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경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다
단편 소설집의 매력은 앞에서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책을 받아 든 나는 목록에서 가장 끌리는 제목을 찾아내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호기심을 따라 책을 뒤죽박죽 들추다 보니 순식간에 책장을 덮게 되었다.
처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거짓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잭은 자기 사무실을 좋아했고 자기 사무실을 좋아해도 괜찮았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첫 문장이다. 당시 편집장은 평소답지 않게 이 첫 문장만 읽고 원고를 싣기로 결정했다.
"딱 보니 알겠어요." 그녀는 읽어보라고 내게 원고를 건네며 말했다.
물론 그녀가 옳았다.
- 398p
모나 심슨의 해설에도 나와 있듯이 단편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첫 문장은 제목만큼 매력적이다. 재밌는 세계가 펼쳐질 것 같다는 강렬한 직관은 나를 곧장 다음 문장으로 데려갔다. 얼마 안 가 나는 잭의 사무실로, 그리고 잭과 로이 형제의 미묘한 대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궁금증을 자극하는 제목과 첫 문장. 단편은 어떻게 하면 짧은 분량 내에 가장 효과적이고 압축적인 방식으로 독자를 매료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다.
데니스 존슨이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서 겨우 천 개 남짓의 단어로 개인이 영원에 맞서는 서사를 전달한 것처럼, 작가들은 사소한 순간에 묶여 있는 존재들을 간결하게 그려내면서도 그와 동시에 가장 깊이 있는 에센스를 추출해낸다.
단편 소설의 시학은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한다. 독자는 알쏭달쏭한 행간의 함의를 추측하고 상상하면서 책과 자신 사이의 깊이를 확장한다. 책 속 세계로 깊숙이 진입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음미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최대치의, 때로 충격적인 통찰력
책에 실린 열다섯 편의 단편에는 그와 관련한 간략한 해설이 수록되어있다. 다양한 필자가 해당 작품을 선정한 이유와 작품이 가진 뛰어난 점에 대해 서술한다.
작가이자 성실한 독자이기도 한 이들 고유의 시선과 감상을 통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작품의 또 다른 일면을 곱씹어보는 일 또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가 선사하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단락은 아래와 같다.
카버는 이야기의 형식이 아무리 화려하거나 이리저리 꼬였더라도 그 순수한 뼈대는 언제나 단순하고, 근본적이며, 깊은 인간적 원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전한다. 감정과 형식과 이야기는 반드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마음을 써야 하고, 많이 써야 한다. 놀라울 만큼 흥미로운 매너리즘, 신랄한 농담, 기묘한 만화적 미래와 같은 꾸밈이 많은 문장은 그것의 뼈대가 순수하고 솔직하고 인간적인 관심에서 우러나올 때 비로소 세련되고 멋진 글이 된다.
-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109p
<춤추지 않을래>는 기승전결도 주제도 명확하지 않지만 왠지 모를 비감이 강하게 전해져 오는 소설이다. 단순해 보이는 문장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종류의 울림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강렬한 찰나의 느낌과 감정이야말로 단편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기쁨 아닐까? 밑줄 친 문장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며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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