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미술 감상은 연애와 똑같다" 전시장에서 가장 가슴 뛰는 큐피트, 도슨트 고예지

글 입력 2022.01.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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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시 내용도 어떻게 관람하는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때가 많다. 필자의 경우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친구와 함께 관람하며 감상을 나누며, 그도 아니면 작품 설명이 필요한 경우 따로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다. 하지만 이 방법도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 보는 낯선 작품 앞에서 괜히 어렵고 어색해서 수줍어질 때, 작품에 관한 비하인드스토리가 궁금할 때, 이대로 관람을 끝내기에는 아쉬운 순간이 생긴다. 그때 찾게 되는 사람이, 바로 '도슨트'이다.


도슨트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도세르)’에서 유래한 용어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말한다. 다른 쉬운 이름들로, ‘전시 안내인’, ‘전시해설가’가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도슨트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고, 1996년 삼성미술관(당시 호암 갤러리)에서 시작하여 2003년에 되어서야 서울시립미술관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박물관 및 미술관 곳곳에 도슨트가 있으며, 관련 도슨트 양성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는 도슨트에 따라 전시 관람을 예약할 정도로 ‘도슨트’에 대해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티켓파워를 가질 만큼 도슨트는 또 다른 하나의 전시 관람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도슨트가 하는 일은 결국 미술관으로의 장벽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술 작품 관람을 어렵게 생각하셨던 분들이 해설을 들으시고 “괜찮네, 볼만하네, 재밌네”라는 말을 해주신다면 저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 도슨트 고예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2019년 5월 백범김구기념관에서의 첫 도슨트를 시작으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2019.12), <오스제미오스: You Are My Guest>(2020.07), <유에민쥔(岳敏君) : 한 시대를 웃다>(2021.01), <마르첼로 바렌기 전>(2021.05), 최근에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의 <초현실주의 거장들>(2021.12)까지, 다양한 전시장을 누비며 부지런히 활동 중인 도슨트 고예지.

 

지난 21일, 그를 직접 만나 도슨트의 희로애락의 순간들부터 문화예술을 애정하는 한 사람의 마음까지 진득하게 담아냈다.

 

 

 

PART 1: 도슨트 고예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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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마르첼로 바렌기 전>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양한 공간에서 예술을 나누고 있는 도슨트 고예지입니다. ‘전시장에서 가장 가슴 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도슨트’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예지님이 해석하신 ‘도슨트’의 역할을 말씀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전시 해설가’라고 생각해 주시면 가장 쉬울 것 같고요. 전시장에서 작품을 매개로 관객과 기획자 혹은 작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더 다양한 관람 방향을 열어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앞서 도슨트는 ‘전시장에서 가장 가슴 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는데, 언제 가장 가슴이 뛰나요?

 

도슨트를 할 때마다 그런 것 같아요. 전시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긴장감도 있고 설렘도 있어서 그런지 항상 제게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 같아요.

 

 

원래 미술관에 가도 도슨트를 챙겨듣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고예지 도슨트.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관람을 하는 편이었다고. 그는 어쩌다 전시장에서 가장 가슴 뛰는 사람이 되었을까.

 

 

처음 도슨트를 진행하신 곳이 특이해요. 백범김구기념관. 이곳에서 어쩌다 도슨트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우연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어를 공부하고 대만 유학도 다녀왔지만 한 번도 제가 문화예술계에서 일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죠. 대학 졸업 후 중국어 강사로 일하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쉬는 와중에 전시장 지킴이 알바를 했어요. 그런데 당시 전시장에서 도슨트 분의 해설을 들으면서 ‘나도 저런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게 됐죠. 보통 기관에서 진행하는 도슨트 양성과정으로 시작하거나, 미술 예술계의 전공생이면 작은 기관에서 하는 도슨트 아르바이트로 시작하는 분들도 계세요. 지인 소개로 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는 ‘부족하니까 양성과정으로 시작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양성과정을 진행하는 기관들 중에 당시 백범김구기념관이 있었던 거죠. 역사도 좋아해서 재밌겠다 하고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백범김구기념관이 굉장히 힘든 곳이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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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백범김구기념관

 

 

어떤 의미로 힘든 곳이었나요?

 

교육을 정말 열심히 해 주시는 곳이에요. ‘본격적이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역사 교육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설을 하면 좋은지에 대해서도 배우거든요. 도슨트 진행 시 스크립트 쓰는 법도 배우고 앞에서 도슨트 시연까지 진행해요.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서 또다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고 최종 기수가 되어야만 도슨트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죠.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진행한 도슨트 양성 과정이 엄청 체계적이었네요.

 

맞아요. 그렇게 도슨트로서 첫 시작을 하게 됐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죠.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고요.

 

그럼 도슨트 일은 개인적으로 지원을 해서 진행해온 것일까요?

 

물론 각 기획사에서 공고를 통해 도슨트 선발을 하고 개인적으로 지원을 하기도 하지만 이전에 이미 알고 있던 도슨트 지인을 통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중국어를 전공하셨다고 했는데, 연관된 전시로 <유에민쥔(岳敏君) : 한 시대를 웃다>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그중에 ‘전시 중간마다 찰진 중국어 발음으로 작품명을 읽어주시는 게 엄청 솔깃하고 좋았다’라는 후기가 인상 깊더라고요. 예지님이 가진 능력치를 한껏 발휘한 전시 도슨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당 전시는 개인적으로 지원해서 하게 된 도슨트 활동이었나요?

 

아뇨. 그건 소개로 이어진 전시였어요. <유에민쥔(岳敏君) : 한 시대를 웃다>는 현장 도슨트를 고용하지 않는 전시였고, 전시 기획사가 아닌 별도로 프라이빗 도슨트 투어를 기획한 기획사가 따로 있었어요. 그 기획사에서 원래 다른 선생님께 도슨트 투어 의뢰를 하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저는 못하겠는데 혹시 해 주실래요?”라고 제게 제안을 주신 거죠. 마침 제가 중국어 전공이기도 하고 너무 하고 싶어서 하게 됐죠.

  

정말 우연의 순간들이 겹쳐서 만들어진 기회들이 많았네요. 마침 예지님의 중국어 능력을 살리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그 기회를 잡아서 해냈고요.

 

맞아요. 그래서 실제로 도슨트 활동 중 3~4 곳은 제가 지원을 했고, 나머지는 소개 또는 의뢰가 들어와서 하게 됐죠.

 

그렇게 개인적으로 지원해서 도슨트를 진행할 때 예지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제가 전시를 선택하는 기준은 마땅히 없고 처음에는 일할 수 있는 근무조건에 따라 지원을 했어요. 우연히 좋은 기회가 닿으면 일단 시작을 해보고 좋은 점을 발견하는 거죠. 이전에 관심 없었던 미술 사조나 아티스트여도 도슨트를 하면서 더 좋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예지님에게는 조금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2020년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도슨트 경연 대회”에서 우수상 수상. 해당 대회는 해설자의 역할을 넘어 개인의 개성과 퍼포먼스가 더해진 재능 만점 이야기꾼, 즉 퍼포먼스 도슨트를 선정하는 자리로 ‘자원봉사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직업인으로서 도슨트로 인정받기' 위한 취지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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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제 1회 대한민국 도슨트 경연 대회> 우수상

 

 

“제1회 대한민국 도슨트 경연 대회”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다른 도슨트님이 이런 대회가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인터파크에서 후원을 하는 대회였고,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서 그런지 관련 정보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주최 측에서는 ‘재능적이고 예능적’인 요소를 많이 보겠다고 했어요. 퍼포먼스 도슨트라는 명칭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1회이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어떤 것이든 처음이라는 건 부담감과 함께 돌아보면 더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대회에서 1등을 하신 분은 아크로바틱과 국악 쪽으로 공연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대회 당시에 공중제비를 돌고 상모를 돌리는 퍼포먼스를 하셨어요.

 

예지님은 어떤 퍼포먼스를 선보였나요?

 

저는 제 전공인 중국어를 살려보자 해서 저만의 콘셉트를 잡아서 진행했어요. 실제 미술관에서 해설을 할 때보다 더 떨렸는데 우수상을 받을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심지어 당시 관계자 중 한 분이 대회가 끝난 후 마음속으로는 제가 1등이라고 의견을 더해주셔서 더 행복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당시의 경험은 예지님에게도 뜻깊으셨을 것 같아요. 이 대회가 예지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었나요?

  

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의 연령대, 직업, 배경 등이 굉장히 다양해서 더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것을 매개로 함께 무언가를 선보이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떨리기도 하고 동시에 즐겁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예술의전당에서 ‘초현실주의 거장들’ 도슨트를 진행 중인 예지님. 어려울 수 있는 미술 용어들을 그만의 예시들로 쉽게 풀어 설명해 주는 것은 물론 마스크를 뚫고 나올 정도의 활기차고 유쾌한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다. 미술관에 미술 작품을 보러 온 것도 맞지만 틈틈이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주고받을 때에는 이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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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초현실주의 거장들>

 

 

예지님만의 도슨트 스타일이 있을 것 같아요. 도슨트를 준비할 때 가장 중점을 두거나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쉽고 재미있는’ 해설이에요. 특히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해설을 진행할 때는 처음 해설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중점을 두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시는 분들도 해설을 들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얻어 갈 수 있는 해설을 하는 것이 목표죠. 근데 진행을 할 때마다 ‘이것보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항상 아쉽기도 해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습관처럼 배어 나오는 일상적인 언어에서 벗어나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말이죠.

 

맞아요. 근데 제가 비전공자로서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전공이 아닌 분들의 시선을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전공이신 분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부분을 제가 한 번 더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배운 것이라 당연한 거지’가 아니라, 처음 오신 분들도 ‘이게 왜 이거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관람객분들에게 적합한 예시나 질문으로 계속 제시하는 것 같아요.

 

 

  

PART 2: 도슨트의 희로애락 순간 속으로



원래는 다수를 대상으로 도슨트를 진행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소수 예약제로 진행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소수를 대상으로 도슨트를 진행할 때가 훨씬 더 어려운데 반대로 재미있을 수 있어요. 다수를 대상으로 할 경우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많은 분들의 답을 듣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이렇게 생각하시지 않을까하고 예상 답변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소수로 진행하면 바로 여쭤보면 되거든요. ‘어떠세요?’하고요. 그 생각들을 듣는 게 좋죠.

 

도슨트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 또는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궁금해요.

 

한 2주 전이었던 것 같아요. 예약자가 한 분이셔서 1:1로 도슨트를 진행했는데 질문을 적극적으로 해 주시더라고요. 보통은 50분에서 1시간 정도 도슨트를 진행하는데 그때는 1시간 반을 진행한 거예요. 그러니까 준비한 것 이외에도 30분간 그분과 이야기를 나눈 거죠.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을까요?

  

사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항상 있는데, 그런 질문들은 다음 해설에 녹여내요. 그래서 중반에서 후반부 해설을 들으시는 게 더 재밌어요. 현재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시에 있는 그림들 중에 ‘오토마티즘’이라고 ‘마음대로 그리는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있어요. 방금 전 1:1로 진행했던 분이 그 그림을 보시고는 ‘낙서’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전문가의 시선으로 봤을 때 ‘낙서’와 ‘오토마티즘 기법으로 그린 작품’ 사이에 어떤 변별점이 있는지를 물어보시더라고요. 전문가가 아닌 분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잖아요. 실제로 관람객분들 중에서도 ‘이거 나도 그리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꽤 많으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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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초현실주의 거장들>

 

 

예지님은 그 질문에 뭐라고 답변하셨나요?

  

제 개인적인 답은, 미학적으로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똑같다.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들이 동심에 집착하는 분들도 있고 혹은 그 동심을 붙잡아 두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 노력으로 남겨진 것 중 하나가 낙서처럼 보이지 않을까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아티스트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더 붙잡아두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행동들을 해왔기 때문에 그 결과물로 탄생한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드린 답변이었죠.

 

듣고 보니 예지님의 답변에 나름의 근거가 있고 탄탄한 서사가 있네요. 질문하신 분도 예지님 답변이 흥미로워서 계속 질문을 던지셨던 것 같아요.

 

사실 전문가분의 시선도 궁금하긴 해요. 어떻게 생각하실지요. 물론 정답이란 게 없지만, 제 개인만의 답을 찾아서 드릴 수 있으니 소수로 진행되는 도슨트가 매력이 크죠.

 

반면에 어렵고 힘든 일도 있을 것 같아요. 요컨대, 아직까지도 도슨트라는 일이 온전한 직업인으로서의 개념보다는 자원봉사자의 개념이 크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나 환경이 어려운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이처럼 예지님이 도슨트 일을 하면서 난항을 겪었던 순간들이 있다면요?

 

이전보다 확실히 변화는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도슨트의 처우나 업무 환경이 열악한 편이에요. 어떤 면접에서는 “계속 도슨트를 하실 건가요? 다른 목표는 없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어요. (그 질문은 도슨트는 직업이 될 수 없고, 낮은 목표라고 무시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러한 대우를 받으면서 내가 앞으로 계속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어요. 이 부분은 저 말고도 많은 도슨트 분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고요.

 

아직도 많은 기획자분들이 도슨트를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셔서, 그게 제일 아쉽죠. 물론 굳이 도슨트가 필요 없는 전시나 미술관이 있기도 하고, 미술관에 필수 역할 중 도슨트의 우선순위가 0순위 1순위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주시는 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하는 바람입니다.

 

도슨트는 ‘지극히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슨트 일을 계속하게 되는 예지님만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1차적으로는 좋은 피드백이죠. 실제로 “저 도슨트 처음 듣는데 진짜 너무 좋았어요.” “안 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이런 피드백을 들으면 그날 하루가 너무 행복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거든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내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아요. 도슨트라는 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좋은 피드백을 받을 때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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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오스제미오스: You Are My Guest:>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예지님의 정체성이 뿌리 깊게 내려서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것 같아요. 중국어를 전공으로 해서 잠시 강사로 일하시다가 그만두셨지만 도슨트로서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방법은 달라졌지만 또다시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고요. 도슨트로서 추구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도슨트로서 임하는 마음가짐 또는 태도를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도슨트로서 ‘쉽고 재미있는’ 해설을 하자! 가 제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나아가서는 문화예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감정의 ‘풍요’를 느낄 수 있으면 하는 소망도 있어요. 제가 도슨트를 시작한 곳이 백범김구기념관이기도 하고 역사도 좋아하기 때문에 김구 선생님 말씀을 빌려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는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백범 일지, 나의 소원 중에서

 

 

저는 우리 인생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하고,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김구 선생님도 문화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PART 3: 문화예술을 애호하는 한 사람의 마음



아트인사이트 슬로건이 ‘문화예술은 소통이다’인데요. 문화예술은 소통할수록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문장이에요. 예지님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도슨트로서의 답과 제 개인적인 답이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웃음) 애호가로서 예술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예요. 제가 살아가면서 일상에 지칠 때 힘을 얻는 곳이죠. 그런데 도슨트로서 예술은 애증의 존재예요. 정말 사랑하지만 또 정말 어렵고 저를 힘들게 하기도 하니까요.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예지님이 예술로부터 마음의 힘을 얻게 되는 구체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직접적으로는 미술관에 갈 때인 것 같아요.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처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동시에 도슨트의 마음으로서 공부하는 장소이기도 한데 그래도 배움에서 오는 성취가 또 있어요.

 

예술은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에 어려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미술을 감상할 때 도슨트님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사실 특별한 저만의 방법은 없어요. 많은 분들처럼 작품을 보면서 ‘멋지다, 아름답다, 잘 그렸다, 못 그렸다’ 등의 생각을 해요.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으면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관련된 정보 같은 것을 검색해 보죠.

 

도슨트 경연 대회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미술을 감상하는 것이 연애와 똑같다'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이상형이나 연애 스타일이 다른 것처럼 어떤 작품을 모든 사람이 좋다고 말할 수 없죠. 처음에는 알 수 없어요. 당연히 여러 번 경험을 해 봐야 해요. 시간과 애정이 필요한 일이죠. 보다 보면 누구나 끌리는 그림들이 있을 거예요. 사람도 여러 번 만나봐야 더 깊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또 좋은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 미술 작품 역시 그렇죠.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은 반대로 아직 애정이 부족하거나 사랑을 찾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도슨트가 사랑을 찾는 큐피트가 된다면 더 좋겠어요.

 

최근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새해를 기념하여 “사서 고생하는 해를 제대로 보내고 ‘성장’하는 해 보내기”라는 다짐을 적으셨더라고요. 2022년 예지님의 향후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향후 활동 계획은 저 역시 궁금해요. (웃음) 사실 SNS에 쓰는 감상이나 다짐 등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지만 저만의 일기장이라고 생각하고 기록하거든요. 지금까지 다시 보는 글들 중 하나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도슨트 일을 할 때 남긴 기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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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고예지,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

 

 

그날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도 갈라지고 몸이 너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짧게 끝내자’라는 마음이었는데 웬걸 그날 관람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목소리도 그냥 나오고 평소보다 길게 진행했죠. 그때 ‘누군가에게 한 번뿐인 경험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고 해서 허투루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그 마음으로 적은 다짐의 글이었어요. ‘사서 고생하는 해를 보내자’라고 공개적으로 적었으니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할 테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도슨트 고예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원래는 제 이름에 꼭 ‘도슨트’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문득 떠오른 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제가 종종 생각하는 분 중 하나가, 김은비 도슨트님인데요. 그분의 해설을 들으면 아티스트를 정말 사랑하는 게 느껴지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게 느껴져요. 저도 누군가에게 ‘이 일을 정말 좋아해서, 사랑해서 하는구나’하고 느껴지는 사람이고 싶어요.


 

*

본 인터뷰는 대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전문 필진_신송희.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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