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라스트 듀얼 - 14세기 말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불렸던 최후의 결투, 그 시시비비에 대하여

글 입력 2021.11.1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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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는 역사를 배우던 학창 시절에도 개인적으로 다른 시대에 비해 흥미롭지 않았던 대목이다. 중세 이야기를 다룬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대뜸 흥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 시대의 아웃풋이 바로 이전이나 이후 세대보다 ‘인간’을 중심으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중심 사회에서 정해진 신분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봉건제 하에 유럽의 중세시대는 작은 제국들로 쪼개진 퍼즐 조각 같았다.


하나의 조각들은 스스로 완전한 그림을 갖고 있지만 완성된 그림을 갖추기에는 부족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제각각 달랐고 서로에게 필요한 때에 적절히 뭉치고 흩어지는 생존 전략을 택해야 하는 시기였다.

 

신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기도 했지만, 때마다 돌아오는 역병으로 인한 피해도 컸기에 불안한 삶을 현실적으로 기댈 바가 없던 사람들은 종교와 가신에 대한 충성을 제외하면 무엇으로 삶을 살았을지 조금 궁금해진다. 또한, 그렇기에 14세기 말의 카루주-르그리 사건은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오락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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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및 시대물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할 강렬한 소설이 번역 출간되었다. 14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악명 높은 사건 '카루주-르그리 결투'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두 남자의 사적인 악연과 집념이 결집된 "모든 결투를 끝내기 위한 결투"에 관한 화려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경제적으로 쇠락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자원한 전쟁에서 패배하고 막 돌아온 기사 카루주, 그에게 주어진 것은 무한한 영광도, 편안한 쉼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아내가 옛 친구이자 세상을 떠난 아들의 대부 르그리에게 육욕에서 비롯된 폭력적인 행위에 희생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게 과연 진실일까? 명예를 위해 펼쳐지는 치열한 재판. 그리고 반드시 이겨내야 할 또 하나의 결투가 그를 맞이한다. 이 결투는 인류 역사의 '최후의 결투'가 될 것이다.


만약 이 결투 재판에서 그녀의 챔피언이 적수를 죽여 승리를 거둔다면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죽임을 당해서 결투에 진다면, 그녀는 위증을 하고 거짓 서약을 한 죄로 산 채로 화형에 처해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불과 물이 만나 서로의 죽음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챔피언'(결투의 대리인)이 결투에서 패배한다면 화형이라는 끔찍한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는 한 여자가 있다.

 

소설 [라스트 듀얼]은 한 강간 의혹 사건을 두고 중세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일반적인 재판 대신 합법한 '결투 재판(14세기 말까지 중세 프랑스에서 지속된 법제도)'을 통해 정의를 추구하고자 했던 한 실제 사건에 중점을 둔 이야기다. 무려 10년 동안 이 역사적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 역사가가 스릴러적 요소를 결합해 재탄생시킨 매력적인 이 역사 소설은 지도 및 도판과 인용을 비롯한 풍부한 사료와 간결한 문장으로 이뤄져 대단한 몰입도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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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듀얼' 속 카루주와 르그리

 

 

이야기는 독특한 서술로 진행된다. 역사서를 보는 것인지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인지 종종 헷갈리는 간결한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몇 장씩 넘어간 책장을 보고 신기하기도 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임을 고려하더라도 사건이 끝난 시점에서 모든 걸 알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저자의 서술은 사료를 착실히 따르면서도 생생한 묘사와 흡입력을 놓치지 않는다. 간결한 만큼 빠르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 인물 중심의 심리 묘사가 아니더라도 사실성이 짙은 이 소설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듯하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간략히 말하면 귀족들의 권력 싸움과 최후의 결투이지만 이 이야기가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하나는 카루주의 아내였던 마르그리트의 대담함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전자는 카루주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였다고 묘사되는 여성 인물 마르그리트가 남편의 옛 친구이자 현재는 라이벌이 된 자크 르그리에게서 강간을 당한 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는 데서 당시의 여성 인물들과는 차별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강간에 관한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재판에 이르는 것이가 결코 쉽지 않음을 고려하면 마르그리트는 분명 강단과 주관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14세기에 여성은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남편의 재산권이나 명예와 결부되는 대상이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자크 르그리 때문에 실추된 남편의 명예 혹은 남편이 아니라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처지 때문에 벼랑 끝에서 보인 몸부림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고백이 아니었다면 카루주의 명예 회복에는 시간이 좀 더 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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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듀얼' 속 마르그리트

 

 

후자는 이야기가 오래전의 것인 만큼 여러 사람들의 입과 여러 번의 서술을 거치며 사실이 다르게 쓰인 자료들이 꽤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마르그리트의 고백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편의 강요였다거나, 자크 르그리가 실제 범인이 아니었다는 기록들은 곳곳에 남아있어 현재의 역사가들로 하여금 해석에 어려움을 겪게 한다.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이런 가설들에 따르면 인물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고 이야기의 중심 요소들이 전부 흔들리는 것인데, 이것이 야기하는 혼란은 결국 르그리가 야만적이고 미신적인 ‘최후의 결판’이라는 제도 때문에 희생된 것인양 서술하기도 한다.


카루주-르그리 사건 자체는 그다지 역사적이고 공식적인 사건은 아니지만 당대에도 그랬듯 현재에도 어떤 인물을 중심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에 여전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회자되는 것 같다.

 

카루주의 입장에서 보면 형평성 없이 종기사를 대하는 군주, 즉 불공평한 봉건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이야기가 되고 르그리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정확히 가릴 수 없지만 한 번의 승부로 잘잘못이 가려지는 야만적인 결투 제도에 대한 비판이 되며, 마르그리트의 입장에서는 남성에게 기대어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비운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거기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던 당시 사람들이 최후의 결투로 인한 잔혹한 승부를 은근히 즐겼다는 사회상까지 얹어보면 으스스하면서도 흥미로운 전설이 하나 완성된다. 이 작품은 최근 영화로도 제작되어 국내에서 개봉했는데, 원작 소설과 비교하여 어떻게 각색되고 연출되었는지 살펴보면 영화에 대해서도 또 다른 풍부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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