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리지널리티의 모범: 로이 리히텐슈타인 展

글 입력 2021.12.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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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하면 떠올리기 쉬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아마 앤디 워홀일 것이다. 그가 남긴 이미지들은 화려하고 강렬해서 대중들에게 팝아트가 무엇인가에 대해 작품만으로 온전히 각인시켰다. 그런데 앤디 워홀 못지 않게 우리에게 팝아트의 거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만화적인 양식을 활용한 작품들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이번에, 한국에서 최초 단독전으로 열리게 되었다.


스페인의 셀레브리티이자 아트 컬렉터인 Jose Luis Reperez의 컬렉션이 이번에 서울숲 아트센터에서 전시회로 기획되었다. Luis Ruperez & Silvia Serrano 컬렉션이라 불리는 이번 전시는 유럽과 중국 등 세계 각지 16개 도시에서 2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만났는데, 이번 서울전이 이 컬렉션의 29번째 전시라고 한다. 국내 최초로 이루어지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단독전인 데다 팝아트 전시를 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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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전은 도슨트가 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그리고 오후 4시로 구성되어 있다. 도슨트 시간보다 이른 10시 30분 경에 서울숲 아트센터에 도착했기 때문에 도슨트를 들을 생각 없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여 바로 관람을 시작했다. 그런데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려서, 아직 완전 초반부를 보고 있는데 도슨트 해설이 시작된 게 들렸다. 그래서 오디오 가이드를 멈추고, 바로 입구로 달려가 도슨트 해설을 들었다. 토요일 관람이어서 채보미 도슨트의 해설을 들었는데, 가급적 오디오 가이드보다 꼭 도슨트 해설을 듣기를 권장하고 싶다. 오디오 가이드보다 훨씬 더 풍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도슨트 해설은 비교불가의 우위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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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굉장히 의외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팝아트적인 면모를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 리히텐슈타인은 추상표현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은 그의 초기작은 상당히 난해하게 보인다. 그런 그에게, 그의 아들이 인생을 바꾸는 한 마디 말을 던진다. "아빠는 이 만화처럼 잘 그릴 수 없지?"


어른이 보기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의 초기작들은, 어린 아이의 눈에는 어려운 작품조차 되지 못하고 못그린 그림에 불과했던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아들은 아빠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불쑥 아빠를 도발했다. 장난스러운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위해 만화로 미키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무명이었던 그가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는 팝아트의 대가로 발돋움하는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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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에 이미 럿거스 대학의 조교수로 교편을 잡고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동료교수였던 앨런 캐프로는 마치 미키마우스 작품처럼, 추상표현주의를 넘어 다양한 표현방식에 관심을 가질 것을 독려했다. 매스 미디어 역량의 강화와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추상표현주의보다 일상적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적인 요소들이 내포된 것들로 사조가 변화해갈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조언을 받아들여,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적인 그림체에 벤데이 점(Benday Dot)을 활용하는 자신만의 화풍을 점차 만들어나갔다. 이로 인해 1960년대에 생산된 그의 작품들은 확실히 만화적이고, 벤데이 점으로 인해 스타일이 확고하다.


특히 그는 여성을 이미지적으로 많이 활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만화적인 요소를 활용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금발머리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1960년대는 다양한 권리운동들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다양한 인권운동 중에서도, 이 시기는 미국에서 여성인권 신장에 대한 필요성과 인식 수준이 제고되던 때였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던 작가는 아니었지만, 아주 우회적으로나마 이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그가 작품의 전면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여성 인권이 증진되어야 한다는 당대의 흐름에 그가 동조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만화 속 인물들은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데, 그런 면에서 여성이 만화적 캐릭터로 적합했다는 이상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오 가이드보다는 도슨트 해설이 확실히 생생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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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적인 요소에서 특히 부각되는 검은색 테두리 선과 벤데이 점을 가지고,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컷 같은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어떤 면에서 그의 시선을 사로잡게 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의 화풍을 구축해 나가는 단계에서 붓질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붓질하고 남는 그 거칠고 생동감 있는 느낌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본인이 가진 테두리 선과 벤데이 점을 활용하되, 붓질한 터치를 살리는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이 붓질에 굉장히 진심이었던 듯하다. 그는 고흐같은 붓질로 화폭을 채우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붓질로 먼저 그림을 그린 다음 이것을 테이핑하여 본따 그린 뒤, 이를 다시금 화폭에 제대로 옮겨 그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붓질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리면서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동감 있는 붓질의 느낌과 만화적인 테두리 선 그리고 기계적인 듯한 벤데이 점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오히려 벤데이 점은 배경으로 가라앉고, 붓질한 느낌의 작화는 더더욱 살아나는 것을 작품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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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벤데이 점과 같이 기계적인 기법을 활용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루어지던 당시의 생활양식에도 굉장히 주목했다. 예술을 일상에서 먼 것으로 느끼지 않고, 우리가 자주 보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예술의 일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을 일상생활과 가까이 보면서 비단 일상적인 용품에만 집중했던 것이 아니라 공간에도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살면서 9개 가량의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일상적인 공간과 예술의 만남을 중요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푸른 색의 붓질 이미지가 담긴 이 벽화는 굉장히 주목해야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이전의 작품들과 이후의 작품들을 연결하는, 리히텐슈타인 인생에서 큰 변곡점과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추상표현주의에서 시작해서 만화적인 요소와 벤데이 점을 활용하여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를 활용한 자신의 화풍을 구축해 가는 중에, 그는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과 정물화, 아르데코 양식 그리고 현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에 두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과거에도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만화 양식과 벤데이 점을 활용하기 시작한 이후에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것들을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요소들이 이 작품 속에서 확인된다.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부터 자신의 과거 작품들과의 교차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피카소적인 느낌이 연상되는 부분들까지 보고 나면, 리히텐슈타인이 앞으로 더 많이 변하리라는 것을 관람객들도 유추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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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차원에서, 아르데코 요소를 살펴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인상적이다. 리히텐슈타인 특유의 만화적인 검은 테두리 선과 벤데이 점이 살아있으면서도 직선과 곡선이 조합되는 아르데코의 느낌이 완연하다. 더군다나 흰색 배경과 검은색 테두리 선, 여기에 일부 면은 채도가 높은 노란색과 남색을 활용하여 적은 색의 활용으로도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게 작품을 구성한 것을 볼 수 있다. 만화 양식일 때에도 원색을 활용했던 리히텐슈타인이었지만, 그 시기의 작품들보다 간결해지고 추상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말풍선으로 텍스트를 쓰던 만화풍 양식보다 더 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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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아르데코 양식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영감을 준 미술가들의 작품을 오마주하여 자신의 화풍으로 재창조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는 것이 몬드리안의 작품을 가지고 자신의 화풍으로 재생산한 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회화의 선구자인 몬드리안 하면 직선과 직선으로 분할되는 면, 그리고 수없이 이어지는 직각으로 인한 차가움, 제한적인 색의 활용까지 더해져 딱딱하고 엄격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사실 몬드리안의 작품 원화를 보면 채색된 면에서 단면이 굳어 살짝 금이 가 있다거나 하는 모습들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마냥 몬드리안을 기계적이라고만 평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봄직하다는 것이다.


이는 몬드리안을 오마주한 리히텐슈타인도 동일했다. 사실 리히텐슈타인이 사용한 벤데이 점 기법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걸맞게 굉장히 기계적으로 회화 작품을 생산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물론 이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이 완전히 기계로 벤데이 점을 프린트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의 그는 빗 같은 가늘고 세밀한 물체에 물감을 찍어 점묘화 같은 느낌으로 벤데이 점을 활용했다. 즉 최초에는 회화적인 느낌으로 활용하다가 점차 발전되어간 것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기계적인 느낌과 획일적인 벤데이 점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내긴 했지만, 이마저도 여전히 스텐실 기법으로 칫솔 등을 활용해 점을 찍어내곤 했다. 그래서 기계적이라고 평가받는 그 벤데이 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동그랗게 채색되지 않고 울퉁불퉁한 면이 보이는 점도 있고 색이 완전히 진하게 끝맺어지지 않은 점도 있다. 몬드리안을 오마주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도, 마치 몬드리안과 동일하게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들이 엿보였다. 그런 점에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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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히텐슈타인의 스타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에 대한 동경이나 아르데코 양식, 피카소나 마티스 또는 세잔이나 몬드리안에게 받았던 영향만으로도 충분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지만, 그는 말년까지도 끝없이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고민했던 듯하다. 리히텐슈타인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전시에 참여한 바 있었다. 그 때 동양 문화에 대해 접하며 나름대로 신선한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말미에 이르러 리히텐슈타인은 동양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내는 작품 활동도 이어갔다.


여기서 또 유의 깊게 볼 것은, 그가 비단 동양화풍을 차용하는 선에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에 자신의 스타일로 가지고 있었던 검은 테두리 선의 활용이 이 작품 속에서는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벤데이 점 역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과거처럼 동일한 크기의 벤데이 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리히텐슈타인은 후반부에 이르러 점을 다양한 크기로 활용함으로써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또한 선과 면이 사라짐으로써 벤데이 점이 비단 한 면 또는 배경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배경과 면을 넘나들며 경계를 넘어서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끝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탐구자 정신으로 찾아 나섰던, 모범적인 미술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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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결국 레오 카스텔리의 존재다. 현대 미술 특히 팝아트 쪽에 있어서 레오 카스텔리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런 얘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현대 미술의 거장들을 발굴하고 세간에 소개하며 그들을 주류가 되도록 이끈 것이 매번 레오 카스텔리가 아니었던가.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예술을 알아봐주는 사람의 존재, 자신의 작품을 높게 사고 후원해주는 이의 존재 그리고 미술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팔릴 수 있도록 세워주는 사람의 존재가 정말 중요할 것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에게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이를 높게 사서 미술 애호가들에게 그를 소개시켜 주고 그를 성장시킨 레오 카스텔리가 거의 메디치 가문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레오 카스텔리 포스터 속에서도 리히텐슈타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벤데이 점의 활용, 제한적인 색상의 활용, 검은 테두리 선의 활용과 더불어 피카소를 연상시키는 재치가 느껴지지 않는가. 더 분할시키고 더 입체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포스터답게 적당한 정도로 위트를 발휘한 리히텐슈타인을 보면 새삼 그가 얼마나 센스 있는 사람인지를 느끼게 된다. 작품 속에 익살스러운 요소들을 넣은 것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아주 작은 요소지만, 레오 카스텔리의 포스터에서 여자의 머리핀과 코사주 수준으러 커 보이는 남자의 브로치는 리히텐슈타인의 익살스러운 재치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이런 매력에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더 자세히 뜯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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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를 보러 가면 종종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는 전시들이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키스 해링 전이 그런 면에서 강렬하게 남았다. 키스 해링 단독전의 후반부에 있었던 작품들은, 그가 명을 달리 하기 직전에 마쳤던 작품들이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바닥이었을 그의 심경이 드러나 작품 자체에서 느껴지는 불안정성이 너무 컸다. 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의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누군가의 단독전을 보러 가게 될 때면 항상 긴장하게 되는 경향이 생겼다. 말년의 작품들에서 그런 처절함이 느껴진다면, 나에게도 그 불안감이 전이되는 느낌이 들어 버거울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보미 도슨트의 해설처럼,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모범생적인 미술가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술 전공으로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도 이어갔고, 살아생전에 세간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 덕에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것들을 접목시켜 가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큰 탈선 없이, 큰 방황 없이 리히텐슈타인이 작품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관객으로서 큰 부담감을 느낄 틈 없이, 아주 즐겁고 흥미롭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모범적이면서 오리지널리티는 확고한 팝 아티스트. 그래서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은 아주 다채롭고 즐거웠다. 다음에도 리히텐슈타인 단독전이 열릴 기회가 있다면, 이번에 보지 못했던 더 많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해설 중간 중간에 채보미 도슨트가 살짝씩 보여주었던 리히텐슈타인의 다른 작품들도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을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보고 싶어졌다. 만일 이번 전시를 관람할 계획이 있다면 꼭, 도슨트 시간에 맞춰 도슨트 해설과 함께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모범생적이면서도 얼마나 매력적인 작가인지, 다양한 시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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