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존재의 이유 - 3

글 입력 2021.10.24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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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감정,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욕구를 부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것들이 터져나오려 할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들을 억눌러야 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땐 나도 그러한 것들을 조절하는 힘이 약했던지라 꽤 많이 애를 먹곤 했는데 조금씩 해가 지날 때마다 점차 인내력이 강해져 어느새 감정과 욕구를 손 안에 두는 게 익숙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튀어나오지 못해 안달나 있던 그것들이 점차 사그라드는 게 느껴졌다.

 

그건 마치 체념과도 같았다. 내가 그들을 꺼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 속박해두었기 때문에 더이상 몸부림 치지 않는 것이었다. 발버둥쳐도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어떤 요란도 치지 않는 것이었다.

 

난 실로 그것을 원하고 원했었다. 더이상 날 괴롭히지 말았으면, 쥐 죽은 듯 찌그러져 있었으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 마냥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그냥 나에게서 사라졌으면, 하고 바랐던거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난 점차 감정과 욕구에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들이 올라올 생각을 안하는 것인지, 내가 그들의 행동에 무관심 한 것인지, 혹은 정말 그것들이 사라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만 내가 그런 것들에 둔감해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난 점차 겉으로 기분을 표현하는 일이 없어졌고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본능에 반응하지 않고 욕구를 절제하는 것에 능숙해졌다. 꽤 괜찮은 도약이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고 완전히 만족을 하진 못했지만 중간 이상은 갔다. 내 이상에 다가가는 일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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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한편, 비슷한 시기에 난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고 감정에 지배당하며 욕구를 쏟아내는 사람들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킬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고 실험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욕구가 내면에 잔존하는 이상 그것을 가진 자는 그 욕구를 해소시켜줄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그리고 한번 무엇을 원하게 되어 그것을 얻고 나면,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우리는 원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불만족을 느끼게 되고 그건 결국 불쾌함이라는 감정을 생산하게 된다. 인간은 그러한 불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자극과 자신을 만족시켜줄 더욱 거대한 욕구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그 한계점과 욕구가 충돌하게 된다면 거의 대부분 욕구가 무너지고 만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욕구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은 행동인 것이다.

 

그럼 스스로를 파괴하는 욕구는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리고 그런 파괴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애초에 욕구는 절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위험하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내 몸 안에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제어되지 못한 욕구는 제한시간이 거의 다 된 폭탄과 같아서 필시 사회 질서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모든 범죄의 근원에는 욕구가 있지 않던가? 범죄의 이면에는 욕구가 숨어있지 않던가.

 

욕구가 있기에 인간은 범죄를 저지른다. 만약 인간이 욕구를 지니지 않았다면 범죄를 저지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매스컴에 매번 등장하는 범죄 소식을 보라. 이것을 보고도 욕구가 옳다고 말할 수 있을텐가? 저들에게 욕구가 없었다면,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을까? 애초에 욕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런 참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욕구도 모두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 무엇을 생각해도 욕구는 결국 죄악이다. 그러므로 욕구는 옳지 않은 것이다. 욕구는 짓밟혀야 하는 존재다. 욕구는 없어져야 마땅한 존재이다.

 

세상에 해로운 것을 가져다주는 욕구는 악이다.

 

그리고 욕구를 발생시키는 본능 또한 악이라 볼 수 있다.

 

본능은 만악의 근원이다.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인간은 악인이 될 수 있다. 본능을 지닌 인간은 언제든지 범죄자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을 타고났다.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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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이 가져오는 참혹한 결과가 연일 세상을 시끄럽게 하면서 난 더욱더 본능을 옳지 않은 것이라 여겼고 그런 신념은 결국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안그래도 감정과 욕구, 본능을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게 위와 같은 판단은 그런 것들을 내게서 떨쳐버려야 한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공해주었고 악의 근원인 그것들을 얼마든지 증오해도 괜찮다는 무언의 신호를 주기도 했다. 내가 가진 욕구와 본능을 마음껏 혐오하고 찢어발겨도 된다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그릇된 허상일 뿐이라고 얘기하며 말이다.

 

더이상 그것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갈때까지 가버린 내게 욕구의 긍정적인 면을 검토할 시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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