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애보다 재밌는 너의 연애

타인의 감정소모에 몰입하다
글 입력 2021.10.22 20: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 연애 리얼리티: 클래식한 욕망X트렌디한 감성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2021년 여름, 이 문장은 느닷없이 대한민국 청춘들을 강타했다. '짝짓기' 프로그램은 꾸준히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90년대의 '사랑의 스튜디오(MBC)'부터 2010년대 '짝(SBS)', '우리 결혼했어요(MBC)'까지. 그리고 2021년, 인간의 가장 클래식한 욕망인 사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다시 유행이다. 이전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 연애 리얼리티는 정서적 교감을 중심으로 서로의 선택에 집중하는 포맷을 선보였다. 다소 촌스럽고 풋풋한 감성은 향수를 건드렸다. 하지만 최근 연애 리얼리티는 마라맛을 내세우고 있다. 2020년대부터 연애 리얼리티는 훨씬 다양하고 자극적인 포맷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트렌디한 감성은 필수이다. 내가 하는 연애는 귀찮아도 남의 연애는 흥미진진하게 챙겨 보게 되는 연애 리얼리티. 가장 클래식한 욕망과 가장 트렌디한 감성이 맞닿아 유행을 일으켰다. ‘나’의 연애보다 더 재밌는 ‘너’의 연애, 대체 왜 인기일까?

 

 

 1526896877_191363_20180521190034087.jpg

 

 

a. 하트시그널

 

채널A의 '하트시그널'은 2017년 시즌1을 시작으로 2020년 시즌3을 종영한 연애 리얼리티의 인기 시리즈다. '하트시그널'은 2011년에 대중적인 신드롬을 보여준 '짝'이 보여준 연애 리얼리티 문법을 따랐다. '하트시그널'과 '짝', 두 프로그램 모두 한 집에 일정 기간 동안 일반인 남녀가 함께 살며, 마지막 날에 서로의 선택을 기다린다. 하지만 '하트시그널'은 여기에 두 가지 트렌디한 양념을 얹어 익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잡았다. 첫째, 연예인으로 구성된 러브라인 예측단을 넣어, 화면 밖에서 시청자들과 흥미진진함을 함께 나눈다. 일반인 출연자들의 감정을 추리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포맷은 큰 호응을 받았다. 여기에 개인의 생각이나 연애사를 풀어 이해를 돕는다. 둘째, 계절감에 맞는 화면 색감과 기막힌 배경음악 선정이다. 하트시그널은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따뜻한 화면의 색감 보정과 세련된 음악 선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출연자들의 썸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optimize.jpg

 

 

b. 환승연애 & 체인지 데이즈


'환승연애'와 '체인지 데이즈'는 연애 리얼리티 문법의 대전제를 깨트렸다. 기존 연애 리얼리티는 서로 일면식이 없는 솔로 청춘들이 출연한다. 먼저 '환승연애'는 헤어진 옛 연인 4쌍이 재회한다. 과거의 애인을 'X'로 호칭하며 처음 본 사이인 척 연기를 한다.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라며 옛 연인의 시선이 더 이상 본인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알려준다. 다음으로 '체인지데이즈'는 보다 이별을 고민 중인 권태기 연인 3쌍이 등장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애매하게 식은 청춘들이 옛 인연과 새 인연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과정을 날 것으로 담았다. 출연자들이 갖는 씁쓸한 감정과 안타까운 오해가 담긴 표정은 화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비하인드 인터뷰로 전하지 못한 진심이 나레이션처럼 더해진다. 출연자의 감정소모가 극적인 편집과 함께 더해지니, 시청자들도 설레하면서도 슬퍼하며 '과몰입'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남의 연애 경험을 드라마처럼 시청하며 ‘신선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공감을 한다. 

 

시청자들이 과몰입할 수 있도록 제작진은 심혈을 기울여 출연자를 섭외하고 환경을 조성했다. '환승연애'의 이진주 PD는 "시청자들이 각자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최대한 다양한 유형의 커플을 모았다. 매일 출연자들을 인터뷰하고,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 감정변화에 계속 놀랐다. 이들이 감정을 드러내도록 촬영 기간 3주 동안 카메라와 제작진은 출연자가 볼 수 없는 곳에 숨어 있도록 했다"며 전했다. 출연자의 진심이 화면으로 우러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제작진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2. 당신이 타인의 연애에 열광하는 이유

 

a. 현실성

 

첫 번째, 현실성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편협해진 인간관계로 인한 갈증이 현실적인 연애 리얼리티를 찾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허구의 로맨스 드라마와 달리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실시간 진행 중’이라는 리얼리티성을 강조해,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준다. 대본으로 짜이지 않은 출연자들의 솔직한 감정과 행보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또 다른 포인트이다. 사회생활 때문에 감정에 쉽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시청자들과 달리, 출연진들은 촬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놓여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들의 솔직한 진심 표현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시청자들도 늘고 있다. 출연자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는 사실도 현실성을 더한다. 연애 리얼리티에선 다양한 직업과 성격, 외모를 가진 일반인들이 등장한다. 전문 방송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공감을 받는다는 시청자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직업이나 외모적으로 주변에서 흔치 않은 ‘그사세’ 사람들만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괴리감을 느낀다는 시청자의 의견으로도 분분하다. 

 

b. 자극성

 

두 번째, 자극성이다. 과거 연애 리얼리티는 참가자들의 행복하고 로맨틱한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했다. 하지만 '환승연애'나 '체인지데이즈'와 같은 리얼리티뿐만 아니라, '애로부부', '연애의 참견' 등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소개하는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자극적인 소재를 보여주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감정소비를 부각할뿐만 아니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연을 편집해 소개함으로써 채널을 고정시키도록 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SBS '짝'에서는 출연자들의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 연애 리얼리티는 자극적인 설정과 찰나적인 만남도 개의치 않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사업자들도 젊은층에서 회자되는 논란거리를 통해 먹고 사는 입장이다보니 이런 경향의 프로그램이 계속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청자들과 제작자들은 설렘을 건드리는 포맷보다 이별이나 이혼, 혹은 감정소모를 강조하는 자극적인 포맷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출연하는 연애 리얼리티에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 일반인 출연진들은 과도한 비방과 인신공격, 사생활 침해 등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참여했지만 오히려 악플에 시달리게 되었다. 돌싱들의 연애 예능 '돌싱글즈'의 출연자들은 최근 SNS를 통해 허위사실 유포와 가족에 대한 비방은 강경 대응하겠다며 입장을 표명했다. '하트시그널' 출연진들 역시 SNS로 악플 경고를 해야만 했다. 물론 연애 리얼리티는 엇갈리는 사랑 관계를 가장 단면적이자 자극적으로 담아내 어느 정도 시청자들의 '과몰입'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악플은 용인되어선 안 되며, 특히 연애 리얼리티의 출연자 대부분이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진부한 가짜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 신선한 진짜 연애 리얼리티. 사람들의 ‘과몰입’을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출연진들의 진심 어리고 솔직한 감정표현이다. 쌀쌀한 환절기 바람에 가을 타는 당신, 만약 연애세포가 도저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외롭지만 연애를 할 기력조차 남지 않고 지친 당신이라면. 끊을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연애 리얼리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채널 고정! 

 

 

[송윤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