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제주를 살아가는 공간에 대하여 - 나는 제주 건축가다

글 입력 2022.01.2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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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명의 건축가를 인터뷰한 김형훈 기자는 여는 글을 통해 이런 설명을 더했다. 2015년, 제주 건축계는 제주 건축의 새로운 지역성 '제주현상'을 설명했다고. 제주현상이란 2015년 당시 제주가 안고 있던 사회상으로, 평생 제주에서 살아온 사람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여가고 거대 자본이 밀려들어오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건축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한창 제주 붐이 일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제주 건축계가 말한 제주현상이란 이 붐과 함께 우후죽순 생겨나는 건축물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것. 책 <나는 제주 건축가다>는 어제와 오늘, 내일의 제주현상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

 

공교롭게도 아마 처음 제주도에 간 때가 2015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분명한 동기는 없었으나 반드시 가 봐야 한다는 은근한 강박은 있었다. 아직 대학생이었고, 안 가본 여행지로 떠나 보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2015년 즈음의 제주는 '꼭 가봐야 할 한달살기 여행지'였다. '갓생'을 살아보자는 지금과는 정 반대로 '욜로'가 유행했었는데, 제주도는 시대의 욕망에 완벽히 부흥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잘 나가던 연예인이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제주에서 소박하지만 여유롭고 행복한 새 인생을 시작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로망을 심어주었다. 동시에 제주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기 좋은 장기 숙박형 게스트하우스가 인기를 끌며 증식해 여행은 최대 일주일이다 생각하고 살던 내 맘까지 흔들어놓았던 때였다.

 

처음 마주한 제주도는 어느 곳을 바라보든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사방으로 펼쳐져 있을 수평선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더라도, 낮고 넓고 고요히 이어진 대지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걷노라면 푸르른 물 안에 폭 안겨 있는 느낌이 들었다. 왜 제주도가 돌과 바람이 많다는지 바로 이해할 만 했다. 겨울이라 더 그렇기도 했고. 그러나 신기한 것은 시간이 흐르고 제주를 돌이켜보니 거센 바람과 파도가 아니라 적막할 정도로 차분하고 고요한 품으로 사방에 뻗어 있던 땅의 모습만 생각난다.

 

하지만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이래도 괜찮은가?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주가 제주일 수 있는 것은 이 땅 그 자체에 있었으나, 뭍의 도시를 모방할 뿐인 단순한 프로그램과 콘텐츠, 건물이 은근슬쩍 제주의 땅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 역시 근본적으로는 삶의 터전이기에 편의에 따른 다양한 개발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겠으나, 단순히 '제주가 뜬다'는 명목 아래 유행을 좇아 생긴 수많은 신축 건물은 과연 그 수명이 얼마나 될까 의구심이 들었다.

 

동시에, 자연 훼손이 실질적인 문제로 부각됐다. 개발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각종 상공간을 비롯해 동물원에 관광단지까지 무분별하게 생겨나고 그 자리에 호젓한 자세로 머무르던 자연은 인공적인 자연물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

 

제주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 2015년으로부터 6년이 훌쩍 지났으나 2022년에 이르른 지금에도 계속 이어질 질문이다. 책 <나는 제주 건축가다>에 참여한 19명의 젊은 제주 건축가들은 이 질문에 각자의 분명한 시선으로 대답한다. 제주가 품은 독특한 지역성과 제주와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들려준다.

 

모든 인터뷰를 관통하는 주제성이 있어 흥미롭다. '인간다운 건축'이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기보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했다. 참여한 제주 건축가들의 성향뿐 아니라 인터뷰어의 질문에서 느껴지는 시선 역시 따스하다. 건축과 도시 개발을 아울러 심도 있는 질문을 이어가는 한편 건축가들 개개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이 곁들여져 읽기에 굉장히 편안하다.

 

책을 읽은 후 인터뷰를 진행한 김형훈 기자에 대해 궁금증이 일 정도였다. 이렇게 매끄러운 호흡으로 글을 이어가면서 건축에 대한 질문 역시 굉장히 전문적이다. 알아보니 현재는 미디어제주 편집국장으로 계시고 2017년에는 제주건축문화인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으시다고.

 

 

제주라는 땅은 가벼이 볼 땅은 아니다. 그런 땅에서 건축행위를 한다는 건, 어때야 함을 건축가들은 말한다. 아울러 그들이 아끼는 땅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건축의 길로 들어서게 했거나, 건축의 틀을 잡게 해준 책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있다.

 

- 시작하는 말 中



한편,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굉장히 느리게 읽은 책이라 신기했다. 글은 무척 술술 읽히는데 건축가들이 설명하는 내용 하나하나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 모니터를 켜 두고 공간을 하나씩 찾아보며 읽었다. 굉장히 재미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주라는 땅과 공간을 여행한다는 느낌이 들어 책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먼저는 건축가들이 설명하는 공간과 책에 대해 한번씩 검색해보고, 개인 작업물 위주로 디테일한 이야기가 진행될 때에는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프로젝트 흐름을 읽어봤다. 제주도 하면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이타미 준, 안도 다다오 역시 여러 건축가들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데, 미리 이들의 프로젝트를 살펴보고 제주 건축에 대한 느낌을 한번 잡은 후 책을 읽어도 좋을 듯 하다. 요즘에는 건축 투어 영상이 잘 나와 있어 유튜브로 편하게 훑어볼 수도 있다.

 

 

제주도의 흙은 63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다르고, 그러기에 여러 작물도 분포한다.제주의 흙을 돌이라는 재료와 엮었을 때 어떤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제주돌을 이용해 여러 건축가들이 시도했는데, 제주 흙은 다루는 건 보지 못했다. 제주의 돌과 흙으로 제주 땅의 가치를 만들어보고 싶다.

 

- 아뜰리에11 인터뷰 中

 

 

에이루트 건축사무소엔 그들이 만든 제주 원도심 지도가 있다. 로드뷰가 찍히는 21세기에 마을 지도가 필요한가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위성지도와는 다르다. 위성지도는 현황만 보여주지만 이 지도에는 해석이 들어간다. 건축적 해석이다. 구도심을 보면 안팎거리 집이 있고, 일제 가옥도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의 근대문화자산도 있다. 이런 것을 계속 살리면서 역사가 누적된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 에이루트건축 인터뷰 中

 


마지막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냅다 목차를 들고 왔다. 인상깊게 읽은 몇 파트를 추릴까 하다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섰다. 타이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지.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제주 건축의 흐름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제주를 사랑하는, 그리고 공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틀리에11건축 박현모 / 내 건축의 자양분은 바다, 산, 오름, 돌담

더현건축 현혜경 /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면 탐색 중

에스오디에이건축 백승헌 / 사용설명서가 첨부된 건축을 지향한다

홍건축 홍광택 / 패러다임 건축에서 삶의 건축으로

티에스에이건축 김태성 / 관계, 균형, 공공성을 구축한다

소헌 양현준 / 보여주기 위해 집을 지을 이유는 없다

에이루트건축 이창규 / 세대와 이웃이 공유하는 '풍경'이 존재하는 곳

마음건축 조진희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의 건축

탐라지예건축 권정우 / 물리적 확장이 아닌 가치의 개발 방식은 어떨까

건축사사무소 오 오정헌 / 제주는 어떤 건축이든 품는 힘이 있다

청수건축 김학진 / 조경을 먼저 구상하고 건물을 설계한다

도시건축연구소 문랩 문영하 / 도시재생, 지역민이 주도하게 하자

영건축 강주영 / 작품이 아니라 서비스, 내 건축의 출발점이다

선우선건축 강봉조 / 안도 다다오 씨, 질문 있습니다!

가정건축 박경택 / 도시 공공성 지도를 만든다

비앤케이건축 고이권 / 건물이 들어섰을 때 얼마나 안정감을 주느냐가 중요

빌딩워크샵건축 김병수 / 도심 개발은 '보행자', '자연 경관 보존'을 중심으로

지맥건축 김정일 / 땅을 보고 사람과의 관계를 본다

사이건축 정익수 / 제주의 강인한 기원을 담은 건축을 꿈꾼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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