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증오 [영화]

노예가 되어버린 세계
글 입력 2022.02.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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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들은 해피 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이고 현실은 결코 행복하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현실을 반영해야 할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소리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 얘기가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에 해피 엔딩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LA HAINE

 

감독은 희망과는 거리가 먼 상황인 폭동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세 소년들의 하루를 뒤쫓는다. 외각 지역에 사는 그들은 모두 소외 계층으로, 유대계인 빈쯔 Vinzz와 아랍계인 사이드 그리고 아프리카계 흑인인 위베르 Hubert가 그 주인공이다.

 

 

첫문단 증오증오증오.jpg

 

  

시위가 계속 벌어지는 과정에서 16살 소년이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 결과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상황은 점차 악화된다. 경찰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를 표현하듯 영화 초반 경찰을 향한 적대심을 가득 품은 빈쯔는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곤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거울에 비친 빈쯔의 모습을 카메라는 담고, 곧이어 빈쯔의 얼굴만을 클로즈업하면서 그를 향해 있던 총구는 곧 관객을 향한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발사된 듯 플래시가 번쩍인다. 이렇게 중간중간 번쩍이는 플래시 라이트와 함께 신 scene들은 점프 컷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마치 그들 또한 불꽃처럼 번쩍이듯 한순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화면 캡처 2022-02-25 210625.png

 

 

가장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위베르의 등장 장면은 마치 캄캄한 어둠 속 홀로 빛날 수 있는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실상은 위베르 또한 그의 친구들과 함께 어둠 속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위베르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게 경찰인지 사회인지 아니면 자신과 같은 하층민인지, 분노의 대상마저 위태롭게 흔들리는 빈쯔의 위험한 행동과 생각들에 화를 낸다.

 

그들은 하루 동안 빈쯔가 우연히 주은 경찰 총을 몸에 지니고 시내를 돌아다닌다.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소년 압델의 병문안을 시도했다 괜히 경찰에 붙잡히기도 하고, 이유 없이 갑작스레 잡혀가 폭행을 당하기도 하다가 결국 돌아갈 지하철 막차를 놓치고 만다. 그들은 자동차를 훔쳐 돌아가 보려 하지만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밤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니다 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증오증오.png

 

 

영화에 등장하는 세 소년뿐만 아닌 밤을 새우며 돌아다니는 모든 하층민의 삶이 방황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출구가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출구라는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광고판 “Le monde est à vous (세상은 당신의 것)”을 만든 이들이 이미 막아버렸고, 사이드와 위베르 그리고 빈쯔가 이 광고판 속 글귀를 “Le monde est à nous (세상은 우리의 것)”로 바꾸는 행위는 그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한낱 밤의 단순한 꿈같은 반항으로 보일 뿐이다.

 

위베르는 복싱에 재능이 있지만 결국 유명한 복싱 선수는 쥐뿔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썩어 빠진 세상에서 단 한 푼의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잠시나마 풀기 위해 보러 오는 싸구려 B급 복싱 경기에 올라 그들의 구경거리 정도로 하루하루 살다가 모두가 상상하는 결말을 맞을 것이다. 짐작했다시피 그 결말은 결코 해피 엔딩 따위는 되지 못한다.

 

그들이 이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벌어 빈민층을 떠나는 것인데, 빈민가를 벗어날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란 대학에 진학해 교육을 받고 그를 통해 얻은 학위로 직업을 구하여 돈과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아주 간단한 일을 말한다. 그러나 당장 5프랑도 귀중한 그들에게 대학 진학은 헛된 꿈이자 망상에 찌든 아웃사이더의 생각일 뿐, 현실은 책 한 권 살 돈도 없는 자들의 가난의 대물림이자 톱니바퀴이다.

 

첫 문단을 읽었을 때 아마 모두가 영화의 결말을 예상했을 것이다. 현실 속에 해피엔딩이란 없다. 부를 가진 자들은 더 큰 부를 원하고, 이를 위해 그 어떤 일이라도 행한다. 그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노예제도일 수도 있고, 테러일 수도 있으며, 전쟁일 수도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부유하고 강한 사람, 국가에 종속돼 끊임없이 착취되고 휘둘린다. 이미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형성됐고, 숨통을 조금씩 더 조여올 뿐이다. 살고 싶다면 따라라, 하지만 그렇게 살아난 자들에게 자유란 없다. 참으로 막무가내인 세상이다.

 

영화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빈쯔는 위베르에게 총을 맡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단 그가 갖고 있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런 빈쯔에게 전날 만났던 경찰이 다가와 총을 겨눈다. 그는 총으로 빈쯔를 위협하고 그러다 순간 총이 격발한다. 머리를 맞은 빈쯔는 그렇게 사망한다. 뒤에서 보고 있던 위베르는 이에 분노해 경찰에 총을 겨누고, 경찰은 위베르에게 총을 겨눈다. 썩어빠진 세상과 경찰, 권력자들에게 겨눠진 총구, 화면 암전, 그리고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는 알 수가 없다. 누가 약자이고 강자인지, 누가 패배자이고 승자인지, 누가 선한 자이고 악한 자인지, 이곳에선 무언가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영화는 경찰이 잃어버린 총과 바닥으로 추락한 그들의 권위 그리고 마땅한 교육도 보장되지 않는 하층민의 굴레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회 비판적인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드는 의문은 과연 잘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세상의 톱니바퀴 중 어떤 톱니바퀴를 깨 부셔야 하는 가이다.

 

영화의 중간과 마지막에 나온 위베르의 독백이다.

 

 

"추락하는 사회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본 적 있어?

 

한 층 한 층 떨어질수록, 다들 마음을 추스르려고 이렇게 말하지.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하지만 추락한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어떻게 착륙하느냐는 거지."

  

 

희망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이지만 손동작 하나로 에펠탑 불을 꺼버리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거야."

 

그리고 다음 장면 에펠탑의 불이 꺼진다.

 

"우리는 착륙하기 위해 추락하는 중이야."

  

그들이 무사히 착륙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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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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