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선 시대로 떠나는 밤 - 라스트 듀얼 [도서]

글 입력 2021.11.0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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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대로 떠나는 밤


 

감도 잡히지 않는 낯선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가만히 그 시작을 따라가면 내가 몸담고 있는 동시대의 삶을 담아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있게 보다가도 어느 날은 문득 떠나고 싶어진다. 먼 미래, 혹은 아득한 과거로. 겪어보지 않은 날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일상과 맞붙은 이야기에 느낀 피로감 탓이기도 하다.


최근 SF의 바람이 문학과 영화계를 감싸면서, 가깝거나 먼 미래의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봤다. 이러면 또 청개구리처럼 옛날 옛적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법. 이왕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겠다고 다짐했다면, 멀리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가 좋을 것 같다. 중세 시대 프랑스, 역사적 사료들을 모아 만든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두 귀족 간의 최후의 결투를 상세히 기록한 책 『라스트 듀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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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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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 <라스트 듀얼>

 

 

『라스트 듀얼』은 장 드 카루주(Jean de Carrouges)와 자크 르그리(Jacques Le Gris)라는 두 남자의 유명한 대결을 담은 책이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다툼이 있었을 텐데, 그들의 결투가 이토록 오래 회자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중세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결투 재판이었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결투 재판은 말 그대로 재판하면 떠오르는 법원이 아닌, 결투장에서 싸움을 통해 누가 옳고 그른지 최종 판결을 내린다. 당시엔 자신의 무고함, 혹은 상대의 위법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서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는 한 사람의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방이 잠긴 결투장에서 말이다. 국왕과 귀족들, 평민들은 스포츠 게임을 보듯, 결투장 주위를 가득 메우곤 했다.

 

1386년, 이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결투 재판은 법적으로는 존재했지만, 승인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복잡한 자격요건을 갖춰 고등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위 친지와 가까운 귀족들의 적극적인 도움 또한 필요했다. 긴 공백을 뚫고 카루주는 결투 재판을 신청해 승인받는 데 성공한다. 당시에도 가장 죄질이 나쁜 범죄로 알려진 성폭행과 연관되었기 때문이었다.


카루주의 부인 마르그리트가 카루주의 오랜 친구인 르그리에게 강간을 당했음을 고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의 아버지가 왕을 배반한 사건으로 반역자의 집안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카루주 또한 탐욕스러운 성격 탓에 르그리와도 사이가 소원해지고, 그들이 함께 섬기는 피에르 백작의 눈 밖에도 난 상황이었다. 온 세상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카루주는 최후의 수단으로 결투 재판에 임한다.

 

 

 

관전 포인트 1. 철저한 역사 고증


 

카루주, 르그리의 결투를 보는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역사’다. 낯선 중세 시대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결투 이야기라 해서 그 현장만을 다루기 보다, 시대적 상황과 특성이 녹아든 다양한 범위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이 지속되던 불안정한 시기였다. 왕의 명령으로 원정 전투에 나서는 기사들의 모습, 적을 습격하는 다양한 전략과 황폐화된 마을을 상세히 그려보게 된다. 밖으로는 타국과의 싸움이 계속되고, 안에서는 왕권을 둘러싼 조용한 견제가 계속되고 있었다. 어린 왕과 그를 견제하는 숙부들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스며들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과 영주인 백작, 기사, 종기사로 이어지는 봉건제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귀족인 기사는 백작의 명을 받아 요새와 산림을 비롯한 지역의 곳곳을 수호하고, 그 대가로 봉급을 받았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줄타기’였다. 기사들은 힘 있는 백작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백작은 아끼는 기사들에게 땅을 넘치게 뿌리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곤 했다.


이렇게 작가 에릭 제거는 철저한 역사 고증을 통해 누구라도 중세 시대 유럽의 모습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실제 그는 10년간 ‘카루주-르그리 결투’를 주제로 수많은 문헌을 공부하고, 수차례 유럽에 방문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라스트 듀얼』은 그 노력의 산물이다. 책 속에서 그가 수집한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넘나드는 기록물과 회화를 만날 수 있다.

 

 

 

관전 포인트 2. 한눈에 잡히는 인물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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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듀얼>

 

 

낯선 서구의 이름들임에도, 인물들의 특성과 캐릭터가 초반부터 잘 들어온다는 장점이 눈에 띈다. 이는 상황과 인물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는 책의 서술법 덕이다. 실제로 책의 주제가 되는 결투 또한 그 자체보다 결투가 싹트기 훨씬 전의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래전 과거로부터 인물, 그리고 가문 간의 관계를 작은 부분도 빼놓지 않고 들려준다. 극이 절정을 이르기 전에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 준 덕에, 낯선 이름들 앞에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또한 전투에 앞서 두 주인공이 선서를 하는 모습도 길게 묘사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하는 기록의 성격을 지녔기에, 인물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욕심도 허영심도 많고 신경질적이지만 가문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카루주와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탁월하지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르그리.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수많은 귀족 앞에서 트라우마가 된 범죄 현장을 낱낱이 고하며 물러서지 않았던 강인한 마르그리트. 중심이 되는 이들을 비롯해 그들의 형제와 부모, 가까운 귀족들까지 한 명씩 선명한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관전 포인트 3. 돈과 명예, 사랑의 의미


 

시절마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있고, 이에 대해 무어라 하긴 어렵다. 하지만 오로지 권력과 명예를 위해 중세 시대 귀족들이 포기한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당시 그들에게 인간적인 대우와 권리는 화려한 부와 명예보다 한참 후 순위에 있었다. 왜곡된 귀족사회의 문화와 관념들을 보면서, 불순한 과정으로 얻은 재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그것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특히 여성 또한 명예를 구성하는 한 요소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거래를 하듯 혼인하는 것이 만연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그리트가 당한 범죄를 다룬 부분에서 여성은 홀로 범죄에 대한 고발을 하는 것조차 불가하고, 그 내용 또한 여성의 훼손된 인권에 대한 고발이 아닌 남편의 명예를 실추한 것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또 같은 범죄라도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형량을 부과했다는 점도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중세 시대 귀족들이 지닌 돈과 명예, 사랑의 의미가 기이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오늘날은 과연 그 의미들이 제대로 표현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시절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라 밖에서 끊이지 않았던 전쟁처럼, 안에서도 작은 전쟁이 계속되는 책이었다. 세세한 묘사에 낯설어도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책, 『라스트 듀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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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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