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ROMA', 공간과 틈의 충돌 [영화]

클레오의 움직임
글 입력 2021.10.2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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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ROMA), 2018>는 1970년대 초 멕시코 원주민 출신 메이드 클레오가 겪는 사건과 그녀의 시선을 관찰자적으로 제시하며 '연대'를 사고한다. 주인공 클레오는 멕시코시티의 백인 부유층 거주지 '로마'에서 일하는 젊은 메이드로, 소피아와 안토니오 가족을 도와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평온함도 잠시 그녀와 고용주 일가는 어려움을 마주한다. 클레오는 갑작스러운 임신 후 남자친구 페르민에게 버려지며, 고용주 안토니오는 불륜 이후 가족과 연락을 끊는다.

 

알폰소 쿠아론은 이런 위기 상황 속 개인이 어떻게 타자와 관계를 맺는지, 이 관계 맺음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느리지만 밀도있게 묘사한다. 영화는 이 연대의 과정은 물론 결과 역시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감독은 인간 연대의 가능성을 전달하는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가 가지는 미완결성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의 결합이 공유하는 불완전성은 곧 나라는 개인과 나 아닌 타자 사이의 '틈'을 의미한다. 내러티브의 중심에 선 클레오와 소피아, 페르민은 분명히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각각의 아와 비아로서 관계를 형성하며 이것은 영화를 끌어가는 내러티브적 힘이 된다. 이 관계는 일회적 연대나 충돌에 그치지 않는다. 타자 간 단적인 충돌이 아닌 '결합에 이은 분할'을 연료 삼으며 영화적 사유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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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심은 "신채호가 단순히 폭력의 폭력화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파괴가 곧 '건설이라고 봄'으로써 폭력을 넘어서 평화와 연대를 지향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로마는 단적인 충돌이 아닌 충돌과 결합의 상호성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구축하며, 이것을 인물 묘사와 공간성을 그리는 미장셴으로 구체화한다. 카메라의 시선 속 인물들과 그들이 속한 장소는 공간적으로 끊임없이 합쳐지고 분할된다.

 

이 조용한 결합과 분할의 연속은 곧 영화적 메시지의 표상이며, 인물의 행위와 카메라의 쇼트는 수평과 수직의 공간성을 통해 제시된다. 우선 인물의 수직적 움직임과 공간의 수직성을 위해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공간은 바로 러닝 타임의 주된 거점인 맨션이다. 맨션은 페르민을 제외한 메인 캐릭터들 모두가 거주하는 결합의 장소지만, 인물들의 위치와 행위는 철저히 구분된다.

 

이 분할은 상하를 기준으로 한다. 단적인 예시는 바로 1층과 2층의 구분이다. 클레오에게 맨션은 상승을 강제하는 곳이다. 1층은 클레오가 일하는 주된 공간이며 이와 이어진 중정은 그녀가 허리 숙여 개똥을 치우는 곳이다. 그러나 2층은 전적으로 고용주 가족들의 공간이다. 티비를 볼 때도 클레오는 소파에 함께 앉지 못하며 곧 이어 안토니오의 허브티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간다.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를 하고자 클레오는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한다. 그 외의 공간 역시 클레오에게 오름을 말한다. 빨래를 하고자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가야하고, 메이드 룸 역시 야외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타인들에게 이런 상승과 하강은 강제되지 않는다. 페페가 그저 옥상으로 놀러 오듯이 말이다. 단지 클레오의 낮은 위치와 고된 오르내림만이 당연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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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패닝 쇼트는 이런 그녀의 움직임에 무관심하다. 그저 고정된 채 눈 돌릴 뿐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클레오를 구태여 쫓아가지 않는다. 2층으로 올라가는 시작점과 1층에 다다른 움직임의 정도 혹은 움직임의 중간지점만을 제시한다. 클레오가 맨션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전체적인 모습, 즉 오롯한 완결은 줄곧 제시되지 않는다. 관찰자적 시점을 띄는 형식이 무색하게 그녀를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클레오는 다만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거나 멀어진 채 관찰된다.

 

이후 공간에 내재된 수직성은 인물의 영역으로 이어져 좁혀지지 않는 수평적 마주함을 만든다. 소피아와의 거리가 그러하다. 안토니오의 불륜과 소피아의 임신 이후 둘은 나란히 포옹한다. 두 여성은 기존의 위계를 넘어 혼자된 여성으로서 연대하며, 아이들을 향한 모성을 공유하지만 이후 결정적 분리를 보여준다. 바로 클레오의 출산 장면이다.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클레오의 사산 씬과 병원이라는 장소 어디에서도 소피아는 등장하지 않는다. 위계적 분리 이후의 연대를 목격한 후 제시되는 존재자적 충돌이다. 둘의 결합 너머 영화 이전부터 존재한 태초의 다름이며, 플라톤이 말했던 근원적 '틈(chorismos)'과 같다. 클레오의 임신을 부정하며 부재하는 페르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말해 결합의 미완이다.

 

클레오를 향한 능동적인 카메라 워킹은 수평에서 발견된다. 수직성에서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수평 속 연대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살펴야 할 것은 바로 트랙킹 쇼트다. 영화 속 클레오를 담는 트랙킹 쇼트는 늘 타자와 함께 하며 그녀가 겪는 연대와 발전의 모습을 담는다. 아델라와 식당으로 가는 쇼트, 토뇨를 쫓아 뛰어 극장으로 가는 쇼트, 시위 속 테레사와 아기 침대를 사러 가는 쇼트, 마지막 바다로 뛰어들어 소피와 파코를 구하는 것까지가 그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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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쇼트 이후 관객은 페르민과의 섹스, 안토니오의 불륜, 페르민의 위협과 클레오의 사산, 클레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소피아 가족과의 결합을 확인한다. 이것은 곧 클레오라는 인물이 겪는 지평의 확장이다. 관객은 4개의 쇼트를 통해 개인이 타자와 함께 하는 혹은 타자를 통해 발견하는 자기 인식의 확대와 타자 지향을 대리적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수직의 차이가 수평적 거리로 이어졌듯, 수평적 연대는 다시 수직적 결합으로 연결된다. 이는 맨션의 변화로 드러나며 영화 속 마지막 틸트 쇼트로 완성된다. 파도를 헤쳐 소피아 가족과 사랑이란 유대를 이룬 클레오는 영화의 말미 이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고 2층의 구조가 변했음을 목격한다. 직후 제시되는 틸트 쇼트는 야외 계단을 오르는 클레오의 모든 것을 담는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쇼트는 클레오의 낮음을 지적하며 그녀의 성질을 제한하지만, 마지막 틸트 쇼트 속 클레오는 높지도 낮지도, 중간적이지도 않다. 연대와 충돌을 지난 '나'라는 전체다. 호흡을 고르며 달려가는 알폰소 쿠아론이 과거를 되짚어 내린 결론이다. 그는 과거를 재구성하고자 흑백으로 영화를 찍었지만 필름이 아닌 디지털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영화에 대한 그의 태도이자 클레오를 향한 격려이다. 지나온 과거 속 분할과 결합 위에 섰던 이들을 향한 재평가의 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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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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