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의 경계선 -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에게
글 입력 2021.12.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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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처음 접했던 리히텐슈타인은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문에서 가장 먼저 찾아 읽는 것이 만화였던 학생이라 그랬을까. 여러 미술 사조 설명 사이에 끼여있던 [Whaam!]은 숨통을 트게 하는 작품이었다. 직관적이고 익숙했다.


이번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는 리히텐슈타인의 첫만남을 도모했던 [Whaam!]을 비롯하여 [절망 Hopless] 등 그가 작가 생활 전반에 걸쳐 작업한 작품과 유명 브랜드의 협업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리히텐슈타인 작품에서 가장 특색있는 ‘벤데이 점’ 기법을 활용한 작품뿐만 아니라 초기 흑백 포스터 작업, 잡지 표지 협업, 표지 디자인 작업, 공예품 등을 다루며 리히텐슈타인을 좀 더 폭 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전시장 내부에는 반고흐의 ‘아를의 침실’ 작품을 리히텐슈타인 기법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공간화 한 포토존을 설치해 관객의 실질적 참여를 유발한다. 정해진 시간마다 도슨트가 전시회 작품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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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히텐슈타인 전시회에서 개인적으로 발견한 리히텐슈타인의 새로운 면모는 그의 만화적인 작품과 ‘벤데이 점’ 기법에만 익숙한 뭇 관람객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공업품의 예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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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평생 예술인 것과 아닌 것의 경계를 찾고자 했다. 중간 세션에 위치한 양말 포스터는 이 고민을 무척이나 잘 보여준다. 양말 포스터 사진은 별다른 특색이 없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사물에서 다른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붓질이 독특하지도 않다. 그냥 양말이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생활용품의 실용적 의미를 들어내고 새 개념으로 탈바꿈시켰다면 리히텐슈타인은 공업품을 있는 그대로 그림으로써 예술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일상 생활과 맞닿아 있는 것, 대중에게 익숙한 것.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로 끌어내린 것이다.


양말 그림은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매력적이다. 약 50년 전 그림인데도 세련되었다. 다이어리나 책의 표지로, 플랫폼에 양말 광고로 사용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리히템슈타인의 그림은 이렇듯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여전히 50년 전과 같은 양말을 신고 있으니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붓질의 주인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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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에서 돋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입체적인 붓 자국이다. 특히 해바라기 작품의 경우 빠른 붓놀림으로 씨앗 하나하나가 실존하는 것처럼 도드라진다.

 

이러한 붓 선은 고흐 특유의 것이면서 사물의 질감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붓 선, 질감, 모양 그 자체가 그림이 된 적은 없었다. 언제나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을 그리는 수단으로 쓰인 거지 주인공은 아니었던 셈이다.


위의 그림은 리피텐슈타인의 작품으로 붓으로 선을 그은 뒤 그것을 확대한 모양을 그렸다고 한다. 붓이 지나가며 생긴 선이 매력적이다. 리히텐슈타인은 그림을 이루는 물질이었을 뿐인 선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한 번도 중심에 서지 못했던 붓 자국을 활용하면서 무엇이 예술인지에 대한 질문을 또 한 번 던진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시류였던 시절 작가 내면을 표현하는 그림은 대중의 시선에 다소 난해하게 보였다. 그런 중에 단번에 붓이 지나간 자리를 표현했음을 알 수 있는 이 그림은 눈에 띄었을 것이다. 또 작은 붓 자국을 크게 확대하면서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고 낯선 것이 익숙해진다. 친근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부여한다.

 

 

 

명화, 만화의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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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란 무엇인가. 표절은 무엇일까. 넷상에서 한 사람이 “원작을 알아야 웃기면 패러디, 원작을 알려주고 싶어하면 오마주, 원작을 숨기고 싶으면 표절”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패러디와 표절, 오마주를 관통하는 멋진 문장이다.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만화의 한 장면에서 따와 재창조한 것으로 늘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번 전시회의 첫 세션에는 원작 만화와 재창조한 그림이 같이 배치되어 있다. 자세히 살피면면 만화 속에서 중요하다 생각한 부분은 크게 확대하고 필요없다 생각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해 주제와 의미를 새로 부여하고 구조적 안정감을 추구한다.


항상 예술과 별개의 문화 취급을 받았던 만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고온 것은 리히텐슈타인이 꾸준하게 고민하던 부분, 예술과 아닌 것의 경계성에 대한 고민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만화 원작자의 이름은 사라지고 리히텐슈타인의 그림만 남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패러디 작품이 원 작품보다 유명할 때 이것을 표절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역시 같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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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피카소, 몬드리안 등의 유명 화가 작품도 재창조하였는데 만화와 마찬가지로 원작자의 의도나 의미에 집중하기 보다 자신의 작품 특색을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굵은 선, 명확한 색의 구분, ‘벤데이 점’.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수묵화였다.

 

‘벤데이 점’의 크기를 조절하여 묵의 농담을 표현한다. 사물 가까이에 있는 나무, 뒤에 펼쳐진 첩첩산중의 산. 수묵화를 본 적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그림이 수묵화의 형식을 차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이 재창조한 그림은 모두 존경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명화 작품을 재해석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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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는 언제나 한 작가의 일생을 보여준다. 무엇의 영향을 받아 어떤 화풍으로 바뀌었고, 무엇에 집중했는지를 알려주기에 단순히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보다 작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이번 리히텐슈타인 전시회도 그렇다. 단순히 만화적이고 점으로 표현된 그림만 그린 줄 알았는데 다양한 시도로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고민을 던졌다는 사실이 새롭다.

 

도슨트의 설명은 전시회에서 채 다 해소하지 못한 부분을 들을 수 있으므로 리히텐슈타인이 낯선 사람이나 전시를 더욱 꼼꼼히 듣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또, 세션은 시대순이 아니라 비슷한 화풍끼리 모아두었기에 각 세션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유추해본다면 더욱 즐거운 관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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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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