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도 타다오: 현대 건축의 거장 [영화]

영화 <안도 타다오>, 미즈노 시게노리 감독, 2019년 개봉
글 입력 2021.11.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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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안도 타다오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美)를 발명한 사람이라는 기초적인 지식조차도.

 

그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이것에 관해 쓰기로 한 것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 '가벼운 입문서'로서 이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당신이 건축 전문가이건 문외한이건 개의치 않는 태도로 그저 한 예술가의 생생한 현재를 스케치한다.

 

 

 

현재진행형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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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면, 경쾌한 음악과 함께 공원에서 체조하는 단발의 노인이 등장한다. 가벼운 발재간을 부리며 창조의 근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는 다름 아닌 건축의 거장 안도 타다오. "그런 운동은 (자기는) 못할 것 같다"라는 감독에게 "못 하겠지?"라고 놀리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무겁고 진중한 타입의 예술영화를 예상했던 나의 짐작을 완전히 빗나가며 영화는 인물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유쾌한 도입부를 통해 안도 타다오의 종잡을 수 없는 개성에 대해 그리고 그런 그를 담아낼 재기발랄한 톤에 대해 귀띔해 준다. 이 작품은 위대한 현대 건축가를 기리기 위한 전기영화가 아니다.

 

책 속에 존재하는 위인이 아닌 동시대와 호흡하는 '현재진행형' 예술가로서, 안도 타다오는 매일과 치열하게 맞붙는다. '신성화되지 않은' 생활인의 모습 그러니까 여타 현대인과 다를 바 없이 묵묵히 일하고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 친숙하게 그려진다.

 

고졸에 프로 권투 선수 출신이며 독학으로 건축을 깨쳤다는 점에서 (성공 신화를 이뤄낸) 영화적 인물이 되기에 충분한 그이지만, 이 작품은 밑바닥에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이력보다 지금을 사는 예술가의 고민과 현실에 시선을 돌린다.

 

그에게 건축은 예술이면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투자자의 주문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그는 끝없이 고민한다. 영화는 거기에 첨언하는 대신 관조적이고 담백한 태도로 그가 피력하는 철학과 정신에 렌즈를 가져다 댄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인간이 얼마나 다채로운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7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안도 타다오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큰 욕심일지 모른다. 이 영화는 그의 삶과 건축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초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작품세계에 대한 호기심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매끄럽게 유도하며 계속될 그의 활동을 예시하고 있다.

 

 

 

산책하는 독학자


 

"제 인생은 처음부터 안 풀려서 대학도, 건축 전문대도 못 가서 스스로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어요" - 안도 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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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접한 르코르뷔지에에게 빠져든다. 돈도 없고 대학을 갈 성적도 안 되었던 그는 유명한 건축가들의 설계도를 필사하고 책을 반복해 읽으며 건축에 대한 열망을 키운다. 그리고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여행을 떠나 각국의 건축을 보고 느끼며 책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공간의 살아있음, 즉 생명을 품은 공간 그 자체를 체험한다.

 

"처음으로 유럽에 가서 영어도 못 하고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있는 건 체력뿐이라 종일 걸어 다녔어요. 매일 열 몇 시간 걸으며 생각하고, 건물에 도착해서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면서 걷기만 했어요"

 

그는 건축 공부를 위해 끊임없이 걷고 바라보고 생각했다. 건축물을 종일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알 것도 같다는 안도 타다오. 건축물을 공들여 봄으로써 그 안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은 언뜻 허무맹랑하게 들린다. 그러나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공부법을 통해 그는 거짓말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았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롱샹 성당'을 떠올리며 "르코르뷔지에가 나에게 빛을 추구하기만 해도 건축이 가능하다고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라고 이야기한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대신 선대 건축가들의 수작을 흡수하며 자신만의 길을 닦아 온 안도 타다오. "빛으로 홍수가 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그의 표현에서, 그가 감상에서 의미를 추출하고 자기 것으로 녹여내는 데에 얼마나 특별한 재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실현되지 않은 꿈


 

"일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건축은 끝난 후에도 계속 살아 있기 때문에 건축물을 계속 보면서 자신의 이상을 추구해 가야한다" - 안도 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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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미덕은 그가 성공시킨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실현에 실패한 기획까지 고루 다룬다는 점에 있다. 고객에게 채택되지 못해 접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기획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 설계 공모'였다. 그가 건축 안에 녹여낸 스토리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눈길이 갔던 것은 실패를 인정하는 그의 태도였다.


"완성된 걸 보니까 역시 좋다, 우리보다 생각의 범위가 훨씬 넓으니까 우리 생각이 짧았다고, 경쟁에서 질 때마다 생각해요" "다음엔 이긴다 그래 놓고 또 지지만요. 이걸 몇 살까지 계속하려는 건지"

 

자신을 제치고 선정된 헤어초크 팀의 설계를 그는 또 다른 가르침으로 끌어 안았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힘, 남의 승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 그로부터 배움을 얻는 힘 모두 그를 추동하는 귀한 자원일 것이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항상 내가 진심으로 즐기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 단계 위로 가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일을 접는 게 나아요. 저라면 그만둘 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해야죠. 죽을 각오로요."

 

아직도 꿈이 많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나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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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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