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서투름과 성장 사이를 오가는, 나의 이야기.

2021년의 끝자락에서, 나를 기록하다.
글 입력 2021.12.02 14:0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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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선 이름과 나이 외엔 할 말이 없었다. 먼저 물어오지 않는 이상, 선뜻 나에 대한 정보를 방대하게 늘어놓자니 그것도 영 내키지 않아 고민 끝에 입을 다문 영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은 키가 몇이냐며 놀라는 표정으로 물을 것을 대비해 고작 '키는 000cm에요.' 정도를 덧붙이던 나는 '자기소개'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는 이 프로젝트에 마음이 끌렸고, 참여하겠다고 덥석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여태 다른 대상들에 대한 글만 적어왔는데 막상 스스로를 소개하는 글을 적으려니 어떤 말을 적어야 할지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만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글을 적어 내려간다.

 

*

 

무슨 일을 하세요?


“유정 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음.. 연기도 하고, 모델 일도 하고, 알바도 해요. 아, 요즘은 글도 써요.”

 
누군가 내게 무슨 일을 하냐며 조심스레 물어왔을 때다. 프리랜서라고 답하면 무슨 일을 프리로 하냐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질문을 예상하고는 애초에 저렇게 답해버린다.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좋아하는 일도 많다. 가장 처음으로 꿈꾸었던 직업은 ‘배우’다. 나는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본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뮤지컬 영화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갖게 한 영화이다. 결국 공연예술학과로 진학한 나는 대학생활 내내 학교에서 연극을 올렸다. 연극을 하면서, 무대 위에 서는 일을 단 한 번이라도 가볍게 여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연기에 대한 애정은 무대에 오를수록 깊어졌다.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 연극을 했던 지난 20대의 순간들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동료들과 하나의 작품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몇 달간을 밤낮으로 함께 준비하고 오르던 순간, 조명 아래에서 흘리던 땀방울과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발현되던 희열, 슬픔, 외침을 포함한 온갖 감정들. 나는 그때가 가장 생동감 있던 순간이자, 빛나던 순간들 중 한 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학교를 졸업 한 후에는 작은 역할이어도 연기를 할 수 있는 자리라면 무조건 도전했으며 감사하게 제 역할을 연기했다. 모델로서 일을 하는 기회가 주어질 때에도 그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촬영한다. 직장인처럼 일주일에 5일을 꾸준히 출근하지 않는 나는 쉬는 날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주로 서빙하는 일을 했는데, 때로는 직접 간단한 음식을 만들거나 커피를 내리기도 했다. 왜 굳이 아르바이트를 하냐며 아르바이트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해온 모든 일 중에 원하지 않아서 한 일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나의 결정으로 일을 시작하거나 그만두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조차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배우지 못했던 경험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


요즘은 이 모든 일들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연기를 하면서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도 써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일의 첫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여기에 다 적을 순 없지만, 앞으로도 나는 도전해 보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한 곳에 소속되지 못하는 소외감과 한 가지로 쉽게 국한할 수 없는 다채로움 사이를 오가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내가 바라는 미래를 그리고, 매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현재에 충실하며, 그렇게 매일을 꿈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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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나는 좋아하는 순간들도 참 많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 햇살이 머리 위로 쬐는 것만큼 황홀한 순간도 없으며,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는 최고의 감탄사가 나온다. 좋아하는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 그간 소식들을 전하는 순간도 행복하고,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이 차려 주신 밥을 먹고 든든히 부른 내 배와 우리 집 강아지 초코를 동시에 쓰다듬으며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순간의 포근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밖에도 너무 많다. 운동할 때 가슴이 터질 듯한 희열과 상쾌함 또한 좋아하며,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 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뀌는 초록 불을 보며 ‘나이스 타이밍!’이라며 속으로 조용히 외쳐보곤 한다.
 
‘행복해’와 ‘좋아’를 남발하는 내게 도대체 싫어하는 건 뭐냐며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나는 몇 초간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지만, 없으면 됐다는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지인 앞에서 결국 없는 것 같은데,라며 얼버무리고 만다. 물론 조금만 더 머리를 굴린다면 싫어하는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었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딱히 싫어하고 싶지 않다. 그게 무엇이든.

 

세상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존재한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내면을 건강하게 가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라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억지로 긍정적으로 살자는 다짐보다는, 나를 좋지 않게 만드는 것에는 딱히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 한다. 내가 좋아하고, 내 주변의 감사한 것들에만 마음을 쏟는다. 정말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맞는 걸까. 요즘은 나를 힘들게 하는 일도, 스트레스 받는 일도 딱히 없다. 부정적인 자극이 와도 내면까지 해를 입힐 수 없도록 튕겨내면 되는 것이다. 만약 스트레스가 생긴다 해도 감사한 것에 더 집중하는 순간, 부정적인 감정은 곧 잦아든다. 그러니 세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더 많이 보일 수밖에 없고, 그 순간을 마냥 흘려 보내는 것보다 포착하는 것으로 또 하나의 작은 기쁨을 수확해낸다.

 
*
 
여기서부터는 지인들에게 받아 온 몇 가지 소중한 질문이다.
 
 
 
본인이 가장 쉰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인지?

 
나는 아무래도 혼자 있는 순간을 제일 좋아한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지만, 혼자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에너지가 100 퍼센트 채워지는 느낌이다. 꼭 생산적인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혼자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기도 한다. 잠시나마 휴대폰을 멀리하고 다른 소리가 아닌 오직 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이내 내면의 고요함이 찾아 든다. 나는 이 순간을 정말 좋아한다.
 
 
 
본인을 잘 다스리는 노하우 혹은 팁이 어떻게 되는지?

 
사실 ‘다스리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스스로를 통제하겠다는 마음은 결국 나를 괴롭게 할 뿐이다. 억지로 나를 어떠한 상태로 밀어 넣기보다는 내가 만약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있다면, 그냥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지금 이러한 마음(상태) 이구나.’라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감정과 ‘나’라는 사람을 분리하려 한다. 모든 감정과 상태는 영원하지 않다. 매 순간 생겨나고 사라지고 흘러가는 감정을 굳이 붙들고 그것과 나를 동일화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글을 읽으면 그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생각의 표현이 성숙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은데요. 언제부터 책을 사랑했는지, 에디터님에게 책이란?

 
이런 칭찬을 들으면 나의 미숙한 부분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오르면서 쑥스러워질 때가 많다. 여전히 서툴지만 성장 중인 나를 성숙하다고 좋게 봐주시는 마음 덕분에 더 좋게 보이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책을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명확한 시기를 꼽을 순 없지만, 여전히 책 읽기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나는 여러 장르 중 유난히 소설을 좋아한다. 흔히들 소설은 그냥 허구일 뿐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소설이 삶의 한 조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소설을 통해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정들을 느꼈고, 실제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튼튼한 밑바탕이 되어줄 때가 있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글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 어딘가에 희미하게 산재하는 기억이나 생각, 감정이 조각을 맞춰 또렷한 형태로 자리 잡을 때가 있는데, 그 또렷해진 생각이 곧 나의 주관이 된다.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많지만 더 길어지기 전에 여기서 대답을 정리하려 한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와 요리 꿀팁이 있다면?

 
이 질문을 해준 지인에게 너무 고맙지만, 사실 나는 요리를 잘 하는 편이 아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웬만해선 맛있다고 느낀다. 그나마 자신 있는 요리를 꼽자면 오트밀로 해 먹는 요리다. 나는 종종 쌀밥 대신 오트밀을 불려서 밥 대용으로 먹는데, 그러면 소화도 잘 되고 속이 편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요리 꿀팁이 있다면, 내 입맛에 맛있으면 되는 거다,라는 마인드로 요리를 해 먹는 것이다. 그러면 요리에 소질이 좀 있는 것 같다는 자아도취와 함께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가고 싶은지?

 
나는 바다를 정말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말 앞에 ‘정말’이라는 단어를 스무 번은 더 붙여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작년에 바다를 보러 갔던 한 날은 여전히 선명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가득 머금은 햇살 덕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바다, 적당히 넘실거리는 물결, 귀가 뻥 뚫릴 듯이 경쾌한 파도 소리, 아무도 없는 해변. 이 광활한 풍경에 함께 속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무작정 바지를 걷어 올리고, 두 발을 휘감았다 사라지는 물의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며 맨발로 걸었다. 이어폰에선 내가 좋아하는 검정치마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바다의 광활함과 이 순간의 황홀함이 어설픈 사진 한 장으로 남겨지기에는 아쉬워서 사진은 찍지 않았다. 오롯이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 느꼈다.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 끝에는 눈물이 날까,라는 어느 한 책의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 아름답고도 광대한 풍경에 나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벅차오르던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는 가끔 답답한 순간을 마주할 때면 그날의 바다를 떠올린다. 사람 소리 대신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차 있던 그 순간은 꽉 막힌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날의 바다와 그 순간에 존재하던 나를 떠올리며 당장 떠날 수 없는 현실의 아쉬움을 달랜다.
 
 


최종적으로 자신이 그리는 본인의 청사진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가장 예쁜 당신의 모습을 꽃피우고 싶은지?


 
앞서 말했듯이 앞으로도 도전하고 배우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기에, 사실 먼 미래에 어떠한 형태로 살고 있을지 확신하기엔 꽤나 어렵다. 물론 큰 틀의 미래 계획은 세우되,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현재에 살자는 뻔하지만 가장 어려운 다짐을 매 순간 새겨본다.
 
가끔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들 틈에 껴 있는 나는 인생이 이 열차와 같다면, 사람들과 우르르 얼떨결에 열차에 올라탄 나는 지금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나의 위치를 염려해 본다. 그에 대한 답을 혼자 생각하다 문득,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니라 고여있다면? 반문이 스친다. 고인 물의 케케묵음을 떠올리다 이내 흘러가는 속력이 느리더라도 고여있지는 말자, 내가 정한 방향만큼은 잃지 말자는 굳건한 다짐으로 반문에 가볍게 스트라이크를 던진다.
 
거북이처럼 느릴지언정,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만의 속도로 꾸준하게 가고 싶다. 충실한 현재로 점철된 인생이 결국 바라던 도달점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도착한 정거장에 조금 더 씩씩해진 모습으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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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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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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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슷한 또래
    • 저하고 비슷핫 또래인듯한데, 불평 불만이 많은 저에게 많은 생각으로 저 자신을 다시한번 더 뒤돌아 보게 하네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최유정
    • 2021.12.10 1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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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비슷한 또래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단하신 것 같아요 :)
      저 또한 댓글에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따뜻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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