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둘러보기 [미술/전시]

데이비드 호크니전 이후 다시 돌아온 서울시립미술관의 거장전
글 입력 2022.02.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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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국공립 미술관에서 주관하는 대형 특별전의 소식이 잦다. 오는 5월 8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역시 그중 하나다. 격년으로 거장전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한 서울시립미술관이 데이비드 호크니전 이후로  2년만에 선보이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빛’이 미술의 역사에서 지녀온 종교적, 역사적, 과학적 의미를 총망라하는 자리다. 백남준, 클로드 모네, 윌리엄 터너, 바실리 칸딘스키, 올라퍼 엘리아슨 등 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저명한 예술가 43인의 작품 110점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국공립 미술관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기관답게 한국 미술의 발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본다면, 이러한 블록버스터 전시를 늘 달가워할 수만은 없다. 대규모 예산이 집행되는 만큼 일반 전시에 비해 박한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작가의 유명세나 작품가액을 내세운 이슈몰이 역시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 전시가 누군가에게는 미술관으로 첫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내게 대형 전시란 단순한 호불호로 평가하기 어려운 전시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 삼아 전시 자체에 대한 전체적인 의견을 종합하기에 앞서, 인상적이었던 개별 작품을 몇 가지 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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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5. 장엄한 빛’ 섹션에 자리한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조셉 라이트(1734-1797)의 <폭발하는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만의 섬>(1776-1780년경)이다. 격변하는 산업 혁명 시대의 기술을 주제로 삼았던 화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기법의 측면에서는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테네브리즘 효과를 즐겨 사용했다. 이는 자연을 담은 풍경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이 작품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장면을 강렬한 명암 대비로 표현한 그림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잔잔한 나폴리만의 수면을 뒤로한 채 폭발하고 있다. 시커먼 화산재가 먹구름처럼 하늘의 일부를 뒤덮은 가운데, 붉게 타오르는 뜨거운 용암이 그 어둠을 밝힌다. 근경에는 희생자를 옮기는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무력한 인간과 화산 분출의 현장이 대비를 이루며 자연 현상의 위력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상상을 가미해 그린 화면이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다. 불투명한 색료로 표현한 빛임에도 화면을 뚫고 나올 듯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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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두 번째로 ‘10. 실내의 빛’ 섹션에 들어서면 보이는 빌헬름 함메르쇼이(1864-1916)의 회화 작품이다. 작은 화면 너머로 소박한 집안의 풍경과 창가에서 새어들어오는 햇빛을 들여다보면, 바닥에 드리워진 창문 그림자도 그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창문 하나 없는 전시실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일은 없다.


이 그림자는 전시장 바닥의 카펫에 새겨진 것으로, 프랑스의 예술가 필립 파레노(1964-)의 <저녁 6시>(2000-6)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이다. 제목처럼 오후 6시경의 빛과 그림자를 표현한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비물리적인 빛의 속성을 비틀어 특정한 시간대에 고정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함메르쇼이의 회화 작품과 절묘하게 배치되어 관람객에게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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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마지막으로 전시의 끝을 장식하는 ‘16. 빛, 인간의 창조물’ 섹션에서 감상할 수 있는 댄 플래빈(1933-1996)의 작품이다. 댄 플래빈은 규격화된 산업 사회의 산물인 형광등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펼쳤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러시아의 구성주의 작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 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를 오마주한 (1966-69) 연작 중 하나가 전시된다.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을 위한 기념비>는 1919년 볼셰비키 혁명 3주년을 기념해 설계된 건축물이다. 에펠탑보다도 높은 높이의 나선형 건축물은 모형탑에서 그쳤을 뿐 실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를 모델로 한 플래빈의 연작은 실현되지 못한 채 꺼져버린 혁명의 불꽃을 되살리는 듯하다. 그러나 그 광휘가 실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공산품의 인공적인 빛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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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세상의 근본이자 기조다. 그렇기에 빛과 예술은 사실상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시각매체로서의 미술의 역사에서 빛이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빛이 없다면 그 어떤 색채도 형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시가 제시하는 빛이라는 주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주제에 걸맞게 빛의 물리적 묘사부터 상징적 의미, 작품의 매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빛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전시는 시기의 측면에서도 18세기부터 동시대를 폭넓게 아우른다. 빛을 주제로 조직된 전시인 동시에 테이트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시대별로 선보인 전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집약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인상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빛이 관여된 작품이라면 전시의 라인업에 포함시켰다는 인상을 준다.


이렇듯 이 전시는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예술가에 고루 주목한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를 몇 명의 유명 예술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매체에서는 칸딘스키나 모네 등의 명세를 내세운다. 홍보의 차원에서는 필연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칸딘스키의 작품은 한 점, 모네의 작품은 두어 점에 불과했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역사적으로 긴 시기를 다루는 전시라면 관람객의 피로도 역시 고려의 대상이 되었으면 한다. 16개의 섹션을 숨가쁘게 쫓다 보면 작품 하나하나를 소화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발목을 잡는다. 작품 각각의 색깔이 너무나 강렬했던 탓에 작품 간의 조합이 조화롭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테이트 미술관의 이름값 못지 않게 전시 자체의 몰입도에 주안점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한 공간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들을 줄지어 감상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전시를 찾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윌리엄 터너부터 아니쉬 카푸어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대형 전시는 흔치 않다. 2년 뒤 서울시립미술관이 선보일 또 다른 거장전을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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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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