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레 없이 유영하기 [전시]

세화미술관,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2021.10.19~2022.02.27
글 입력 2021.11.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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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기 위해서야.” - (『기억 1』, p.276)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기억 1』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책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기억과 망각 작용을 반복하며 생을 이어 살아간다. ‘전’의 생애들이 지금의 ‘나’에 영향을 미쳐 성격이나 취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건 기억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유전자로 비롯된 생물학적인 상태인 지금이 아니라, 애초에 ‘나’라는 인간의 시작점에 대해서 말이다.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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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화미술관

 

 

세화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어, 새로이 일주하다》 전도 우리 존재적 이유를 기억 작업을 통해 찾아가고 있다. 전시 제목에서 사용된 ‘상어’는 자연물을 대표하며,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상징은 상어가 살아온 역사와도 관련 깊다. 상어는 4억 5천만 년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척추 생물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생존한 생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병장수하는 상어일 것 같아도 크나큰 핸디캡이 있다.


바로 물에서 운동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부레가 없다는 점이다. 즉 상어가 살기 위해서는 지느러미를 이용해 끊임없이 헤엄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부레가 없는 상어의 부단하고도 고단한 움직임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그린란드 상어의 경우 500년까지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인생의 길이만큼 상어는 얼마나 움직였을지 생각하면 나 역시 숨이 차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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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어의 부단한 움직임에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살아가는 생과도 닮아있다. 우리는 회색빛으로 물든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부레를 얻을 수 있는지, 헤엄을 잘 칠 수 있는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부단히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위 소설에 등장했던 것처럼 인간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처럼도 느껴진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존재는 어디서 왔는지 열심히 고민했던 인류의 역사와 흡사한 측면이 있기에.


전시는 이러한 기억 작업을 통해서 상어 같은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참여 작가는 강애란, 김혜민, 강홍구, 양아치, 리덕수이다. 본 글에서는 세 명의 작가들의 표현 방식을 기억의 측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기억 찾기 : 숙고에서 깨달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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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란, <숙고의 서재>, 2020

 

 

먼저, 강애란 작가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남긴 유명한 구절처럼, 오랜 시간 여성은 여성 자체의 속성을 스스로 규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애란 작가는 기억한다. 여성이 동등한 사람이었음을, 밝게 빛나는 책들을 제시하면서 분명히 보여준다. <숙고의 서재>는 마치 책을 무중력의 세계에서 본 듯한 느낌이다.

 

어두운 환경이 조성된 전시장 내부에 놓인 각각의 책들은 과거의 죽은 책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전시장 벽면에 책 사이에 지나가는 문구, 뚜렷한 색의 단어들이 벽면에 날아와 꽂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관객은 부유하는 단어들을 잡아 문장으로 이해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 버지니아 울프의 말들이 등장하며 우리 세대 이전에 살았던 이들의 생생한 문장의 목소리를 던진다.


강애란 작가는 2015년경부터 한국 출신의 여성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 의식을 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위 작품 <숙고의 서재>는 인터렉티브 작품으로써 도나 헤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 텍스트가 담긴 책이라고 한다.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불순함, 부도덕함으로 바라보던 과거에 불편함을 느꼈던 여성주의 작가들의 생각과 관객의 손짓이 이어지면서 현재의 문제의식과도 결부된다.


이렇게 여성의 존재를 사회적 요소를 배제하고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해내며 관객에게 전달한다.

 

 

 

기억의 온전함에 대해 : 현실은 진실인가


 

두 번째 작가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김해민이다. 김해민 작가는 백남준의 계보를 잇는 한국 미디어아트 1세대 작가라고 한다. 전시장에는 <연평도 조기잡이 배는 떠났나요?>, <신춘향>, <빨강 그림자 파랑 그림자 – 대면 비대면>이라는 비디오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라는 작품은 잔 위에 영상을 투사해 실제 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즉 칵테일 잔에 들어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칵테일이 아니라 허상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 따르면 위 강애란 작가가 기억의 진실을 드러냈다면, 김해민 작가는 기억의 온전함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빨강 그림자 파랑 그림자 – 대면 비대면> 작품 역시 그림자는 검은색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의 다른 색이 있었다는 허상이었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작가는 관객의 생각을 전복시킨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우리에게 진짜 현실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과연 우리가 보는 현실이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점은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끊임없이 토의할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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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민, <신춘향>, 2017

 

 

<신춘향>에서는 영화감독 산상옥이 남과 북 각각에서 만든 춘향전을 두고 가운데에는 우리나라 분단의 현실을 담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즉 화면이 세 개 등장하는 셈인데 춘향전 한편을 나열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남북 각각의 버전으로 번갈아 보여주기 때문에 이야기를 흥미롭게 보게 된다. 가운데 화면에는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만남의 실제적 사진을 넣고 아주 짧은 간격으로 양쪽 두 화면과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로써 우리는 역사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과연 남과 북의 연결에서 가로막는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그 존재는 당연히 가운데 화면의 이미지들이 될 것이다. 정치적 관계 사이에 단절되었던 두 춘향전은 동시에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매체의 흐름은 비디오 사이의 관계를 유추하게 한다. 이처럼 김해민 작가의 기억 작업은 정치 권력과 같은 요소가 중간에 끼어들어 가로막는 현상을 경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기억의 교차점에서


 

세 번째 작가는 강홍구이다. 강홍구 작가는 서울에서 발견되었던 이야기들을 아날로그적으로 담아내고 있지만, 누구보다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2001년 전시했던 <빌딩> 시리즈는 도록에서 상세하고 유쾌한 작품 해설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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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 < Building 1-2-3 >. 2001/2021 

 

 

“당시 그는 일상성을 담아내기 위해 흥국생명 빌딩 내부를 일종의 삶이 소멸해가는 장소로 설정하고, 동물 형상의 싸구려 장난감 오브제를 활용해 빌딩 내부 공간과 합성하였다. 공룡처럼 큰 꿈을 안고 멋진 빌딩에 입성한 회사원들이 일만 개처럼 열심히 하다가 결국 빌딩 한구석에 쓰러진 양처럼 번아웃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라고 한다. - 전시 도록 중


한편 작가는 <서울-공터> 프로젝트의 작품 설명도 흰색 물감으로 그저 바닥에 적어 멋스러운 감각을 선물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에는 더 세심하고 따뜻한 풍경이 드러난다. 특히 <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 1.2> 작품 속 인왕산을 바라보다가 실제 전시장 창문에 보이는 인왕산 모습의 이동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 기억을 불러온다.


이처럼 전시는 작품과 현실의 모습을 가깝게 연결하거나, 기억과 기억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관객은 그 무수한 역사의 교차점에서 전시를 통해 기억 작업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기억 과정에 있는 우리는 언젠가 각자의 편안한 방법으로 유영하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시 도록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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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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