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놀이로 만드는 그림책의 힘 -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놀이가 태도가 될 때
글 입력 2021.11.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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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어릴 적부터 그림 동화책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림책이 쌓여있었기에 심심할 때마다 꺼내보거나 부모님께 읽어달라고 했었다. 재밌게 읽었거나 그림체가 맘에 들어 여러 번 봤던 그림책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이런 기분 좋은 추억 때문인지 북카페나 도서관에 놀러 가면 아동도서 코너에 머물러있곤 한다. 어떤 재미있는 책이 있을까 기대하며 한 권 두 권 그림책을 꺼내든다. 어릴 적엔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머리가 좀 크고 어른이 되고 나이 작가들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시지에 감명받기도 한다.

 

그림책엔 간결함이 있다. 글 한두 줄과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림책은 간결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쉬운 이야기와 단순한 전개지만 깊은 메시지와 여운을 준다.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점도 매력적이다.

 

나는 외국의 그림책을 많이 선호한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해주고 알아서 메시지를 찾아봐라 하면서 툭 던져준다. 조금 느리더라도 독자가 이해할 수 때까지 기다려주는 책이다. 반면 북카페, 도서관에서 봤던 한국 그림책들은 보이지 않는 억압이 있다. 어른의 시선에서 정답을 알려주며 떠먹여주는 '주입식 교육용 동화책'이 많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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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통해 한국 그림책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만든 10인의 한국 작가들의 철학을 들으며 그들의 그림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국 동화책 작가들의 제시하는 '돌파하는 힘'을 살펴봤다.

 

 

 

놀이가 태도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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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작가는 한국 최초로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최종 후보에 오른 그림책 작가다.

 

그의 대표작으론 '경계 3부작'인 <거울 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가 있다. 세 작품 모두 혼자 노는 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는 자연에서 자신이 규칙을 만들고 세계관을 설정하며 놀이에 빠져든다. 작가는 아이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현실과 환상의 사이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자신을 '그림의 힘으로 이끄는 이야기를 책이라는 그릇에 담고 독자와 같이 노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을 노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새로운 작업을 구상할 때 늘 노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사랑받는 고전 그림책을 보면 작가들이 진짜 신나게 작업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려면 자신이 우선 생생하게 몰입해야 하고, 자신이 느낀 즐거움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 몰입의 과정이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지 작가는 '놀이가 갖고 있는 힘'을 통찰한다. 흔히 놀이를 통해서 창조성이 증폭된다고 한다. 놀이의 본질은 자발적이고 목적성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의식과 부담이 없을 때 편안한 환경에서 말랑말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일상 속 자연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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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아이들은 완제품이 아닌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날것을 가지고 창조성을 발휘한다. 스스로가 놀이의 규칙을 정하고, 어려움을 만나도 좌절하기보단 어떻게 다르게 놀이를 이어나갈지 순간순간 반응한다. 그리고 놀이가 끝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난다. 놀이의 핵심은 결과물이 아니라 순간순간 느낀 해방감, 기쁨과 같은 감정이다. 즐거웠던 기억, 그것이 새로운 놀이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작가는 놀이의 의미를 포착하여 삶에 적용한다. 그림책을 만들 때 세상의 모든 것을 갖고 놀 수 있는 재료로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대단히 특이하거나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늘 옆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다.

 

창작 과정은 늘 감탄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이는 어른에게든 아이에게든 필요한 태도다. 다 알고 있고 너무 당연해서 지나쳤던 것에도 내가 지나쳤던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세상을 늘 새롭게 바라보는 태도다. "감탄하는 법을 알면 세상을 놀이터로 만들 수 있어요."

 

이러한 세세한 발견은 현실을 판타지로 만든다. 이수지 작가의 작품에는 지금 이곳, 현재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현실에서 환상을 경험한다. 현실에서의 작은 발견은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작가는 이런 작은 환상의 순간을 확대해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몰입을 하는 순간에 들어가 그 안에서 일어난 감정의 변화를 포착하여 세세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몰입에서 발견의 순간 우리는 현실에서도 작은 환상을 느낄 수 있다.

 

재미를 찾아 매일을 즐겁게, 기대를 갖고 일하는 이수지 작가를 보며 삶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법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재미있어하는 것이 일이 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 돋보였다. 

 

나는 그림책이 절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림책은 그림의 연속으로 장문의 책보다 더 큰 위로와 울림을 주기도 있다.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북카페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의 그림책을 많이 만나고 싶다.

 

한국 그림책의 가치를 담은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통해 삶을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하는,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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