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글 입력 2021.11.0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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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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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건의 진실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194쪽

 

 

'에릭 재거'의 역사소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은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진상을 향해서 다가가는 작품이자,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동명의 영화의 원작이다. 이미 발생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정체불명의 원인을 여러 사료들에 입각해서 조망한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프랑스의 마지막 결투 재판이라는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프랑스를 넘어 해외까지 입소문이 퍼진 두 남자의 대결은 자연스럽게 이 모든 사건을 촉발시킨 이유에 관해서 시선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는 두 기사의 곁에서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본 제3자의 입장의 증언을 바탕으로 묘사된 사건의 행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유서 깊은 기사 가문 출신 '장 드 카루주'는 예기치 못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잉글랜드와의 전쟁 원정을 자처한다. 하지만, 전장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카루주의 기대와 달리, 혼란스런 국가 상황으로 인해 연금이 체납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전장의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에 파리 왕궁으로 다시 먼 길을 떠난다. 한편, '자크 르그리'는 하급 종기사 출신이었으나 걸출한 정치적 수완으로 카루주보다 더 높은 위치와 정부의 신망을 얻으며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신흥 귀족이었다. 어느 날, 카루주가 파리로 떠난 사이 그의 아름다운 아내, '마르그리트'가 홀로 있다는 소식을 접한 르그리는 차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그녀에게 저지른다.

 

 

자신을 모욕한 상대와의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명예 결투와는 달리, 사법 결투는 어느 쪽의 결투 당사자가 거짓 선서를 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정식 법 절차였다. 당시 이런 결투의 결과는 신의 의지와 부합하는 진실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연유에서 결투 재판은 judicium Dei, 즉 '신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132쪽

 

 

비록 범죄가 일어나기 이전에 딱 1번 마주쳤을 뿐이지만, 자신을 모욕한 사내의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던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당한 모욕과 모멸감을 남편에게 고백한다. 여인의 몸으로 상대를 기소할 수 없는 보수적인 시대에서 그녀는 남편을 향한 신뢰와 함께 자신을 대신해서 한 범죄자를 처단하길 바랬고, 카루주는 이를 적극 수용한다. 한때는 아들의 대부가 되어줄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으나, 이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자리매김한 르그리를 향해 카루주는 당당히 결투 재판을 신청한다. 모욕적인 언사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르그리 역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떳떳함을 만인에게 입증하기로 결심한다.

 

두 남자를 판가름할 운명의 불꽃은 그렇게 점화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소설인가, 역사서인가?"

10년의 노고가 깃든 방대한 진술


 

 

새로운 방벽으로 둘러싸인 생마르탱 구역의 내부는 가로와 신축 건물들로 빠르게 채워졌고, 1360년에는 파리시에 통합되었다. 1380년대의 생마르탱데샹은 더 이상 '들판'(champs)'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도시 확산 현상의 중세판이라고 할 만한 것에 흡수되어 완전히 파리 시내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03쪽

 

 

영화 <극한직업>의 명대사를 빌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소설인가, 역사서인가?"

 

3인칭 시점을 철저히 견지한 소설의 서술방식은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세기의 대결을 향한 독자의 객관적 태도를 자연스럽게 촉구한다. 대결을 둘러싼 당시 프랑스 사회의 세밀한 풍경 묘사는 10년간 만인이 주목했던 역사적 사건을 조사한 작가 '에릭 시걸'의 노고가 빛을 발휘한 대목이다. 방대한 사료들을 토대로 혼란을 거듭하던 당시 중세 프랑스의 과도기적 사회상을 철두철미하게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결과에는 쉽게 수긍하지 않는 것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프랑스인의 적극적인 저항의식이 언급된다. 이는, 비윤리적인 사건을 겪은 마르그리트와 이를 묵과할 수 없던 카루주의 분노가 결코 사사로운 갈등으로 치부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잉글랜드와 맺은 평화협정의 치욕적인 조건과 국왕의 몸값으로 지불될 금화 3백만 에큐라는 파멸적인 액수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분노한 추종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마르셀(당시, 파리의 상인 길드의 수장)은 "여기 손봐줄 놈이 있어!"라고 외치며 2층의 왕세자 방까지 쳐들어갔고, 성난 군중은 왕의 보좌관 한 명을 잡아서 그 자리에서 칼로 난자해서 죽였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157쪽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작가의 서술방식은 뚜렷한 결과와 그렇지 못한 원인 사이의 공백을 허구가 아닌, 명확한 자료를 기반으로 신빙성 높은 추측과 함께 다큐멘터리에서 볼법한 생생함으로 가득 채운다. 물론, 작가는 결코 사건을 향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추측임을 암시하는 기존의 문장체와 달리, 4번째 챕터('최악의 범죄)에서 만큼은 대화체를 적극 활용하며 마르그리트에게 가한 르그리의 범죄행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 모든 사건이 어느 누군가의 비루한 욕망으로부터 발원했음을 확신하는 작가의 의도를 방증하는 대목이며,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각종 사료들을 통해 논리적으로 내세운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은 중세가 배경인 한 편의 르포르타쥬를 상기시키는 냉철함마저 돋보인다. 두 남자의 대결을 촉발시킨 원인과 관련해서 호사가들의 근거 없이 내뱉은 무분별한 의견들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 이를 별다른 생각없이 포용한 매체들(그 가운데 하나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다!)을 향한 작가의 날선 비판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작가의 이같은 노력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되려 부각시킨다는 효과 또한 발휘한다.


 

 

이미 예견된 최후의 결투:

피로 얼룩진 토지, 노르망디


 

대결의 서막을 알린 프랑스 노르망디는 전통적으로 토지를 둘러싼 폭력이 끊기지 않는 지리적 운명이 내재되어 있다. 켈트족을 시작으로 노르망디를 둘러싼 여러 민족 간의 투쟁은 두 남자의 대결을 암시한 역사적 대목이다. 노르망디를 찬탈한 최후의 민족으로서, 앞서 거주했던 프랑크족의 토지와 여성들을 쟁취한 바이킹족은 그렇게 노르망디공이라는 이름 하에 프랑스 왕가에 귀속된다. 하지만, 백년전쟁의 발발과 함께 토지를 둘러싼 잉글랜드와의 치열한 혈투는 피를 부르는 노르망디의 참혹한 운명을 다시금 실현시켰다. 유혈과 폭력으로 점철된 노르망디의 기운은 그렇게 올곧이 한 가문에게 전이된다. 그 가문의 이름은 '카를 르 루주Karle le Rouge', 빨간 얼굴의 카를로서 추후에는 '카루주'로 불리기 시작한다.

 

 

토지는 봉건귀족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과 권위의 주된 원천이었고, 가문의 이름과 함께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영속적인 것이었다. 이토록 큰 가치를 가진 토지는 갈망의 대상이었던 탓에, 이런저런 알력과 치명적인 반목의 원천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4쪽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중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키워드가 바로 봉건 사회다. 토지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백작을 중심으로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와 그 밑의 농노로 구성된 봉건 사회는 소설의 중심 배경으로 차지한다. 그 자체로 토지는 영주에게 있어 여러 귀속재산들 가운데 하나에 다름이 아니지만, 그 아래 충성을 서약한 기사에게 있어서는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토지는 기사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존재를 명시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상징이자, 이들이 국가를 향해 끝없이 충성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원동력에 다름이 아니다. 기사에게 있어 토지는 단순한 재산을 넘어 소중한 밥줄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존속시켜줄 수 있는 자존심을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카루주와 르그리의 대결의 서막은 이미 예견 가능한 사건이었다.

 

카루주가 맞이한 비극은 뜻하지 않게 빼앗긴 토지에서 시작한다. 그의 아버지가 관리해오던 '벨렘'은 대대로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해온 카루주 가문을 상징할 만큼 유서 깊은 지역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당시 수칙에 따라 영주 '피에르' 백작에게 잠시 귀속이 되었을 때 카루주는 응당 자신에게 다시금 그 토지가 돌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영주는 카루주가 아닌, 르그리에게 토지를 선사한다. 카루주는 상소를 통해서 이의를 제기하지만, 법정은 영주와 르그리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게, 가문을 상징하는 지역을 빼앗긴것은 물론, 영주의 명에 반발했다는 오명까지 뒤짚어 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고난은 아직 카루주에게 서막에 불과했다.

 

 

 

군인과 정치꾼

그리고, 마르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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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021년

 

 

대대로 국가에 충성한 기사 가문답게, 카루주 역시 그에 부합하는 참된 군인이다. 여러차례의 참전 경험이 상기시키듯, 그는 전장에 있어야 빛을 발휘하는 혈기왕성한 사내다. 하지만, 그 당시 기사가 갖춰야 할 덕목은 적의 목을 사정없이 쳐내리는 용맹함에 국한되지 않았다. 충성을 맹세한 영주의 입맛을 만족시켜줄 적재적소의 언술이 불행히도 부족했던 그는 그가 새로 모시는 피에르 백작의 눈 밖에 날만한 행위들을 수 차례 이행함으로써 자신이 응당 받아야할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는다. 용맹하지만, 불같은 성미의 그에게 정치는 철저히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하지만, 르그리는 달랐다.

 

유서 깊은 가문의 출신이 아녔던 르그리는 그러나, 카루주가 가지지 못한 정치꾼으로서의 언사가 탁월한 남자다. 이를 기반으로 영주는 물론, 파리의 고위 관직에 속한 귀족들과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카루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참전경험에 반비례하는 막대한 양의 부와 토지, 그리고 명예까지 거둔다. 이에 화룡점정을 찍는 상황이 바로 카루주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벨렘'을 소유한 것.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한 때는 카루주의 첫 아들의 대부가 되어줄 만큼 돈독했던 르그리와 카루주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제의 그 사건 이후 두 남자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그 과정에서 주목할 인물이 바로 마르그리트다.


흥미롭게도, 카루주와 마르그리트는 저마다 가문에 내포된 운명으로부터 의도치않게 발목 잡힌 공통 분모를 지녔다. 카루주가 어쩔 수 없이 기사로서 피로 물든 칼날을 늘 품에 지닐 운명이라면, 마르그리트는 조상의 잘못으로 받지 않아도 될 오명을 받는 인물이다. 과거 프랑스 왕국의 반란 세력 가운데 하나였던 그녀의 가문은 2차례나 반역 행위를 주도함으로써 왕국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는다. 자신의 의지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은 마르그리트의 과거는, 똑같이 자신의 의지와 일절 상관없는 르그리의 범죄 행위를 증명하는데 있어 족쇄로 다가온다. 배신자 가문의 후예라는 딱지는 범죄 행위를 증명하는데 있어 카루주와 마르그리트의 앞을 끊임없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이 모든 시선을 꿋꿋히 감내한 그녀의 단호한 의지는 세기의 대결을 촉발시킨 또 한번의 계기로 작용한다.

 

 

의뢰인인 르그리에게 불리한 사항 중 하나로 르코크는 "카루주의 처가 실제로 그런 범죄행위가 일어났다는 주장을 단 한 번도 꺾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전면적인 부인과 알리바이와 온갖 종류의 반론에 직면하면서도, 마르그리트가 내놓은 증언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호사인 그조차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큰 감명을 받은 듯 하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192쪽

 

 

작가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한 르그리의 변호인 '르코크'의 당시 증언은 소설의 객관적 시선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자신의 의뢰인을 비롯한 재판에 연루된 여러 인물들을 심도깊게 관찰하며 서술한 그의 기록 가운데 마르그리트에 관한 기록은 얼마만큼 그녀가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는지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전투 재판에 카루주가 희생당할 경우, 위증죄로 자신 또한 화형될 수 있는 상황이 눈 앞에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주는 피고인을 향한 그녀의 단호함은 변함없었다. 이는 쉽게 판가름 내기 어려운 재판 과정의 연속 속에서 운명의 손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고등법원의 판단으로 이어진다.

 

물론, 어물쩡 한 쪽 손을 들었을 경우, 상대방의 격한 항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 또한 투영되었음을 작가는 콕집어 언급한다. 이는 오로지 승자와 패자뿐이라는 대결의 자극성으로부터 가려진 정치성을 폭로하려는 작가의 냉철한 의도를 기반한 폭로에 다름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대결을 성사시킨건 누군가의 명예를 보전하거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입지 않으려는 제3자의 이기적 의도 또한 대결을 촉발시킨 숨겨진 원인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고등법원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준다면 논란에 한층 더 불을 지피는 꼴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카루주의 요청을 받아들여 결투 재판을 허가함으로써 이 모든 골칫거리를 신의 심판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197쪽

 

 

올곧은 의지와 교활한 정치적 행위는, 그렇게 두번 다시 목격할 일이 없을 장관을 만들어낸다.

 

 

 

비장하고 엄정한

객관적 묘사의 정수


 

 

곧 관중의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무거운 쇠 구두로 땅을 박차며 격렬하게 싸우는 기사들 주위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탓이었다. 사람들은 외경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넋 나간 듯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응시했다. 결투 결과에 개인적인 이해가 얽혀 있는 인물들을 포함해서, 관중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결투의 결말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69쪽

 

 

제아무리 유명한 사건이라고 작품 스스로가 강조해도, 그에 합당한 묘사가 없다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 태도를 견지한 소설의 서술방식은 생사를 건 마지막 대결이라는 극적요소와 시너지를 이루며 클라이막스에 부합하는 비장함을 결투 시퀀스에서 극대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만들만큼 파급력이 상당했던 두 남자의 대결에 신빙성을 부여하며, 이 모든 사건을 촉발시킨 보이지 않은 시발점을 향해 독자들이 주목할 수 있게끔 흥미진진한 몰입감 또한 선사한다.

 

대결을 앞둔 두 남자가 상대의 목숨을 앗아갈 무기들을 준비하는 과정은 서슬퍼런 칼날과 함께 시뻘건 유혈이 가득한 이벤트가 곧 벌어지게 될 것임을 서늘하게 예고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함께 대결장을 꽉 채운 프랑스 시민들의 그 당시 들뜬 풍경은, 피와 폭력이 가미된 비윤리적 유희만큼 사람을 자극하는 흥미거리는 역사적으로 전무했다는 비루한 사실을 은밀하게 시사한다.

 

시퍼런 창날이 오가며 시작된 두 남자의 대결은 흩날리는 핏방울 속에서 처절한 사투 끝에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챔피언에게는 무한한 영광과 축복을 받으며 자신의 명예와 타당성을 운명이 입증해주었다는 영예로운 찬사까지 얻는다. 더불어, 챔피언을 대리로 내세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고인은 억울한 누명과 함께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을 모면하면서 자신이 받은 피해를 만인에게 공인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패자에게 수많은 오명과 함께 나락으로 추락할 일만 남는다.

 

수인의 운명을 자초한 패자의 사체는 교수대를 향한 마차에 매달린채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과 동행한다. 그 과정에서, 상술한 객관적 필체는 패자, 혹은 죄인이 맞이한 징벌의 시작과 끝을 바라보는 작가의 엄정한 시선과 맞물리면서 서늘한 기운을 증폭시킨다. 이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를 등에 업은 채 기세 높은 줄 모르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던 어느 안하무인에게 잘 어울리는 최후이며, 사필귀정에 입각한 윤리적 귀결에 다름이 아님을 작가 스스로 공인한 부분이다.


 

그러나 교수대의 빈자리에 대한 수요가 워낙 크고 지속적이었던 탓에 아직 완전히 뼈가 되지 않은 시체를 떼어내서 그 아래의 시체 보관소에 던져 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투기된 죄인의 시체를 기다리는 것은 기독교도의 매장이나 안식처가 아니라 공동묘지의 소름 끼치는 익명성이었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82쪽

 

 

그렇게, 패자의 지옥행 수순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자비없이 응시된다.

 

 

 

노르망디의 침묵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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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2021년

 

 

섣부른 재단을 지양하는 듯, 소설은 그 때 그 사람들의 언술을 기반으로 어디까지나 이 모든 사안들이 추측에 입각해서 묘사되었음을 암암리에 강조한다. 전 세계가 다 아는 사건의 유명세와 대조적으로 텅빈 원인으로서의 공백을 작가는 역사서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한 역사적 사실로 가득 채우며 부족한 신빙성을 보완한다. 객관적 태도를 견지한 소설의 필체는 이를 근간으로한 작가의 최선책이었을 것이며, 윤리적 문제가 개입된 마지막 대결을 향한 자신의 엄정한 시선을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음에 다름이 아니다.

 

특히, 공백이 명확한 와중에도 그녀의 범죄사실을 확언하는 이유는 시대를 불문하고 지켜야 할 개인의 명예와 윤리에 기인한다. 시종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는 와중에도 작가는 철저히 르그리의 범죄행각에 확신을 표하는 건 바로 이를 기반한 자신의 신념 덕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스트 듀얼>은 전운이 야기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꿋꿋이 스스로의 명예를 보전하려는 사람들의 사투가 담긴 한 편의 윤리극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세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결을 촉발시킨 불명확한 원인이 유발해내는 미스터리의 안개는 없어지지 않은 채 마지막 순간까지 희미하게나마 잔여한다. 이는, 작가 스스로도 공인했듯이, 사건을 입증해줄 그 때 그 사람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몰락할뻔한 가문의 위기를 일생일대의 대결을 통해 기적적으로 부흥시킨 카루주는 뒤이어 발생한 십자군 원정 중 실종 처리가 되면서 사실상 사망 상태로 역사에 기록된다. 패자와 죄인의 위치를 겸한 르그리의 후예들은 오명으로 인해 몰락한 조상의 위치를 복권시키고자 현재까지 유세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모든 광경을 그저 귀동냥으로 접한 호사가들은 말하기 좋아하는 성질에 걸맞게 근거 없는 낭설을 퍼트리며 마르그리트의 고백이 잘못되었음을 연대기를 통해 공공연하게 설파한다. 그 과정에서, 숱한 루머가 판치는 와중에도 마르그리트는 세간의 관심을 피한 채 조용히 살다가 카루주의 재산을 후대에 물려준 채 세상을 떠난다. 여기서, 소설은 불명확한 원인으로서 역사적 공백과 더불어 두 남자의 대결을 둘러싼 또 하나의 불가해한 포인트를 지적한다. 카루주와 마르그리트의 후일담보다 패자인 르그리의 관한 사전 기록이 더 많다는 것. 소설에 내포된 픽션보다 기이한 점은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결코 통용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다.

 

 

옛날 오래된 성관이 서 있었고, 실로 불운한 어떤 여성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가 행해졌던 장소 바로 근처에서, 아마 처자와 함께 살면서 이 땅에 감춰진 비밀을 지키고 있는 이 사내는, 자기가 아는 일을 내개 얘기해줄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너무 바쁜 탓에 과거의 망령 따위에 연연할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삽을 휘둘러 꺼지라는 시늉을 한 이 사내를 나는 도저히 비난할 수 없었다.

 

-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310쪽

 

 

정작 필요한 말은 사라지고 불필요한 이들의 언어만 잔여물처럼 현재까지 존속 중이다. 승자의 증언은 요원한 채, 패자의 지리멸렬한 자기변호와 호사가들의 농간만 살아남았다. 신뢰할 수 있는 목소리로서 그 때 그 사람들의 증언이 절박한 상황. 프랑스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서 그 어떤 판단도 섣불리 내릴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모든 대결의 포문을 연 문제의 땅, 노르망디를 찾는다.

 

그 곳에서 우연히 조우한 마을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작가의 기대와 달리, 그는 자기 할일에 집중하며 생면부지의 외지인을 무관심으로 대한다. 낯선 이에겐 적의를 먼저 표하는 노르만인답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증언을 거부한 또 한 명의 카루주-르그리의 후예. 오랜 기간 유혈과 폭력의 운명을 짊어온 노르망디는 노쇠한 기운을 못이긴 채 세월의 무상함을 묵묵히 맞으며 침묵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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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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