; 날짜와 시간을 처리하지 못하는 정보 시스템
20SS 시즌, OJOS는 세기말과 새천년이 공존했던 2000년이라는 해에서 ‘날짜와 시간의 희소성’을 발견해 레트로 스타일을 선보였다.
멋스러운 실루엣의 쓰리피스 정장과 어깨 부분에 볼륨이 들어간 원피스, 넉넉한 핏의 데님 오버롤, 라인을 슬림하게 잡아주는 패턴 티셔츠 등 다양한 종류의 의류가 하나의 시대를 관통한다. 타이다이와 페이즐리, 스트라이프 등 오랫동안 사랑받아 고전적이면서도, 유행을 많이 타지 않는 패턴을 세련되게 활용한 것 또한 Y2K 스타일을 표현하려는 의도라 볼 수 있다.
수족관의 불빛이 어린 듯 오묘한 색상의 크롭 가디건과 화사한 빛의 페이즐리 원단에 퍼프 소매와 리본 등 사랑스러운 디테일을 더해 완성한 미니 원피스는 빈티지샵에서 운명적으로 만날 것 같은 빛바램을 간직하고 있다. 벨벳 소재에 나비 디테일로 포인트를 준 버터 셋업, 그리고 믹스된 스트라이프 패턴을 사용한 카니발 셋업 또한 지나치게 촌스럽지도, 너무 세련되지도 않게 복고풍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2020년에 재현한다.
20FW SHADOW OF SHADOW
‘어떤 이야기는 실화이지만, 꾸며낸 티가 역력한 로드무비’
모래먼지가 흩날리는 서부극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20FW 시즌은 컨셉에 충실한 아이템들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테마를 가장 잘 드러내는 건 비건 가죽으로 만들어진 웨스턴 풍의 셋업이다. 오래된 가죽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크랙처럼 보이는 패치워크는 마치 세월이 많이 많이 흐른 옷 같은 느낌을 주어, 서부개척시대에 낭만을 갖게 만든다.
하늘색 폴라 티셔츠에 베이지색 원단을 덧댄 티셔츠 또한 구조적인 디자인을 이용해 데미지가 들어간 부분을 흙먼지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20FW 시즌의 의류에 새겨진 의도적인 흔적들은 옷이 주는 가상의 기억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꾸며낸 티가 역력’하다는 게 곧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20FW 시즌의 주제인 로드무비란 주인공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영화를 뜻한다. 로드무비는 떠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여정 자체에 그 의미가 있다. 주인공은 목적지로 가는 동안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얻거나 잃기도 하며 성장을 하게 된다. OJOS가 만드는 옷에는 이처럼 가보지 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설렘이 담겨있다.
21SS ASIAN COOL
‘테이프 레코더와 신문 냄새. 버건디 네일. 88년 무궁화호. 텔레비전 마법. 키싱 피쉬. 드라이 토스트와 홍차. 자개 장식 머리핀. 파이프 시가렛’
21SS 시즌에는 화려한 패턴과 대비되게, 케이블 니트 소재의 원피스나 트레이닝 셋업, 오버사이즈의 맨투맨처럼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옷들이 많이 보인다. 일상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옷들은 모델의 헤어 스타일이나 메이크업, 공간과 어우러져 타임머신을 타고 OJOS가 영감을 얻은 시대로 이동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당시의 음악과 소품, 의복 등 문화를 드라마 속에 잘 담아내어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면, OJOS는 잘 꾸며진 세트장을 마련해 당대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그리움을 느껴볼 수 있게 한 셈이다. 고전 영화의 리마스터링이 오래된 영화를 현재의 발전된 기술력으로 복원하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가지듯, OJOS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환기하는 것을 넘어 난생처음 마주하는 추억을 가져다준다.
22SS Rehabilitation room
‘삐걱거리는 시간, 아무도 없는 방’
지난 2월 26일 발매된 이번 시즌의 테마는 회복실로, 이를 나타내듯 의료품을 연상시키는 아이템이 많이 보인다. 바람막이나 저지 집업 등 활동성을 고려한 옷이 주를 이루는데, 착용자의 움직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회복실이라는 테마 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얇고 가벼운 소재를 주로 사용했다는 점, 몸선을 드러내는 옷이 많다는 점, 바지 밑에 스트링을 넣거나 옆면에 지퍼를 달아 핏을 손쉽게 변형할 수 있다는 점, 톤온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 등 본연의 몸에 가까운 옷이 많다는 게 이번 시즌의 특징이다.
메타버스의 부흥으로 ‘몸’에 해당하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OJOS는 현실에서도 신체를 재감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지난 시즌 출시했던 치마를 새롭게 디자인하거나 기장의 차이, 절개, 지퍼 등을 활용한 옷들도 눈에 띈다. 자르고, 이어붙이고, 다시 자르며 하나의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고 기존의 옷을 끊임없이 변형시키려는 OJOS의 시도에서 ‘진열 아닌 전시’를 추구하는 이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OJOS는 두 개의 시간축을 교차시키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는 브랜드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시간이 동결된 것만 같은 지금, 이들은 과거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고 많은 이들이 이미 지나갔다고 믿는 감성을 현재에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든다. OJOS가 만드는 옷을 통해 우리는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OJOS가 데려가는 어느 시대에도 향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임혜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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