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별 주머니 속 별 하나.

글 입력 2022.01.2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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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 이혼 하려고 딱 마음먹고 퍼질러 자고 있는 네 아빠를 딱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연애 때 생각이 계속 나는 거야 아, 내가 그때 헤어졌으면 이 사람 평생 그리워했겠구나. 평생을 마음 한 켠에 두고 절절하게 그리워했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뭐 그리 생각이 드니까 고마 살자 싶더라. 지호야. 사람 인생 다 비슷하고 고마고마하다. 다만, 제 별 주머니를 잘.... 챙기는 게, 그게 중요하지.


지 : 별...... 주머니?


엄 : 고만고만한 인생 안에도 때에 따라 반짝반짝 떠다니는 것들이 있다. 그때마다 그걸 안 놓치고 제 별 주머니에 잘 놓아둬야 된다. 그래야 나중에 힘들고 지칠 때, 그 별들 하나씩 꺼내 보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기다.

 

-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16화 中

 

 

누구에게든 찬란한 순간이 있고, 별것 없는 인생에도 반짝반짝한 별들이 존재한다. 그 별들을 놓치지 않고, 별 주머니에 잘 보관해야 한다. 내게도 주머니에 잘 넣어둔 별들이 있는데, 작은 별부터 큰 별까지 다양하다.


지호 엄마의 대사처럼 힘들 때마다 별들을 하나씩 꺼내서 보면 버틸 힘이 생겼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긍정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별 주머니의 영향이 컸다. 물론 한계에 다다랐을 때는 별 주머니도 소용없었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별 주머니 속 별은 항상 내 손으로 꺼내 보곤 했는데, 두 달 전에는 누군가에 의해 별 하나가 주머니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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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분식집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짜장떡볶이 가게인데, 기본 떡볶이와 꼬치 어묵도 있다. (최근에는 짜장라면이 추가됐다) 두 달 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리러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을 때 그 음식을 먹어보게 됐다. 꼬치 어묵은 어렸을 때 겨울마다 해주시던 그 맛 그대로였다. 짜장떡볶이는 요리사인 동생이 연구한 레시피대로 만든 것인데, 색다르고 맛있었다.


사실 기대하고 있었던 건 따로 있었다. 컵떡볶이였다. 동생이 1인분은 종이컵에 담아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을 안 이후로 컵떡볶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예상한 모습대로  나타난 길쭉한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를 보면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우와 옛날에 이렇게 먹었는데.”


컵떡볶이를 보고 좋아하는 나를 보더니, 동생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게 감성이지.”


동생의 말 한마디에 별 하나가 주머니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그 별을 보면서 옛 추억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시 보니 작은 손에 유독 커 보이는 종이컵을 꼬옥 쥐며 떡볶이를 먹으며 나란히 걸어가는 나와 동생의 모습은 정말 깜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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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우리는 다섯 살 차이라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시간은 1년뿐이었다. 더구나 6학년 수업은 1학년보다 훨씬 늦게 끝났고, 리드 합주부라 대회 연습을 해야 했다. 같이 하교할 수 있는 날은 토요일밖에 없었다.


그때는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고, 집안에는 좋지 않은 일들도 있어서 동생을 돌보는 게 버거웠다. 그런데도 동생과 함께 같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좋았고, 토요일이 되면 들떠 있었다.


늘 동생이 먼저 끝나서 우리 반 교실 앞에서 기다렸다. 언제부턴가 같은 반 아이들은 동생이 오면 꼭 알려줬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교실 밖으로 향했다.


한 달 용돈이 많이 남을 때마다 하굣길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컵떡볶이를 사줬다. 일반 종이컵은 300원, 길쭉한 종이컵은 500원이었고, 용돈 사정에 따라 사 먹는 떡볶이의 종이컵 크기도 달라졌다. 어묵과 밀떡, 대파를 이쑤시개로 콕콕 찍어 먹고 마지막에 국물을 호로록 마시는 게 별미였다. 나는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문방구에서 파는 떡볶이는 항상 먹고 싶어 했다.


책가방을 메고 나란히 길을 걸어가며 떡볶이를 먹을 때, 동생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떡과 어묵을 이쑤시개로 찍어 먹는 동생이 귀여웠고,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흐뭇했다. 그래서 ‘컵떡볶이’ 하면 학교 앞 문방구, 초등학생 시절, 동생이 떠오른다.


‘이런 게 감성이지’라는 말은 동생도 그날들을 별 주머니에 잘 보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해줬다. 누군가와 같은 별을 간직하고 있고, 그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됐을 때의 감정은 감동이었다. 아마 동생도 같은 감정을 느껴서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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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주머니 속 별은 꼭 힘들 때만 꺼내 보는 게 아니었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 꺼내볼 수 있다.


같은 별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함께 꺼내서 보는 순간, 상대의 소중함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또한 새로운 별이 된다.


그때의 추억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같은 별을 가진 것을 확인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고 서로의 마음이 또 한 번 닿았다. 그렇게 새로운 별 하나를 별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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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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