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믿어라, 당신의 초능력. 기억하라, 첫 잔의 떨림. [영화]

원하지만, 자신이 없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백승환 - <첫잔처럼>
글 입력 2021.11.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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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렸을 때 소위 '천재' 소리 한 번씩은 듣고 자랐을 것이다. 하기야 그 나이엔 그림만 그릴 줄 알아도 천재였고, 글만 읽고 쓸 줄 알아도 부모님의 눈엔 천재로 보였을 테지만. (웃음)

 

내가 쓴 글이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을 때. 화재예방 포스터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건담 프라모델을 아주 멋들어지게 조립했을 때. 어릴 때의 삶은 항상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무엇이든지 성취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것이 진짜 자신이 가진 재능이 아니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크레파스로 가족을 그릴 때 누군가는 석고상을 데생하고, 받아쓰기 100점을 맞을 때 누군가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몸소 겪으면서 그렇게 우리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간다. 순응하게 된다.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목적이 되어간다. 도전을 기피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비슷하게 조각된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럼에도 어느 순간 불현듯,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향이, 속도가 맞는 걸까'라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도전하지 않았던 무수한 기회들을 잡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후회가 들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후회에 그치고 앞으로의 도전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도전했던 우리의 그 처음은 기억하지 못한 채.

 

혹시 벼룩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벼룩을 잡아서 유리병 안에 넣고 뚜껑을 덮지 않으면 높은 점프력으로 이내 병을 탈출한다. 그러나 유리병에 넣은 후 뚜껑을 닫으면, 몇 번 뚜껑에 부딪히고는 이내 얌전해진다. 이후에 뚜껑을 치워도, 벼룩은 더 이상 높게 뛰어올라 병을 탈출하지 못한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렸기에.

 

아니면, 혹 끓는 물속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개구리를 끓는 물속에 집어넣으면 화들짝 놀라 튀어나오지만,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물의 온도에 자신의 체온을 맞춘다. 그렇게 물이 끓기 시작하면 체온을 맞추느라 힘을 소진한 개구리는 그 안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우리네 삶은 과연 어떨까. 우리는 한계를 멋대로 정해버린 벼룩일까? 혹은 주변 환경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힘을 소진한 개구리일까?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인가?

 

백승환 감독의 영화 <첫잔처럼>은  소심한 성격으로 항상 손해만 보고 살던 회사원 이호연(조달환)에게 일어나는 마법 같은 일들을 소소하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첫 잔의 떨림, 늘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앞서 말한 벼룩과 개구리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해서 남 주지 말고, 네 거 잘 해


 

첫잔처럼 사진12.jpg

 

 

"너 내가 왜 밥 사주는 줄 알아? 맛있게 잘 먹으니까.

술은 왜 사주는 줄 알아? 잘 하라고. 잘 해. 열심히만 하지 말고 잘 해.

잘해서 남 주지 말고 네 거 잘 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라고.

그리고 너, 조금만 용기를 내. 그거만 있으면 넌, 

누구보다도 훌륭한 영업사원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가끔은 너만 생각해.

 내가 전화해도 예쁜 여자가 만나자 그러면 그쪽으로 가."

 


 

"전사가 전쟁에 나갈 땐 전투복을 잘 챙겨 입어야 돼. 

남자한테 타이는 무기나 같은 거야.

내일부터 네가 매."

 

 - 영화, 첫잔처럼 中

 

 

이호연은 소심한 성격 탓에 원하는 대부분의 것을 빼앗긴 채 살아온 30대 중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그런 그의 유일한 술 친구는, 제약회사의 전 대표(신구). 신입사원 시절부터 자신을 이뻐하던 전 대표는 호연의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어느 날 밤의 술자리에서 전 대표는 호연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한다. 가끔은 '자신만' 생각하라고. 그리고 자신이 메고 다니던 실크 넥타이를 풀어 호연에게 선물한다. 당당해지라며.

 

이후 호연은 전 대표님이 준 넥타이를 매일 매고 출근하기 시작한다. 신기한 건, 넥타이의 색이 매일 달라져 있다는 것.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지만, 호연에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늘 소심하고 자신 없어하던 자신이 서서히 당당함을 찾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 또한 넥타이가 매일 바뀐다던가, 호연이 주문한 물건이 책상 위로 바로 배송된다던가 하는 판타지적인 요소에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다. 날이 지날수록 자신감이 상승하는 호연을 보여주고자 하는 훌륭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잘 하는 게 중요하다', '결과물을 가져와라', '회사가 최우선이다' 흔히 듣는 말들이다. 일부 공감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잘 해서 남 주기 바쁠 때가 많다. 자신이 낸 프로젝트 기획서는 최종적으로 상사의 이름으로 보고된다. 연인과의 약속 당일, 야근 요청을 받아 전화로 약속을 미루자고 사과한다. 우리는 그렇게 참고 순응한다. 거기에 대해 잘 항의하지 못한다. 거절하지 못한다. 겉보기에 다들 그러는 듯 보이니까.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는 걸까. 우리는 그렇게 온도가 올라가는 물속의 개구리가 된다.

 

참고만 사는 것이 능사일까? 과연 그런 것일까? 그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참고 산다. 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에 대해 용기를 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과녁의 정중앙을 조준한다고 과녁이 뚫리지는 않는다. 과녁을 맞히기 위해서는 화살을 날려야 한다.

 

'해 봤자 달라지는 것 없더라', '안되더라'와 같은 말은, 한 번 더 용기를 내보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 안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많은 것들에 도전해왔다. 처음의 그 충만한 떨림을 기억하자.

 

 

 

자신을 믿고 사랑하라


 

첫잔처럼 사진 13.jpg

 

 

국 교수, 자기가 맡을래?

차장님, 아시잖아요. 전 그럴 배포가 안 돼요.

왜? 나는 자기가 딱인 것 같은데. 이 바닥에서 박두식보다 국 교수 커버 잘 칠 사람, 

이호연밖에 없을걸?




이호연. 좋은 걸 많이 가지고 있어. 난 그게 보이는 것 같아. 

자기도 그걸 좀 봤으면 좋겠는데.

그런가요?

영업이라는 거. 일이라는 거.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과정인 것 같아. 

난 이호연의 진심, 온기, 그게 보이는데. 

 

- 영화, 첫잔처럼 中

 

 

몇 년 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는 분에게 촬영 외주 문의가 온 것.

 

"원영, 혹시 결혼식 웨딩사진이랑 간단한 비디오 촬영해 볼래?"

"결혼식... 이요? 죄송해요 제가 풍경이랑 동물 사진을 주로 찍어서 그쪽 경험은 없네요."

"충분히 잘 할 것 같은데? 내가 원영 실력을 못 믿는 것도 아니고."

"아... 그럼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한 번뿐인 소중한 추억을 내 실수로 망치면 어떡하지' 와 같은 고민을 며칠 동안 했다. 그리고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다시 연락을 드려 하겠다고 했지만, 고민하던 그 시간이 길었는지 다른 사람을 구했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 더 무서운 것은, 준비된 채로 기회가 오지 않는 것보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맞이하는 기회이다. 자신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걱정이 늘 앞선다. 그런 연유로, 항상 간발의 차로 기회를 놓치게 된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올 초에 단 돈 100만 원을 들고 제주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스냅사진을 촬영하는 프리랜서로 반 년을 지냈고, 지금은 집 한 채를 임대하여 리모델링 중에 있다. 일은 점점 더 잘 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분께서 기회를 주고 도와주셨기 때문이라지만, 나라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여담이지만, 몇 달 전 이 친구가 나에게도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 너라면 잘 할 것 같다고. 그러나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준비되지 않은 채였기에, 고민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스스로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오랜 격언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도 기회는 찾아온다. 잘 해서 남 주지 않는 것도 계속해서 참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 더.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을 믿고 그 기회를 움켜쥘 용기 또한 중요하다. 해 보고 안되면 실패의 경험이라도 남지만, 해 보지 않으면 남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가는 후회뿐이다.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어쩔 때에는 주변 지인들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가 들어도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 평가가 맞더라. 자만보다는 겸손이 낫다지만 겸손보다는 자신감이 좋지 않을까? 조금 더 자시 자신을 믿고 사랑하자. 혹시 아는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펼쳐질지.

 

 

 

믿어라, 당신의 초능력


 

스크린샷 2021-11-22 오후 4.38.27.jpg

  

 

네, 팀장님. 말씀드렸죠, 저만 믿으시라고. 추가 미팅 잡았습니다.

잘했네 역시. 도킹해야지.

오늘 외근하고 바로 퇴근 아니셨어요?

퇴근해야지. 한잔하고.

한 잔이요...

콜? 콜?

팀장님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선약? 오케이.

네. 죄송합니다.

 


 

곧 퇴근해?

어 오빠. 퇴근.

내가 지금 주소 하나 보내줄 건데 거기로 올 수 있을까?

오늘 같은 날씨에 굴 요리 제대로 하는 곳을 알고 있거든.

굴 요리? 콜!

그래.

 


 

누군가 말했다. 오래 봐야 예쁘다고.

또 그랬다. 자세히 봐야 사랑스럽다고. 

내가 그랬다. 남들보다 더디고

남들보다 주저하고

그 누구보다 웅크렸다.

이제는, 뭐 이렇게 이야기 해놓고 앞으로도 주저하고 헛딛고 그러겠지만

이제는 하고 싶은 걸 조금은 해봐야겠다.

믿어라, 당신의 초능력.

 

- 영화, 첫잔처럼 中

 

 

호연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비록 더딘 발자국일지라도.

 

소심한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많이 아플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 발자국 천천히, 비록 더딘 발자국일지라도 나아가는 것은 어떨까. 끓는 물속 개구리가 되기 전에, 천장에 부딪힌 채 한계를 정해버린 벼룩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전 기고글에서 나는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여러분을 응원한다'라고 적은 바 있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찌 되었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람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바라볼 수 있지만 결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선택지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첫 잔의 충만한 떨림, 첫 시도의 두근거림을 기억하자. 그리고, 당신의 초능력을 믿자.

 

믿어라, 당신의 초능력. 그것이 요리던, 사진이던, 그림이던, 글 솜씨던, 혹은 다른 무언가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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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호박 싫어하세요?

호박을 못 먹겠더라고. 동족을 먹는 것 같아서. 잘생긴 송대리 드세요~

얼레? 이 과장 잘생겼는데?

제가요? 하하...

 


 

형 호박전... 안 먹지 않았어?

그러게. 맛있다.

 

- 영화, 첫잔처럼 中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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