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대학생활 6년의 회고록

졸업을 기념하며 쓰는 글
글 입력 2022.03.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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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없는 졸업


 

 
졸업(卒業 마칠 졸, 업 업), 학업을 마치다.
 

 

졸업을 했다.

 

1년의 휴학과 1년의 유예를 거쳐, 6년만의 졸업이다. 하지만 ‘졸업’이라는 뜻이 무색하게, 학업을 끝마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 또한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친한 동기들은 같이 졸업하지 않고, 다른 동기들은 누가 졸업하는지 알지도 못하니 졸업증서야 개인적으로 수령하면 그만이요, 나는 기념사진이나 찍고 싶었다.

 

학사모 쓰고 졸업 가운을 입은 채 본관 앞에서 기념사진 찍기. 내가 이번 졸업식에서 바라는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열정적인 친구 덕에 그 목표를 120% 달성한 난, 아주 만족스럽게 졸업할 수 있었다.

 

사진을 기록하기 위해 반 년 만에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서 사진을 업로드했다. 그러자 좋아요로, 댓글로, 혹은 카톡으로 많은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활동 종료 후 연락이 끊겼던 옛 대외활동 동기들, 공모전 팀원들과도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분이 어때?”
 

 

그렇게 정신없게 지나간 축하 후, 이른바 찐친들은 축하 다음으로 나의 ‘기분’을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당시 느낀 심정을 솔직하게 답했다.

 

 
“시원씁쓸한데 지금은 시원이 70%, 씁쓸이 30%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씁쓸이 더 커질 것 같애.” 
 

 

진심이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수업과 과제, 힘들었던 조별 발표와 졸업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 써야만 했던 지난날들에 작별을 고했으니, 이젠 날 구속하는 것이 없어진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움이 짙어질 것만 같았고, 지금도 그렇다. 3월 2일, 마지막 개강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았지만, 나 또한 그들이 부러웠다.

 

잘 알고 있다. 그들 또한 거의 마지막 학기이고 졸업반인 만큼 예전과 같은 즐거운 대학생활은 누리지 못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아직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속한다는 것이, 추억을 담은 장소 안에 남는다는 것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학기를 앞둔 동기 친구와 오랜만에 옛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에 젖은 것은, ‘졸업’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두가 같은 마음을 지닌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설은 이쯤하고 졸업을 기념하며, 나의 대학생활을 간단하게 반추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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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대학생활


 

1학년, 마냥 신이 나기만 했던 스물.

 

입시 공장 같았던 기숙학교를 벗어났고, 목표했던 것보다 소위 말하는 ‘높은’ 학교에 입학했다. 기숙사에 떨어져 얼떨결에 자취를 시작했고, 운이 좋게도 입학하자마자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학점도 꽤 좋았고, 첫 방학 때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학기에는 과외 이후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취미로 집필했던 소설도 처음으로 완결을 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해였다.

 

2학년, 아직은 사람이 좋았던 스물하나.

 

1학년 필수 전공, 교양이 사라지면서 동기들과 조금씩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때부터 드러난 취향 차이는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과 떨어지게 만들었고, 나 또한 알바와 새로 가입한 동아리 활동에 몰두했다.

 

그 해 1년을 통째로 바쳤던 연극 동아리는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낯가림 심한 소심쟁이였던 내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고, 그때의 성취감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인생의 큰 자산으로 남아 있다.

 

3학년, 조금씩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스물둘.

 

본격적으로 복수 전공에 진입하면서 시간표가 전공으로만 꽉꽉 채워졌다. 본 전공도, 복수 전공도 좋아서 선택했고, 덕분에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쏟아지는 시험과 과제는 학업을 재미로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수업 이후 바로 아르바이트를 가느라 밥은 굶기 일쑤였고, 늦은 밤 퇴근 후 시험공부를 하며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여름방학, 처음으로 경험한 회사는 알바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냉정한 사회를 가르쳐주었고, 다음 학기에 연속으로 걸린 조별과제 빌런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난폭함을 일깨웠다. 그러다 시작한 아트인사이트 활동은 처음으로 ‘나의 글’을 쓰게끔 격려했고, ‘나’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휴학, 잠시 쉬어가며 주위를 둘러봤던 스물셋.

 

3학년을 마친 후, 연말에 본가에서 펑펑 울어버린 후 휴학을 결심했다. 나 힘들어, 라는 말이 그때는 왜 그리도 어렵게 나왔는지. 생애 가장 높은 학점을 받았음에도 그게 왜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던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아직도 어려운 그 마음을 지닌 채 휴학을 질러버렸다.

 

마땅한 계획 없이 지른 휴학이니 남들처럼 자격증을 따지도, 인턴을 하지도 않았다. 순수하게 ‘하고 싶은 것’만 했던 1년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진로와 관련된 학원 수강부터 유럽 여행, 아르바이트, 의도치 않게 본가에서 6개월 머물기 등.

 

수료를 앞두고는 이 시기를 후회하기도 했다. 이때 이걸 해볼걸, 저걸 할걸 등등......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꼭 필요했던 1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1년이 있었기에 4학년의 나도, 수료생의 나도, 그리고 현재의 나도 발을 딛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4학년, 코로나와 함께 복학했던 스물넷.

 

1년의 휴학 후, 학교에 가고 싶었다. 마침 수강신청 결과도 만족스러웠고, 마지막으로 목표했던 대외활동도 합격했으니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마지막 1년을 불태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은 나의 모든 계획을 무너뜨렸다.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고, 기획 회의 또한 줄줄이 취소되며 자연스레 본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던 젊음의 열기는 사라졌고, 어색한 비대면 수업과 쏟아지는 과제에 허덕이기만 했다.

 

그렇게 취준을 시작했다. 아는 게 없으니 인터넷을 뒤지고, 학교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구했다. 그러다 얼떨결에 대기업 서류가 붙었고, 내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에 휩싸였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로 큰 기업은 서류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고, 작은 기업은 오히려 학벌이 발목을 잡았다. 점점 더 심해지는 코로나는 취업 시장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들었고, ‘하고 싶은 것’만 했던 나는 그때서야 ‘해야 하는 것’을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수료,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봤던 스물다섯.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우울증 조짐이 보였고, 가만히 있었는데도 스트레스에 살이 빠졌다. 장소라도 바꾸면 괜찮을까, 어차피 수료생이니 이사를 결심하는 건 아주 쉬웠다. 무려 5년이나 머물렀던 자취방과 작별을 고하고 터전을 옮겼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새 집은 전망이 좋았고, 햇빛도 잘 들었으며, 처음으로 생긴 TV는 뉴스만 틀어놔도 세상과 연결된 기분을 주었다. 덕분에 아침에 눈을 뜨면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다시 집순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노트북을 붙들면서 공고를 보고, 자소서를 쓰고,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더불어 새로 시작하게 된 공모전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그러다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대기업 면접에 가게 되었고, 이후 반복된 면접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공모전의 막바지, 기대도 않았던 인턴에 합격했고, 나의 생활은 다시 조금씩 여유를 찾아갔다.

 

인턴의 막바지 때는 경험삼아 넣었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기업의 공채 서류 전형에도 합격했고, 수리 영역 반을 찍었는데도 인적성에 합격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4일 뒤인 면접도 부랴부랴 준비했다. 참 신기한 점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면접장에만 가면 심장에 진동이 오던 내가 이번에는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음에도 차분했다는 점이다.

 

최종 결과는 낙방이었지만 아쉬움만 남을 뿐, 예전처럼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고군분투했던 1년이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는 긍정적인 직감 덕분이었을까. 작년과 달리 기분 좋은 연말을 보냈고, 홀가분하게 아빠가 새로 준비하시는 가게 오픈을 도왔다.

 

그렇게 졸업을 맞이했다.

 

 

 

졸업, 그 후


 

 
“이젠 뭐할 거야?”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 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이다. 취직이 될 때까지 졸업을 미루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취직 전에 졸업을 해버렸으니, 악의 없는 순수한 궁금증이란 걸 잘 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시원하게 대답했다. “다시 취준해야지!”라고.

 

12월 초반에 있었던 면접이 끝난 후 더 이상 공고를 보지 않았고, 자소서도, 포트폴리오도 고치지 않았다. 연말과 연초에는 마땅한 공고가 없다는 핑계였지만(틀린 말은 아니다), 조금 지쳤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대신 만료 직전이었던 중국어 시험을 다시 치렀고, 잠시 놓았던 글을 다시 썼으며, 최근 한 달은 아빠의 가게에서 말 그대로 열일을 했다. 놀라운 점은 공부는 여전히 하기 싫고, 예전만큼 글쓰기가 쉽지 않으며,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은 힘들어 죽겠는데 그조차도 빛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허덕였던 작년에 비해서는 제법 좋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사뭇 궁금해졌다. 작년의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유지하면서도 불안에 떨었는데, 이젠 학생의 신분조차도 없어진 올해의 나는 과연 괜찮을까.

 

어쩌면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학원과 운동 등록으로 밖에 나가야만 할 이유를 만들고 있으니. 만약 취준 생활이 생각보다 더 길어진다면 어김없이 공백기를 걱정할 것이고, 먼저 취업하는 친구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졸업을 못한 작년과 달리, 올해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졸업을 했다. 마음은 결국 모든 길을 알고 있다고 하였던가. 결과가 어찌 되든 지금은 나의 마음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것이 세뇌일지라도 지금은 그러고 싶다.

 

그래서 올해의 취준은 작년만큼 나를 너무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건강도 챙기고, 적당히 쉬고, 쓰고 싶은 글도 쓰고, 잠도 잘 자면서 길게 바라보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나에게 맞는 직장, 또 다른 울타리가 생기리라 믿는다. 나의 미래는 나를 만나러 달려오고 있을 테니, 현재의 나는 내 속도에 맞추어 열심히 걸어가면 된다.

 

졸업 이후는, 딱 그 정도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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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 고마웠어.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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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푸른하늘
    • 저도 이번에 졸업했습니다. 주혜지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정말 많이 됐습니다.
      아무래도 떠나야 한다는 그 초조함이 절 불안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고 현생에 정진해보려 합니다.
      함께 파이팅 해봐요!
    • 2 0
    • 댓글 닫기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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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J
    • 푸른하늘안녕하세요 푸른하늘님! 같은 해에 졸업하신다니 반갑네요ㅎㅎ
      저 또한 초조함에 불안하지만 불안함보다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에 집중하려 노력해보려구요!
      함께 파이팅하자는 말 감사합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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