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허왕옥의 눈으로 본 가야 -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 창작 오페라 '허왕후'

글 입력 2021.10.19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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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허왕후 최종.jpg

 

 

머나먼 타국과도 해상 교류가 활발하던 가야의 문화는 거대 삼국에 못지 않게 특별한 점이 있었다. 비록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거나 당시 정세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던 나라는 아니었음에도, 자국의 정신을 꾸준히 이어가며 독자적인 문화를 확립했다. 특히 건국 당시 역사로 유명한 것은 김수로왕의 설화다. 낙동강 하류 변한 지역에는 본래 왕이 없이 9명의 우두머리가 백성을 다스리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늘의 명을 받아 6개의 황금알을 받았으니 이중 첫 번째로 태어난 이가 김수로였다. 알에서 태어난 6명은 각각 가야를 다스렸으며 김수로왕의 가락국이 제일 강한 나라였기에 최종적으로 김수로가 이 지역을 이끌게 됐다.

 

그렇게 김수로의 이야기를 짚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만나기 마련이다. 김수로가 왕비로 맞아들인 공주 허황옥. 그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국제 결혼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설화에 기반을 둔 로맨스이나 가야는 당시 남방 제국과 해상 무역이 활발했던 만큼 영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2만 5천 리의 바닷길을 넘어 이어진 사랑이라니. 운명이라 일컬을 만한 사랑 이야기에, 역사는 이 설화를 오래도록 지켜 오늘날까지 전해왔다. 그리고 이는 막연한 옛 시대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 수많은 이야기로 탄생하는 중이다.

 

오페라 <허왕후>는 약 2천년 전 가야의 시작을 알리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을 예술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극이다. 당시 가야국의 건국 이념을 같은 방향성으로 공유했던 김수로와 허황옥의 만남, 그리고 사랑을 아름답게 이야기한다. 당대의 모습을 임팩트 있게 묘사한 가사와 작중의 시적인 분위기를 높이는 멜로디가 어우러진 아리아가 2021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단숨에 가야국 한복판으로 이끌어놓는다.

 

특히 예술감독 신선섭과 대본 김숙영, 작곡 김주원이 역사적 의미를 살리면서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해 오페라를 기획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허황옥 역에는 소프라노 김성은, 김은경, 김수로 역에는 테너 정의근, 박성규, 이진아시 역에는 바리톤 박정민, 이규봉 등이 출연하며, 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김해시립합창단, 최선희 무용단이 함께해 무척 풍성한 무대 연출을 완성한다.

 

 

허왕후.jpg

 

 

개인적으로 창작 오페라 <허왕후>를 추천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 꼽아볼 수 있겠다.


첫 번째, 가야를 바라보는 신선한 시점. - 늘 당대 가야를 노래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김수로를 중심에 두고 그의 신화적 탄생과 영웅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실 허황옥이 가야의 왕비가 됐다고는 해도 타국의 왕비이기에, 창작물에서 그녀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과감한 시점의 변화는 가야를 읽어내는 새로운 감각을 심어준다. 오페라는 그녀의 존재와 당대 상황에 대한 상상을 확장함으로써 설화적 속성으로 뭉뜽그려져온 두 사람의 만남에 의미와 개연성을 불어넣었다. 분명 같은 이야기임에도 다른 이의 시선으로 가야의 건국을 바라보고 또 여기에 예상치 못한 풍부한 해석이 곁들여지자 스토리텔링의 맛이 깊이 우러났다. 물론 상대적으로 김수로를 비롯해 다른 역사 인물의 활약과 존재감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를 충분히 감수할 만큼 독창적인 접근이었다.

 

두 번째, 예술적 상징성이 돋보이는 무대 연출. - 근래 본 공연 중 오프닝 연출이 제일 소름 돋았다. 둥근 하늘이 서서히 열리고 그 가운데 철로 만든 칼 조형물이 무대를 가로질러 중심을 잡은 구조. 그리고 신성함과 위계를 상징하는 단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너나할것 없이 뒤섞여 철을 가공하는 데 여념이 없다.

 

중앙을 비운 원형의 하늘은 상황에 따라 기울기와 높이를 달리하며 이야기에 입체감을 불어넣어준다. 그런가하면 허왕후와 하녀가 단둘이 대담을 나누는 씬에서는 무대를 과감히 비우거나, 오페라 말미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항구와 배를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등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이 흥미로웠다. 아울러 구조적 장치뿐 아니라 연극적 장치에 있어서도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최선희 무용단이 함께해 중간중간 전통 문화와 이국적인 감성을 교차한 것 같은 춤선을 선보이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다소 처질 때마다 분위기를 힘있게 잡아주어 끊임없는 볼거리에 눈도 즐겁다.

 

세 번째,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극 구성. -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어로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이 확실히 편하다.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겨가며 무대에 대한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필요도 없고 극 내용 역시 더욱 분명하게 전달돼 전체적인 이해도가 높아진다. 또한 기본적으로 이 오페라의 배경이 가야인 만큼 역사적 사실, 인물, 문화, 복식 등 다양한 방면에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재미 요소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내용과 연출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무대를 오가며, 주체적으로 극에 살을 붙여나가다보니 한결 능동적인 감상이 가능하다. 가족이 함께 오거나 어린 친구들과 같이 감상하기에도 좋겠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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