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꿔오던 것들에 대하여 - 90일 밤의 미술관: 이탈리아

3년 간 품어온 아쉬움을 달래준 책
글 입력 2022.01.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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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럽다는 단어의 뜻을 느끼고 싶어서 여행을 떠났었다.

 

2019년의 마지막 달부터 시작한 여행은 1월의 절반을 지나야 끝이 났고, 성스럽다는 형용사를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 정도로 스스로 정의 내리진 못했지만, 여독이 풀리지 않은 시점에서 저 짧은 문장을 마주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는 감정을 습득했던 여행이었다.

 

가우디라는 건축가의 삶과 자연에 대한 그의 호기심의 산물이 궁금했고, 절벽 위에 위치한 수도원에 들어가면 어떤 이들의 삶의 기억을 되짚어 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어렸을 적 산골짜기에 있는 사찰들은 여럿 갔던지라 종교적 색채가 있는 안식처에 대한 편안함이 조금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등장한 수녀원에 대한 좋은 기억도 남아있었다.

 

그런 나의 여행에서 성스럽고 장엄한 감동이 밀려왔던 순간을 뽑으라면 세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봤을 때다. 앞면과 뒷면에 따라 서로 다른 예술가의 이야기, 그리고 벽면에 스토리텔링 되어 있는 성경의 이야기는 인간이 예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절대적인 헌신이라는 가치에 도달한 순간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어느 산 전망대에서 봤을 때 감동이 한 번 더 찾아왔다. 다른 이들은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에서 인간들의 신앙심이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형상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종교는 없지만, 이토록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보여준다면 현혹되지 않을 사람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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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그라나다에 도착해 알함브라 궁전의 건너편 전망대에서 궁전을 바라봤을 때다. 계속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장면들을 추억하지만 어쩌겠는가, 동백꽃도 군락이 되어야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가.

 

나는 사소한 아름다움을 마주하기 전에, 거대한 거룩함에 쉽게 취하는 편이다. 그리고 현지인 가이드가 말해줬던 그라나다의 설산과 공주, 그리고 세비야의 오렌지와 왕자에 대한 에피소드 덕분인지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가 아닌, 인간의 상상력과 낭만,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할 나의 감동의 순간은,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만난 검은 마리아상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녀와 눈을 맞추기 위해 기다렸고, 나도 군중심리에 이끌려 검은 마리아상을 보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마리아상은 생각보다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목재의 유약이 오래되면서 검은색을 띠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미리 신앙심이라는 낯선 가치에 기대감을 증폭시켜서인지 수많은 마리아상 중에 이는 어떤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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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책은 90일 동안 새로운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열여덟 번째 날이 되는 날, 이날의 제목은 '이렇게나 투박한 성모 마리아라니'였다. 바티칸 미술관에 위치한 '마돈나'는 20세기 중반 예술의 새로운 시각을 연 '루초 폰타나'의 작품이다.

 

멀리서 보면 '마돈나'라는 조각상은 석회 반죽과 비슷한 재료를 손으로 뭉쳐서 발라 만든 작품처럼 보인다. 기존에 답습하고 있던 종교적인 조각의 대표적인 기준을 탈피한 것처럼 보이고, 작가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이면서도 추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작가는 어쩌면 루초 폰타나는 곱게 치장한 성모 마리아가 아닌, 자연의 성질을 그대로 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냐며 이 작품을 회상했다.

 

나 또한 땅에서 솟아오른 것 같은 조각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지난겨울, 수도원에서 만난 검은 조각상이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성모 마리아상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온화함과 이유 모를 편안함의 근원은 종교적인 신앙심보단, 어머니라는 근원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내가 마주했던 마리아상들의 의미, 그리고 조각상과 눈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는 이들의 공통된 포근한 기대감이 종교적인 의미 그 이상의 성스러움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 이상으로 많다. 예술사와 너무나 밀접한 유럽의 역사, 르네상스 3대 거장을 비롯한 매력적인 인물들, 서로 다른 기준점을 가진 황금시대들까지 한 시대가 한 작품에 미치는 거시적인 흐름부터, 한 여인이 예술가에게 미친 치졸한 사랑 이야기까지. 이 책은 90일의 밤과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시공간으로 독자들을 접했지만,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온 인류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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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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