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닮고 싶은 삶 - 영원히 사울 레이터 [도서]

글 입력 2022.02.07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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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the things photography has allowed me is to take pleasure in looking.

사진 덕분에 나는 바라보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사울 레이터는 바라보는 사람이다. 어느 가게의 창가에 앉아, 교차로 위에 서서, 누군가 고개를 돌리면 시선이 맞닿을 그곳에서 어떤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본 세상은 그림자를 닮은 흑백 사진으로, 온기가 느껴지는 컬러 사진으로 남았다.

 

사진가이자 조용한 관찰자였던 사울 레이터, 그가 본 세상은 어떤 곳이었는지를 함께 바라보기로 했다.

 

 

영원히 사울레이터_표1.jpg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그의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간 촬영했던 미발표작이 수록된 사진집이다. 한가득 펼쳐지는 사진 중간중간, 그가 사진과 삶에 대해 품었던 생각들을 문장으로 만날 수 있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사울 레이터가 바라본 사람들



 

“누군가는 나를 성공한 포토그래퍼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충분한 일이었고 행복했다.” 사울 레이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본인의 삶도 예술도 내세우려 하지 않았고, 심오한 설명으로 작품을 포장하지도 않았다. 레이터는 언제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의 시선은 세상 반대편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과 주변으로 향했으며, 찰나에 담긴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포착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 출판사 서평 中

 


사울 레이터는 가장 일상적인 것,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 당연하고, 지루하기도 한 순간들을 포착했다. 일을 하고, 신문을 읽다 사색에 잠기고,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그래서 그의 사진엔 길가와 골목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역사나 이벤트가 있었던 도로가 아닌, 집과 일터, 일상적인 목적지를 위해 수도 없이 걷는 평범한 거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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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Untitled, c. 1955

 

 

그 속에서 사울 레이터는 아주 특별한 것을 보았다. 부와 명예, 대단한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그는 알았다. 마주 앉은 친구가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웃음, 어쩐지 심통이 난 어린 조카의 투정, 좋아하는 책에 빠진 느긋한 오후 같은 것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하지 않음을.

 

몇 번을 반복한다 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한 평생 작고 평범한 그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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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Paris, c. 1959

 

 

사울 레이터는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사진을 찍었다.

 

창밖 넘어 길을 지나는 사람들, 거울 너머로 바라본 사람들, 하나의 벽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사진에선 마음이 고요해진다. 들뜨고 기쁜 날, 화가 나 참을 수 없는 날들도 모두 수많은 날 중 하나일 뿐이라는 안도감과 허무함이 함께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이 가라앉다 가도, 다시 내 삶을 잘 살아보아야겠다는 긍정이 찾아오는 건, 사람들과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그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울 레이터의 사랑


 

[크기변환]deborah.jpg

Saul Leiter, Deborach, c. 1946

 

 

사울 레이터는 길가의 수많은 삶을 담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한 가족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았다. 여동생 데보라 레이터는 사울 레이터가 처음으로 사진에 담았던 모델이다.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데보라의 모습이 좋았다.


새롭고 서툰 시도들을 함께 하며, 사울 레이터만이 지닌 사진 세계를 함께 만들어 나간 데보라. 안경 너머 선명한 눈빛을 보내는 데보라의 삶이 궁금해진다.

 

슬프게도 데보라는 사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정신 질환으로 보호시설에 머물렀고, 그 시간 속에 사울과 연락이 끊기고 만다. 사울은 그 후로도 데보라의 사진을 다시 그림으로, 다시 판화로 만들었다. 그가 평생을 사랑한 데보라였다.


 

soames.jpg

Saul Leiter, Soames, 1970s

 

 

모델 솜스 밴트리는 사울 레이터의 평생의 연인이다. 사울은 솜스를 주인공으로 많은 사진을 남겼고, 다른 사진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솜스를 담은 사진들엔 말 그대로 ‘주인공’이 분명히 느껴졌다.

 

불특정한 일상적 인물을 찍던 그에게 단 하나 특별한 사람, 부드럽게 흩어지는 그의 기법에서도 밝은 빛을 뿜는 사람이 등장했다. 사울은 솜스에게 한 명의 예술가로서, 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의심하지 않는 신뢰와 끝없는 지지를 받았던 것 같다. 그의 사진이 그렇게 말을 한다.

 

 

I shared my life with Soames.

We had moments where, in spite of all the problems, 

We had an inability to concentrate on misery properly,

And a tendency to enjoy life.

And I don’t think that’s such a bad thing.


나는 솜스와 인생을 함께했다.

온갖 문제가 닥쳐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비애에 파묻히는 대신

삶을 즐기곤 했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 <영원히 사울 레이터> 中


 

 

영원히 사울 레이터


 

컬러 사진의 선구자, 뉴욕의 전설, 멋진 수식어가 많이 따르지만,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했던 사울 레이터였다.

 

<영원히 사울 레이터>의 두터운 책장을 넘기며, 그가 사랑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의 사진과 삶이 더 궁금해진다면, Piknic에서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展에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그의 사진을 책으로 가까이서 매만지는 경험과 전시장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전혀 달랐다. 분명한 것은 전시를 보다면 책이, 책을 읽는다면 전시가 궁금해지리란 것이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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