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짧은 콘텐츠, 짧아진 생각 [문화 전반]

효율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
글 입력 2021.12.0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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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풍경을 바라보면 시대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주섬주섬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신문을 널찍이 펼쳐보던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다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각자만의 세상을 즐기게 됐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른 지금, 지하철 안에는 쇼핑을 하고 드라마를 보고 만화를 보고 웹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그마한 직사각형 휴대폰으로 우리는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

 

자연스레 우리의 즐길 거리는 교체되어갔다. 1화에 60분 하던 드라마, 두툼한 소설책, 놀이터로 나가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대신에 짧고 화려한 영상 콘텐츠,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웹툰/웹소설, 보상이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게임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디지털 미디어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세상에는 순식간에 다양한 콘텐츠가 차고 넘치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건 너무나 많은데 볼 시간이 모자란 지경이다. 옛날에는 지상파 3사의 드라마만 골라 봐도 됐다면, 지금은 종편, 케이블 채널은 물론이고 웹드라마,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콘텐츠까지 봐야 하는 시대다.

 

수요자의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되어있는데 공급은 범람하듯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니, 해결방법은 하나뿐. 콘텐츠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다. 1시간짜리 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야 한다. 유명하다는 장편 소설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한 회를 감상하는데 10분, 5분이 소요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쉽고 빠르게 그 콘텐츠에 접근하게 된다.

 

레드오션으로 향해가던 영상업계는 근 몇 년 새에 더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는데, 거기에는 숏폼 콘텐츠가 큰 역할을 했다. 짧게는 10초, 길면 3분가량의 영상을 업로드하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숏폼 플랫폼이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월간 사용자 수 10억 명의 '틱톡', 그리고 후발주자인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는 숏폼 콘텐츠 창작자들을 끌어 모이기 위해 엄청난 투자까지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효율적인' 디지털 콘텐츠 소비 변화는 우리의 사고 과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승전결의 과정을 천천히 풀어나가는 기성 콘텐츠들은 감상자의 뇌를 여러 방면에서 자극해준다. 특히 전통 매체인 책은 글을 읽을 때 발달할 수 있는 이해력과 문해력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글보다 시각적인 영상 매체에 자주 노출된 젊은 세대는 글에 익숙해질 기회를 놓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길이가 긴 영상마저 감상에 귀찮음을 느낀다 하니, 사람들이 즉각적인 감상에 너무 익숙해져 간다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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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미디어 트렌드 2022』 - 샌드박스네트워크 데이터랩)

 

 

실제로 1020세대가 선호하는 영상 길이는 15분 내외로, 전 세대 중 가장 짧다. 영화를 다 감상하기보다는 유튜브에서 영화 요약본을 찾아보고, 선별된 정보만 알려주는 뉴스레터로 사회 소식을 접하는 우리 젊은 세대는 옳은 길을 가고 있을까.

 

물론, 책을 읽지 않는다 하여 꼭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리터러시의 측면으로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글을 통해서만 다양한 세상을 느끼고, 감정과 생각의 깊이를 넓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더 있으니, 짧게 소비하는 콘텐츠들마저 '비슷한 것들만'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알고리즘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주변은 온통 선별된 것투성이다. 유튜브,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쇼핑 앱, 일반 포털플랫폼까지. 이들은 소비자의 사용 기록, 패턴, 경향을 모으고 분석해 개개인이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를 소개해준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의해 보게 된 드라마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면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알고리즘이 잘 짜인 결과이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지 않는다. OTT 플랫폼이 추천해준 드라마가 처음 알게 된 것일지는 몰라도,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일깨우지는 못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보고 싶은 것을 알고 있는 알고리즘이 계속해서 비슷한 것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맞춤형 정보 제공 때문에 편향된 정보에 갇히는 현상을 '필터버블'이라고 칭한다. 필터버블 현상에 계속해서 노출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강화돼 사회, 정치적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만날 때 변화할 수 있다. 같은 것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가는 그 맛조차 잊어버릴지 모른다. 한정된 시간 내에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무언가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가끔 우리는 그 틀을 적극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

 

 

지금의 세상은 헤매지 않도록, 틀리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도 앱이 있으면 처음 가는 곳이라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쇼핑을 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가격과 기능을 비교해 싸면서도 인기 높은 상품을 산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또는 책을 사기에 앞서 인터넷 댓글이나 별점을 확인해 평판 좋은 작품을 고른다. 음악은 인터넷으로 미리 듣고 나서 앨범 속 마음에 드는 곡만 내려받는다. 다들 영리해진 탓에 궤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학창 시절, 들어보지도 않고 재킷만으로 선택한 레코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된다거나(대실패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딱히 취향이 아니었던 곡이 자꾸 듣다 보니 그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 된 적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고르고 고르다 보면 '미리 정해진 어울림'밖에 만나지 못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되기에 감동한다.


-  쇼노 우지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이, 사이트에서 추천받은 드라마가 우리의 팍팍한 삶에 한 줄기 빛과 같을 수 있다. 실제로 콘텐츠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양질의 발전을 이루고 있고, 참신하고 강력한 재미로 코로나 19 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곤 한다.

 

그 재미있는 콘텐츠들을 만든 창작자들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을까? 많은 창작자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그 답은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에 있다. 고전 문학과 영화를 감상하며 인간의 감정과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고, 뉴스와 기사를 꾸준히 살피며 사회의 변화를 읽는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를 다양하게 섭렵해 자기 안에서 그것들을 재창조해낸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씩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세상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 책과 영화, 드라마를. 다 보기엔 시간이 너무 길어 보이거나, 보고 싶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닐 것 같아서 미뤄둔 무언가를 시도해보자. 그것이 내 마음에 쏙 든다면 나는 나라는 사람의 폭을 넓힌 것이고, 아니라면 나의 취향을 확고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는 이런 사람도,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된다. 머리가 다 큰 젊은 어른들에게 이러한 깨달음은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부모님의 잔소리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이 정의한 모습과 한계를 깨부수려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사람은 매일매일 변화할 때 성장할 수 있다.

 

 

[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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