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가끔 소설 같고 자주 시 같아 - 소설 '키스마요'

글 입력 2021.11.2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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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타자


 

오늘날 우리는 타자성이 난무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를 기꺼이 '다양성이 난무한 사회'라고 일컫고 싶다만 그러기엔 우리는 낯섦 앞에서 너무나 쉽게 당황하고 나아가 혐오한다. 하물며 외계 생명체의 존재는 어떠할까. 언어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소통 방식을 지닌 개체의 등장에 과연 무덤덤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내 생의 전부를 이루던 유일한 '너'를 상실한다면. 여기, 이러한 '극단적인 타자'와의 이별과 만남을 동시에 경험하는 주인공이 있다. 김성대 시인의 첫 소설 <키스마요>의 화자 '나'는 난무하는 타자성에 둘러싸여 묽어진 주체를 느리게 이끌어간다.

 

타자의 등장은 주체를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희곡 대사는 타인의 판단과 시선에 얽혀 끊임없이 주체성을 훼손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곧 지옥을 삶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너'가 있던 삶과 부재한 삶, 하늘에 커다란 전등이 나타난 후와 그 이전, 나는 같은 나일 수 없다. 매번 타자에 의해 변주되는 '나'만이 소설 <키스마요> 전반을 이루는데 그 과정은 아주 사적인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는 소란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외계에서 왔다는 걸 인정할수록 지구는 알 수 없는 곳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전의 지구가 아님은 분명했다. 이전 같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것이 와서 지구는 수정되었다. 인간도 수정해야 할까. 인간이 아닌 무엇을 앞에 두고.

 

<키스마요>, p.24

 

 

키스마요 평면표지.jpg

 

 

 

바깥은 소설 같고 우리는 시 같아


 

빠르게 다가오는 소행성과 알 수 없는 개체의 출몰로 인류는 지구 종말을 앞두고 있다. 소설 초반부, 외계 생명체로 추정되는 존재들은 지구를 향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낸다. 지구를 시험하는 것 같기도, 또는 어떠한 위험에서 구해주려는 시도 같기도 하지만 누구도 명확한 규명을 해내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 방식 바깥의 다른 인종, 종교, 성별을 지닌 인간조차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류는 완전한 혼란을 맞이한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폭도들은 알몸으로 거리를 장악하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꿈 속에 잠기며 죽음과 자살이 유행처럼 번진다.

 

'나'에게 있어 유일한 '너'로 정의될 수 있는 이는 그의 연인뿐이다. 소설 <키스마요>는 사라진 연인을 찾는 지난한 과정으로 이어진다. 지구촌 전등끄기 캠페인이 벌어지던 날 밤, 함께 산책을 하던 도중 하늘에 알 수 없는 거대한 알이 나타나고 그 순간 '너'는 사라진다. '너'와의 시간을 자주 회상하며 연락을 계속해보지만 끝내 '너'는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

 

 

없었다. 너는. 모든 곳이 너의 없음으로 다가왔다. 너의 없음으로 멀어졌다. 너의 없음이 둘레를 둘러싸고 있었다.

 

- 키스마요, p.11

 

 

<키스마요>는 시인의 작품인 만큼 아주 길게 쓰여진 시 같은 소설이다. 시와 소설의 경계 자체를 흐리는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느꼈다. 나 역시 낯섦 앞에서 어리석어지는 <키스마요> 속 지구인들처럼, 작품의 이러한 형식이 처음에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곧 작품의 구성과 내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에 무척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낯선 개체의 등장과 함께 혼란해지는 사회를 '소설적 세계'라고 한다면 '너'와의 순간들에 대해 발화하는 사적인 시간을 '시적 세계'라고 분류하고 싶다. 이 시적 세계에서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와 '너'라는 타자와의 사랑, 그리고 상실과 이별의 감정이 정말 시처럼 펼쳐진다. 이 소설적 세계와 시적 세계는 '너'의 존재로 인해 희미하게 연결된다. 이 문장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소설로 확인해보기를 추천한다.

 

꿈 같은 묘사로 가득찬 작품이지만 우리의 현실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나는 자주 내 존재적 슬픔에 허덕이다가 우연히 지나친 전광판에서, 생각 없이 클릭한 뉴스 기사 하나에서 거대하고 확고한 슬픔을 마주한다. 내 앞에 주어진 이별, 상실, 고독 등으로 지친 탓에 외부에 놓인 소설적 비극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화하지 못하고 그저 움츠러만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물론 나의 사적인 슬픔과 외부 비극들은 어느 지점에서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 <키스마요>속 '나'처럼, 나 역시 나만의 '너'를 찾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사랑과 언어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을 증명해 봐.'라는 대사는 상투적이지만 대부분의 로맨스 작품에서 연인 간 갈등의 불을 지피는 계기이기도 하다. '사랑'은 물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증명하고 확인받는 지난한 과정만이 관계를 유지시킨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간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타자성으로 '언어' 문제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언어 실험이라고도 했다. 인간에게서 언어를 지우기 위한, 인간을 바꾸려면 언어를 제거해야 하니까. 더 이상 언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언어로 생각하지 않도록. (중략) 애초 인간의 언어가 외계에서 왔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이 언어를 갖게 된 걸 설명할 수 없으니까. 도움인지 실험인지 모르지만. 오류나 결함일 수도 있었다.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의 진화일 수도, 뭔가가 잘못돼 있고 그게 차례차례 닥치는. 되돌릴 수도 멈출 수도 없이. 그래서 다시 언어를 거둬 가려는 걸 수도 있다.

 

- 키스마요, p. 53~54

 

 

화자 '나'로 인해 옮겨지는 '너'의 말들은 너무 모호해서 그 의중을 알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나'의 묘사 역시 무분별한 시점과 완결되지 않고 뚝뚝 끊기는 문장들로 불완전하다. 소설을 구성한 문장들 역시 언어이고, 그를 읽고 받아들이는 독자 안의 해석 기제 역시 언어를 매개로 돌아간다. 그러니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흥미롭게도 소속 외계 생명체들은 언어를 벗어나 무의식만으로 대화한다고 묘사된다. 그러나 '나'는 연인인 '너'를 찾으려는 시도로 끊임없이 기의가 미끄러지는 나약하고 희미한 언어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너와의 이별, 너의 부재, 사랑의 상실 등은 어쩌면 모두 언어가 낳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단순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 소통하는 것 이상으로, 언어의 틀을 아주 벗어난 소통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은 느리고 종말은 빠르다


 

소설 <키스마요>는 짧은 호흡의 문장과 시적인 표현, 깊고 넓은 철학적 사유들로 짜여진 독특한 소설이다. 연인과의 기억을 회상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며, 마침내 그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느리지만 지구가 지구로서 존재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서사적 긴장감이 부여된다. 느린 동시에 빠른 묘한 리듬감은 이 소설만의 특징이다.

 

<키스마요>를 읽는다면 선선한 새벽녘을 이용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모든 사물이 느리게 존재하지만 동시에 빠르게 다가오는 아침을 염두에 둬야 하는 시간, <키스마요>의 책장을 넘기는 것만큼 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키스마요>는 이해의 영역에 있기 보다는 감각하는 소설이다. 모든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잡아가는 독서 경험은 그 자체로 신선할 것이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끝은 반드시 상실일 수밖에 없다. 상실을 책임질 수 있는 이들만이 사랑을 한다. 마지막으로 <키스마요>의 마지막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나는 떨어면서 너를 껴안았다. 껴안고 떨림을 나눴다. 갈수록 몸이 비어 가는 것 같은. 너의 떨림인지 나의 떨림인지. 마음은 이미 비어 있었다. 비어 있던 마음이 채워졌다. 나는 너의 입술을 깨물엇다. 마음 속의 외계를. 더 먼 슬픔이 기다리는. 더 깊은 슬픔이. 떨림에 묻힌.

 

<키스마요>, p. 216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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