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워있는 눈사람 [미술/전시]

사라지는 예술, 영속하는 예술
글 입력 2021.12.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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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 동네에서 나는 눈덩이를 굴렸다. 동갑내기 친구는 몸통을, 나는 머리를 만들기로 약속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눈덩이를 굴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덩이는 이미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워져 있었다.

 

눈덩이 하나를 들어 다른 눈덩이 위에 얹는다는 건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에겐 불가능했다. 고민하던 우리 둘은 눈덩이 두 개를 굴려 나란히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눈사람이 누워 있는 거야.”

 

눈 오는 게 좋아 신나게 굴린 눈사람이 설치 미술이 되면 어떨까? 사실 설치라는 개념은 익숙하다. 미술의 영역이라고 해서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다. 작품을 배치하고 전시하는 과정 또한 설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작품 자체에 대한 집중을 넘어 사물과 사물, 사물과 장소라는 상관관계와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설치미술의 핵심이다.

 

이러한 상호관계를 생각하면 설치는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결국 설치미술은 대상보다는 공간 전체가 작품이 되기 때문에 감상자는 작품의 ‘감상’보다는 작품을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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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녹기 전, 조금 녹은 후의 모습. /에스더쉬퍼

 

 

녹아 흐트러지는 눈사람을 체험해 보는 경험은 어떨까?

 

그 주인공은 필립 파레노. 필립 파레노는 작가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하는 프랑스 설치 미술가다. 그의 ‘Iceman in reality park’는 눈사람 모양의 얼음 조각을 소형 맨홀 뚜껑 위에 올려놓고 녹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맨홀 뚜껑 밑에 설치된 음향 장치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얼음이 녹아 사라지고 있음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녹아버린 아이스맨이 있던 자리에는 아이스맨 몸에 박혀 있던 조약돌과 나뭇가지만이 남는다. 아이스맨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형태가 사라지는 눈사람 모양을 한 얼음의 모습은 우리의 삶 또한 유한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기술의 개입 없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사라지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과는 반대로 절대 녹지 않는 눈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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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 미술관 옥상에 설치된 피슐리, 바이스의 '눈사람' /시카고 미술관 제공

 

 

스위스 출신 듀오 작가 피슐리와 바이스의 작품이다. 그들의 눈사람은 정면이 투명 통유리로 된 냉동고 안에 들어가 있다. 녹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냉장고 안에 서리가 쌓여 점점 커지기도 한다. 눈사람의 해맑은 미소는 마치 본인이 뜨거운 태양에도 사라지지 않을 운명임을 알고있는 듯하다.

 

이 작품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서 전시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눈사람은 새로 제작되는데, 작품이 전시될 때마다 ‘역설의 미학’을 느낄 수 있다. 극도로 단순한 눈사람의 모습과 복잡한 기술의 결합만 봐도 그렇다. 녹아 없어지고 말 눈사람의 운명을 현대기술로 영속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연의 질서에 어깃장을 놓고 그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1987년 독일 뢰머 브뤼크 자브뤼켄의 화력발전소로부터 공공미술을 의뢰받고 구상됐다. 눈사람을 보존하기 위해 전력을 쓰는 것이 기후위기를 가속화 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눈사람은 한여름의 테라스에 설치되기도 하면서 또 한 번 역설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작품이 놓여지는 환경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예술이 될 수도,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이 예술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환경은 문맥을 가진 구체적인 공간이다. 그 문맥을 파악하는 체험이 우리에겐 예술이 된다. 구체적인 대상만이 예술이 되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다시 나의 어릴 적 눈사람. 힘이 달려 몸통 위에 머리를 얹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었던 ‘누워 있는 눈사람’에 눈을 만들고 팔을 붙여 생명을 불어넣고 배경이 된 동네 마당을 그럴듯한 침구와 잠자리 정도로 만들어 주었더라면 훌륭한 설치미술이 되지 않았을까?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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