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유로운 돼지와 종속된 소크라테스 사이, 연극 '태양'

글 입력 2021.10.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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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가장 최첨단의 소재로 가장 근원적인 것들을 짚는 흥미로운 장르라 생각한다. 연극 <태양>은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 속에서 우월한 신인류로 부상한 '녹스' 집단과 일반 인간 '큐리오' 집단의 갈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인간성의 근원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에 관람한 연극 <태양>은 두산아트센터, 경기아트센터, 경기도극단이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극본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 연극은 물론 소설, 영화화도 이뤄진 작품이다.

 

여름에 관람했던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또 다른 SF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가 매우 인상 깊었기에 관람 전부터 <태양>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던 터였다. 그리고 <태양>은 오락적인 재미는 물론 인간과 세계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힘도 겸비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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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묘한 점은 <태양>의 서사가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전세계 인구가 급감한 21세기 초'를 배경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는 팬더믹 사태에 일상을 빼앗긴, 그리고 새로운 일상을 구성해오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떠올리게 한다.

 

 

“바이러스라는 표면적인 유사점만이 아니라, 이런 시국에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시국에,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무척 기대됩니다."

 

- 작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한국 공연 소감

 

 

이 일상의 비일상성에 대한 기시감은 무대 디자인을 통해서도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무대 천장은 낡은 의자, 탁자,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나무 판자 등이 해체되어 거꾸로 붙어 있는 형태였다. 아주 일상적인 가구와 기물들이 무척 낯선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무대 디자인은 <태양>의 지구라는 배경이 우리에게 익숙한 인간들의 터전인 동시에 새로 정립된 인간성이 기존의 것과 갈등을 벌이는 생경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2010년대 초에 쓰인 작품이지만, 이 시국을 헤쳐나갈 돌파구를 제시하는 혜안도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의 습격 후 감염자 집단 가운데에서 우월한 신체 능력과 지성을 지닌 신인류 '녹스' ('밤'의 의미를 지닌 라틴어)가 생겨나고, 곧 이들은 기존의 인간 집단을 골동품이라는 의미의 '큐리오'라 일컫는다. 녹스는 정계의 중심에 서 나간 것은 물론 상당한 경제력까지 쥐며 지배 세력으로 성장하지만, 자외선에 약한 탓에 해가 뜬 낮에는 활동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제약을 가진다. 그들은 큐리오들을 열등한 인간 종으로 여기고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며 공존을 꾀한다. 어느 날, 큐리오들의 마을 '나가노 8구'에서 발생한 녹스 살해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해당 마을은 녹스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었고, 주민들은 상당한 고립과 핍박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고서야 마침내 외부와의 교류를 허가받는다.

 

녹스와 큐리오의 이질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건 배우들의 연기였다. 우선 녹스들의 깔끔한 헤어스타일과 의복, 그리고 큐리오들의 부스스한 머리와 천이 얼기설기 엮인 옷가지는 시각적으로 빈부의 차이는 물론 그들의 삶의 태도까지 반영하는 듯 했다. 또한 큐리오는 말과 행동이 거칠게 표현되었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말을 더듬는 등 일상 속 우리와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비해 녹스들은 기계적인 몸짓으로 움직이며, 마치 준비라도 한듯 빠르고 정확하게 발화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성'이 결여된 듯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녹스에게 여전히 잔여한 인간성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녹스가 큐리오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분야가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예술'이다. 행동과 말이 서툴고, 추함과 더러움을 잘 알고 겪어왔으며, 비극에 누구보다 익숙한 진짜 '인간'이 만든 예술은 뜻밖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녹스는 큐리오들의 예술로부터 흥미와 미를 느끼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간적이다. 게다가 이는 인간의 지위가 위협 받는 오늘날, 예술만큼은 오롯이 인간만이 창조하고 감상하는 인간 고유성 그 자체라는 점도 지적하는 것 같다. 덧붙여 녹스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상이하다는 점도 그들이 특이점이 죄다 밀린 채 기계화되어 버린 존재는 아님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큐리오의 '비인간성'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의 집단만을 맹목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주의, 타종에 대한 혐오로 살인까지 능히 저지르는 잔인함은 인간적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는 없는 큐리오의 민낯이다. 이들은 눈 앞의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혹은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어리석은 판단을 하며 때로는 집단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파괴해버리고 만다.

 

녹스와 큐리오의 안에는 서로에 대한 혐오가 내제되어 있지만, 그것을 표출시키는 방식은 상이하다. 녹스는 큐리오를 동정하고 시혜를 베푸는 방식으로, 큐리오는 욕을 내뱉고 몸부림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녹스의 인간적인 면과 큐리오의 비인간적인 면은 서로 조우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이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새로 마을에 온 녹스 주재원과 소년의 우정이다. 주재원은 외친다. "우린 모두 인간이잖아!"


2010년대 초에 쓰인 작품이지만, 이 시국을 헤쳐나갈 돌파구를 제시하는 혜안도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팬더믹과 함께 눈에 띄게 증가한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범죄, 난무하는 유언비어와 타자에 대한 적개심, 물리적인 닿음이 허락되지 않는 탓에 온전히 전할 수 없는 마음 등은 바이러스가 낳은 비극인 동시에 인간 안의 악이 극대화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태양이라는 근원에게 버림 받았지만 놀라운 능력을 지닌 녹스와, 사사로운 것에 괴로워하고 우유부단하지만 낮과 밤의 변화와 그로 인한 자유를 아는 큐리오는 모두 인간이라는 근원으로 하나가 된다. 물리적 접근이 어려운 지금, 우리가 우리 안에 내제된 혐오를 누르고 사랑과 인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이라는 근원적 공통점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이처럼 매우 시의적절하게 재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연극 <태양>을 꼭 관람하길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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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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