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백예린의 선물같은 앨범 [선물] [음악]

글 입력 2021.12.0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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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의 그리 잦지 않은 방송 출연과 앨범 발매 빈도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음악이 입소문을 타고 대중의 마음을 끌게 된 분명한 요인 중 하나는 자신만의 곡 해석을 더한 커버곡이다. 그간 '가끔', 'La La La Love Song', '장마' 등 사운드 클라우드나 공연에서 수십 개의 커버곡이 공개됐으며, 각종 페스티벌과 공연에서 촬영된 커버곡 영상 역시 SNS 상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꽤나 방대한 볼륨을 지닌 본인의 정규앨범 2장과 2집 리믹스 앨범, The Volunteers의 정규앨범 1집과 리믹스 앨범 발매 후 그가 선택한 행보는 커버 앨범 < 선물 >이다. 2019년 발매된 < Our Love is Great > 이후 2년 반만의 첫 한글로 구성된 앨범이다. 한글 앨범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모처럼 반갑고 그간 영어로 구성된 앨범을 보였던 그의 여정에도 환기를 가져다준 소식이다. 열 곡 이상이 수록된 정규 앨범과 대비되는, 여섯 곡으로 핵심을 간추린 구성이다.

 

 


 

포근하고 산뜻한 감정선을 그리는 < 선물 >은 건반 하나로 미니멀하게 편곡된 토이의 '그럴때마다'로 시작한다. 앨범 도입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반복된 하루 사는 일에/지칠 때면 내게 말해요”라며 전주를 생략한 채 온기 가득한 목소리로 청자를 반긴다. 첫 곡은 화려하지 않지만 진정성 있게 앨범의 포문을 연다. 전부터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라온 음원을 들어왔던 백예린의 오랜 팬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마중이다.

 


 

 

’Antifreeze’에서는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과 동료들의 목소리가 은은하면서도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악기로 연주된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담긴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울 거야”라는 메시지는 원곡에서 양 귀를 화려하게 오가던 신시사이저나 강렬한 기타가 없어도 충분히 비장하게 들린다.

 

혼란스러운 팬더믹 시대에서 결코 얼어붙지 않을 사랑의 존재를 암시하며 근거 있는 자신감과 함께 희망을 가져다준다. 다소 모순적인 메시지가 그의 산뜻한 목소리와 만나 설득력 있게 다가오면서 제목 그대로 부동액의 역할을 한다.

 


 

 

이영훈의 ‘돌아가자’는 백예린 표 보사노바로 재탄생됐다. 보사노바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베이스의 움직임, 다채롭게 버무려지는 다양한 퍼커션, 코드를 리듬감 있게 짚는 건반, 하나둘씩 쌓이는 기타와 패드 모두 조화롭게 합창한다. 원곡에서 일렉 피아노를 사용하는 것을 차용하여 긴 호흡을 지속하는 대신 짧고 반복되는 호흡으로 끊어내는 메인 리프는 머릿속에 빠르게 각인되기 충분하다.

 

 



 

장기호의 ‘왜 날?(Why me?)’은 < 선물 >에서는 ‘왜? 날’로 물음표 위치가 바뀐 제목의 타이틀 곡으로 수록됐다. 손길이 닿은 곳곳마다 잔상을 남기는 피아노가 백예린의 보컬을 받친다. 멜로디의 음절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따라가는 편곡은 멜로디의 리듬과 움직임, 가사에 은은하게 조명을 비춘다. 반복되는 구성을 통해 메시지를 강조하고, 다이내믹한 보컬 운용을 통해 과거의 창법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느꼈던 팬들에게 또 다른 선물을 선사한다.

 



 

 

폭발적인 보컬과 밴드의 시너지를 뿜어내는 넬(Nell)의 ‘한계’ 또한 백예린의 버전에서는 보다 힘을 뺀 터치로 구성된다. 원곡에서 두드러지는 폭넓은 음역대의 스트링과 강렬하게 한 음 한 음 꾹꾹 누르는 피아노는 악기의 사용을 그대로 가져오되 힘을 덜어내고, 원곡에서 최대한 배제된 드럼은 곡 초반부터 등장한다. 악기 구성은 다양해졌으나 오히려 편안하게 들린다. 보컬과 선율을 주고받으며 반복되는 피아노 섹션이 인상 깊다.

 


 

 

첫 트랙 ‘그럴때마다’와 마찬가지로 건반과 보컬로만 구성된 '산책'으로 마무리되면서 편곡 면에서 수미상관 구조를 이룬다. 앨범 커버를 구성하는 수채화와 일맥상통하게 물로 그린 그림처럼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더블 타이틀 곡 중 두 번째 곡인 ‘산책’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는 숨은 뜻을 지니고 있다. 역시 이전에 사운드 클라우드에 공개되어 발매를 기다렸던 팬들에게, 가장 선물답다 말할 수 있는 마지막 트랙이다.


앨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는 ‘위로’이다. 백예린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기보다는 물 흐르듯이 음악 속에 녹아드는 창법을 구사하여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은은하게 전달한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는 대중에게, 자신의 한글 또는 커버 앨범을 오래 기다려온 팬들에게 따뜻한 선물을 선사한다.

 

커버 앨범에서도 그만의 세계는 흐릿해지지 않는다. ‘그의 바다’에서 자신을 바다에 비유하며 그 속에 언제 파도가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말하고, '지켜줄게'에서 고가도로에 삐져나온 초록잎을 보며 이 도시에서 유일히 적응 못한 낭만이라 칭하는 남다른 감성을 보여 왔던 그의 행보는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설득력을 더한다.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등의 조휴일의 노랫말이나 “난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대체 내게서 뭐를 더 바라나요”,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줄 수 없음에 미안해해야 하는 건 이제 그만둘래요.”등의 여린 김종완의 노랫말은 백예린의 가창을 통해 마치 본인의 이야기처럼 표현된다. ‘그럴때마다’의 “내 자신보다 그댈 먼저 생각하는 남자가 있죠”에서 “남자가”를 “사람이”로 본인의 상황에 따라 알맞게 가사를 변경하여 노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원곡을 충분히 청취하고 선배들의 장점을 녹아내려는 노력 또한 곳곳에서 드러난다. ‘한계’에서 “무의미함”과 “차이” 등의 단어에서 김종완의 발음을 오마주한 흔적이 보이고, ‘돌아가자’에서 이영훈의 본래 가창처럼 자음과 모음의 연결을 늦춘다. 선배 아티스트에 대해 진정으로 존중하는 마음과 본인의 유의미한 카피 및 성실히 쌓아온 연습량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폭넓게 음악을 향유하며, 자신과 원곡의 존재감을 모두 살려내면서 그들의 조화를 이루었다.

 

< 선물 >은 아티스트의 확고한 음악 세계 구축과 더불어, 팬들을 비롯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 앨범이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프로듀서 구름의 추천으로 수록곡을 채워 넣었고, 소속사 직원의 추천으로 '산책'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했으며, 팬들의 한글 앨범을 향한 염원에 응답했고, 가수를 꿈꿨던 아버지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코러스에 참여하게 했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숨은 명곡을 향해 조명을 비췄다.

 

백예린과 그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발매된 선물 같은 < 선물 >은 선물의 포장지를 뜯을 때의 들뜸과 선물을 확인할 때의 감동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김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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