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나는 미움이 너무 많아

글 입력 2021.11.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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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미울 때가 있다. 없는 것을 있는 양 ‘척’하는 네가 밉다.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전시하기 위해 올리는 인스타 피드 속 문장과 사진이 싫다. 네가 정말 좋은 인간이라면 이건 온당하지 않다는 문구를 SNS에 올리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았을까. 네 문장에서 ‘정말로 이렇게 이해하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겠지’라는 포장재만 보인다. 겪어보지 않아 너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함부로 재단하는 네 틀이 싫다. 자신은 오롯이 피해자인 양 구는 것도 싫다. 그럼에도 용서하겠다는 네 태도가 싫다. 네 문장 속 너는 고결한 인간인데, 내가 본 너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 말하자면 너는 위선자다.

 

유독 네가 미운 때가 있었다. 내가 고민이 많았던 때였다. 매일 혼나서 무능한 기분을 느끼는 게 싫다고 말했더니, 너는 자신은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너는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밥을 사‘주고’, 들어‘주겠다’고 했다. 시혜를 베푸는 사람처럼. 자신이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있으니 너를 돕는 아량을 베풀겠다는 태도처럼 읽혔다. 한동안 네 꼬라지가 보기 싫었다. 네가 말을 걸면 건성으로 답했다.

 

자신을 포장하는 데 혈안인 너.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일에 서툴면서 매일 꾸준 운동하는 것처럼 SNS를 꾸미는 너. 너는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딱히 네가 하는 활동을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화를 별안간 자기자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너의 화술도 피곤하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면서 솔직하다고 말하는 인간이 싫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업적을 늘어놓는 사람도 싫다. 솔직하지 못해 과장으로 스스로를 수식하고, 자기 성취를 읊는데 혈안인 인간은 자아가 약한 인간 아닐까. 약해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확신이 없어서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남에게 늘어놓는 거다. 너는 그 두 개에 다 해당되는 인간이다. 그런데도 나는 너와 친구다. 너와 가끔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전화를 한다. 너를 싫어하면서 좋아한다. 여기 이렇게 네 흉을 쏟아내는 나도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너를 좋아하는 순간도 있었다. 너에 대한 글을 써서 보여줬더니 좋은 문장이 없는데도 그때는 그랬지, 라고 인정하는 너. 내가 놀리고 창피를 줘도 허허허 웃고 마는 너. 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너. 그런 때 나는 너를 좋아했다. 네가 멋있어 보였다.

 

언젠가부터 네 좋은 모습까지 다 잊어버렸다. 내 마음에는 검은색 형광펜만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 검은 펜으로 너의 좋은 점들을 다 죽죽 그었다. 네가 싫어져서 네가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싫었다. 너는 외롭다고 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처절하다고 했다. 나는 네가 우울함을 드러내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싶은 거 아닐까 라고 여겼다.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과 격려를 받기 위해 네가 자기 우울함을 휘두른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너는 네 궤변과 이상한 행동에 ‘요즘의 우울한 나는 평소의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변명했다. 그냥 네가 원래 그런 인간이라서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인데 너는 ‘평소 같지 않은 나’라는 이유를 붙였다.

 

너를 만나서 나는 위로랍시고 몇 마디를 던졌다. 또 뭐가 우울한데. 외롭고 처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몸을 쓰는 일을 해.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 어때. 생각이 단순해지잖아. 내가 볼 때 네가 우울한 이유는 네 이상이 높아서야. 사는 것 별 것 없는데. 실은 너와 나의 삶이 별 차이가 없는데. 너나 나나 비슷하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한데 왜 자꾸 오르지도 못할 곳을 올려다보면서 자책하는 거야. 그냥 살아. 생각하지마. 의식하지마. 너는 웃고 말았다. 그런 걸 자신이 할 수 있는 상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너는 죽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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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데. 네가 나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너도 어떻게 하면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서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남겨놓지 않으면 된다는 것쯤 알고 있는데, 너는 내게서 다른 걸 바랐던 거다. 너는 네 처지를 헤아려주는 말을 듣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냥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을까. 너라는 인간 자체로 괜찮다고. 이제껏 잘해왔다고. 삶에서 벼락같이 찾아오는 우울한 순간을 맞이한 거니 금방 털 수 있을 거라고.

 

나도 목을 매달고 싶은 때가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나는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다가 괜찮냐고 말을 걸어주는 이들에게 다 쏟아냈다. 쏟아내면 편해지는 게 아니라 뒤틀린 자신을 발견한 것 같아 더 침잠했다. 웃는 낯짝의 사람들을 보면 목을 조르고 싶었다. 왜 나만 이런거야. 왜 너는 웃고 있는 거야.

 

나는 그런 생각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달고 산다. 그 때 했던 생각들이 어딘가에 고여서 뒤틀린 구석으로 남아있다. 극복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로 치울 수 있었던 건 자기연민이란 단어를 배워서다. 자기연민은 나밖에 보이지 않게 한다. 엄마가 내게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할머니는 내가 덮을 겨울 이불을 꿰메고, 친구는 내 징징거림을 받아주면서 시시껄렁한 장난을 거는데, 청승에 찌드니 내 시야에는 그 풍경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날 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나밖에 보지 못했다. 자기연민이 시야를 좁게 한다는 걸 문득 알고 나서야 자기연민을 털 수 있었다.

 

네 우울함이 싫은 건 거기에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있어서다. 네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청승처럼 보였다. 나도 그랬다. 우울함을 전시하고 그 우울함으로 타인을 휘두르고 싶었다. 날 봐. 웃지마. 너도 나처럼 힘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너 역시 그런 마음인 것 같았다.

 

네가 미운 것도 네 모습에서 나를 발견해서다. 나 역시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게 산다. 나를 꾸미고 싶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의 나는 개백수 알바생인데 기자였다는 걸 알리고 싶어 지갑에 이전 명함을 넣고 다녔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룬 성취를 과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친구에게 그 사람의 흉을 보며 스스로가 오롯이 피해자인 양 군다.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렇지 말걸 후회한다. 나는 내가 부끄럽다. 너를 통해 그 부끄러운 모습을 확인하니 내 배알이 꼬여버린 거였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아야 했다. 나는 네 친구니까. 너에게 밥은 잘 먹고 있냐고 물었어야 했다. 네가 어떤 이불을 꺼내 덮고 자는지 살폈어야 했다. 화제를 돌려서 널 웃게 해야 했다. 나는 이기적이어서, 우울한 말을 하는 네가 피곤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몇 주뒤 너는 털어낸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떻게 털어냈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너를 평소처럼 대했다. 그렇게 하는 게 내가 이제야 할 수 있는 최선 같다고 느꼈다. 내가 불현 듯 자기연민이란 단어의 뜻을 배운 것처럼 너 역시 무언가를 학습한 것 아닐까. 너는 나보다 나은 인간이니까, 그 우울감에서 삶의 통찰 하나를 배웠을 거라고 믿는다. 우울한 마음은 감기 같은 병이고, 감기 같아서 알아서 치유된 거라고 믿는다. 너는 나보다 덜 뒤틀렸고 더 건강하니까 무언가가 너의 마음을 희석한 거라고 믿는다.

 

찰나가 모여 삶을 만든다. 대부분의 찰나는 그저 ‘찰나’다. 지나가버린다. 그러나 어떤 찰나는 기억이 된다. 기억이 돼 평생 어딘가에 고여 있다. 어떤 찰나를 기억할지 선택할 수 없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별 이유 없이 오래도록 인장처럼 남아있는 찰나가 있다. 네가 우울했던 것, 그리고 이겨낸 것도 네 삶의 찰나인데, 아마 네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기억이 될 거다. 그래도 나는 네가 우울함 자체보다 그 우울함을 이겨낸 찰나를 더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의 찰나에 내 글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꺼내 읽는 기억이 돼서 이렇게 이겨냈다고 되새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썼다.

 

*

 

던말릭의 '20180222-20180930'을 곳곳에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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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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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우울함이 싫은 건 거기에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있어서다. 맞아요. 그러지 말지, 그래봤자 소용없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징징대는 그 사람 꼴이 밉고 지쳐요. 그런데도 내 모습이 보여서, 다정한 말은 못해주지만 외면도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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