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장독 두 개를 내놓았다

글 입력 2022.01.2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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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오기 시작했어. 나는 이미 약속이나 한 듯 서둘러 창문을 열고 된장 항아리 두 개를 내놓았다. 창문 너머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인기척이 느껴졌어. 모처럼 듣는 세상 가장 밝은 소리는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선사했다.

 

일 년 내도록 네 개의 항아리는 된장과 간장을 오롯이 품어내었다. 봄의 포근함과 여름의 세찬 장맛비를 맞았다. 가을의 시원함도 잠시, 겨울의 시림을 겪었다. 그렇게 일 년 내내 항아리 속 충만함으로 오롯이 채워져 있었던 내 일상은 이제 이미 나를 떠났다.


장은 이미 떠났지만, 나라는 사람은 결국 항아리가 아닐 테지. 나는 이제부터 내 마음의 항아리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먹어서 없어지는 장(醬)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내 마음속을 다시금 부지런히 채워본다. 훗날 나만의 귀한 결실로 이보다 더 풍성한 수확을 위해 불끈 다짐하며.


오늘도 나는 세상으로 나간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뚜껑 위에 소복한 무언가가 쌓여 있겠지. 새하얀 그것은 내게 올겨울 마지막 포근한 위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를 위해 눈 오리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제 그 항아리들 위에 올려질 눈 오리들을 떠올려본다. 상상만 해도 벌써부터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행복한 내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 아무렴 그렇겠지. 일 년 전부터 여전히 항아리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는 벽돌들과 함께 그 위에 올려진 것은 행복한 지금 이 순간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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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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