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더독을 위하여 [드라마/예능]

웹예능 <맛집의 옆집>(2021)
글 입력 2021.10.2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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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소갈비, 그리고 양곱창의 도시 부산. 모두 (내 맘대로) 한 지역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는 음식이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음식은 따로 있다. 바로 복어 맑은탕이다. 부산에 가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꼭 먹는 음식인데, 몇 해 전 부산 사는 지인이 해운대를 끼고 달맞이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 ‘원조부산할매복국(가명)’이라는 끝내주는 집이 있다고 해서 짬을 내어 찾아간 적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는 50년 전통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깔끔한 내부와 인덕션이 붙어 있는 최신식 테이블, 역시 성공하는 곳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번개처럼 놓이는 물과 밑반찬까지. 이것이 프로의 자세구나 싶었다. 하나 이상한 점은 사람이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게 뭘까 싶은 순간 멀리 낯익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원조부산할매복국’ 간판, 저게 저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당황한 나는 옆에 있던 메뉴판에 쓰인 상호를 다시 읽었다. 그곳에는 정확하게, ‘부산할매원조복국’이라고 쓰여 있었다.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 새것 같은 기물들은 정말 새것이었고, 번개같이 깔리던 밑반찬은 우리 같은 손님들이 다시 일어나서 건너편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왜 조금 더 자세히 보지 않았을까. 들어오기 전에 상호를 정확하게 살폈다면, 하다못해 오는 길에 반대편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탕이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냐는 합리화와 함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복어 맑은탕을 주문했다.

 

의외로, 맑은탕은 맛있었다. 맞은편 식당의 탕을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약이라도 타지 않는 이상 엄청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구나, 후발 주자의 인정 투쟁은 이렇게나 눈물겨운 것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 유사한 이름의 식당을 주의하라는 건너편 식당의 안내문을 보며, 언젠가 맛집 옆에 있는 식당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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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었다. 카카오TV에서 <맛집의 옆집>(2021)이라는 오리지널 예능을 공개한다고 발표했을 때, 나는 이것저것 휘갈겨 놓은 아이폰 메모장에서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지워야 했다.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똑같구나. 그러나 내가 먼저 만들 걸 하는 아쉬움도 잠시, 같은 아이디어를 이 프로그램에서는 어떻게 풀어냈을지 몹시 궁금해졌다. 마침 얼마 전 넷플릭스에 전 에피소드가 공개되었기에, 1화부터 쭉 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컨셉과 조금 달랐다. 근처에 있는 맛집의 명성에 가려졌을 뿐,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곳을 소개하는 게 메인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곳이 없진 않았지만, 옆에 맛집이 없었어도 딱히 잘되지 않았을 것 같은 곳이 대부분이다. 파일럿의 성격을 띤 1화에서 잔뼈 굵은 MC인 김구라가 ‘옆집’의 음식 맛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면, 출연진도 처음에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나와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이 구체적인 솔루션을 줄 수 있는 전문가도 아닌지라,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살리나 싶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는 <맛집의 옆집>만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옆집’의 음식 맛이 대부분 2% 부족한 탓에, 음식 맛에 대한 출연진의 반응은 굉장히 신선하다. 인간의 언어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 훨씬 다채롭게 사용된다는 연구를 증명이라도 하듯, 죽은 닭이긴 한데 생기가 없다는 말이나 한평생 가습기를 안 쐰 닭 같다는 창의적인 표현이 큰 웃음을 준다. 칭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부생의 과제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처럼 형식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획 및 연출을 맡은 손수정 PD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보통 식당에서 사장님이 들어가면 속닥속닥했던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옆집’ 사장님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비범한 입담도 눈여겨볼 요소다. 그들은 여기서 뭘 해도 더 잃을 것이 없다는 듯 거침없는 입담을 쏟아낸다. 패널들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고, 패널들이 제공하는 (비전문적인) 솔루션을 한 귀로 흘리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고집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애초에 프로그램의 취지가 솔루션 제공이 아니고, 출연자들이 솔루션을 목적으로 출연하는 것도 아니기에 사장님들의 성격은 골목식당의 ‘빌런’처럼 보이기보다는 예능의 ‘캐릭터’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어느 시점부터는 식당의 음식 맛을 재미있게 평가한 다음, 사장님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프로그램의 플로우가 되었다. 요컨대 음식의 맛 자체보다는 사장님들의 사연, 즉 ‘스토리’가 중심이 된 셈이다.

    

잘나가는 이유는 대충 비슷하지만, 안 되는 이유는 제각각이라는 말마따나 ‘옆집’의 사연은 다채롭다. 음식은 잘하는데 이상하게 손님이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귀찮아서 손이 많이 가는 메뉴를 피하는 곳도 있고, 맛집의 낙수효과를 노리고 개업했음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곳도 있고. 주력 메뉴는 맛이 없는데 곁다리 메뉴를 기막히게 잘하는 집도 있다. 그들을 '옆집의 그늘에 가려진 피해자' 정도로 뭉뚱그린 과거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눈물과 웃음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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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삶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했던가, 문득 <맛집의 옆집>이 부산에도 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오늘도 가게 앞에서 미포항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실까. 내가 제멋대로 읽어내린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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