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전미술에 치우친 애정을 현대미술로 가져다 준 -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글 입력 2021.09.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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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시절, 교양 또는 전공수업에서 미술의 역사를 공부할 때면 나의 흥미를 자극했던 건 고전 미술이었다. 오랜 고전 미술 역사의 사조 중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고, 안정적인 비례를 이루며, 신화를 모티브로 그려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가 요즘 흔히 말하는 내 최애 미술사조였다.

 

왜 그리 고전미술을 좋아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책의 표현대로 고전미술은 시각적 매혹을 본질로 하기에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해 낸 그림에 한 번 매혹되고, 원근법적 재현으로 완성된 형식이 주는 안정감에 또 한 번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속에 담긴 신화적인 이야기 또한 매혹적이었기에 더욱 집중하여 공부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에는 비교적 적은 비중의 애정을 할애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머릿속의 현대미술은 그 시작인 세잔과 야수주의, 그리고 입체파에서 마무리되었다. 분명 적지 않은 강의를 들으며 현대미술에 관해 공부했을텐데 머릿속에 남아있는 내용은 강의 양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보니, 졸업 후에는 양심에 찔려 현대미술을 더욱 외면하게 되었고, '현대미술은 어려우니까'라는 고정관념으로 부족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도서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만나 현대미술을 마주했다.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이라는 제목답게 책 소개에는 시대의 아이콘이 된 예술가들의 삶을 조망하여 새로운 시대를 돌파해나갈 혁신과 창조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쓰여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문구는 "현대미술의 창조자에 이름을 올린 예술가들이 벌인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여정을 추적한다"였다. 이 흥미진진한 여정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입체파에서 끝난 내 머릿속 현대미술 족보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에서 독서가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리뷰는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보다는 '현대미술의 전개'에 집중되어있음을 미리 알린다.


책의 시작은 20세기 미술 지도로 시작된다.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가로축과 '중심과 변방'을 의미하는 세로축으로 구성된 미술지도는 책의 뼈대를 이루며, 책이 현대미술의 흐름을 세세하게, 친절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신지학'과 관련된 이야기다. 신지학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초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대단히 성했했던 신비주의 종교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예술 이야기에 갑자기 웬 생경한 종교 이야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예술계에 신지학이 미친 영향을 알면 알수록 놀라움은 배가 되었다.

 

니체의 말처럼 신이 죽고 사람들이 영적인 공허함을 느끼던 19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영매인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당시 사람들이 느끼던 집단적 불안감을 교묘히 파고들어 새로운 종교 신지학을 창시했다. 세상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분위기였던 시대에 과학에 대한 비판을 내세운 신지학 교리는 많은 사람의 호응을 끌어 냈고, 영매였던 블라바츠키는 영혼과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과학만능주의에 맞서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신지학이 예술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지금까지도 현대미술의 거장들로 불리는 예술가들의 이름을 접하면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추상화의 대표화가로 불리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몬드리안까지도 신지학에 빠져 이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그려냈다. 특히나 몬드리안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못해 충격적이었는데, 그의 대표작들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색인 '빨강, 파랑, 노랑'이 신지학에서 왔다는 점이 절대 잊히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의 명상을 통해 흑백을 제외하고 그림에 필요한 색은 '빨강, 파랑, 노랑' 딱 세 개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 삼색이론을 장착하여 자신만의 회화로 도약했다.

 

신지학에 이어 예술가들은 신비주의와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영향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나갔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등 미술사조에 길이 남을 사조들이 탄생했다. 이런 일련의 현대미술이 탄생한 과정을 통해 당시 예술가들의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위한 고군분투기를 마주한다. 사진기의 발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고전주의가 종언 되다시피 하고, 투자가치를 목적으로 한 신흥 수집가들의 등장과 급격히 변화한 세상에서 예술가들은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사실적인 것들을 그릴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 세계는 자연스럽게 초월적인 것들과 연결되었다. 그 누구보다 집요한 집단인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던지며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내었으며, 이 길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책의 저자인 김태진은 대학 최고의 강의에 수여하는 '베스트 티처' 상을 수상할 만큼 흡인력을 자랑하며, 그의 강연은 늘 예외 없이 청중들의 열렬한 앙코르 요청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의 강의력을 증명하듯 책은 현대미술의 역사를 물 흐르듯 매끄러우면서도 친절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이는 고전미술에만 치우쳤던 애정을 현대미술에도 할애하는 시작이 되었다.

 

완독을 마친 지금, 다시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대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학습을 목표로 읽어나가고 있다.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오래도록 기억하고 내게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를 배우고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다룬 책에서 현대미술 학습을 더 느끼고, 목표로 하는 것은 책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미술을 떠올리며 '분명 학부시절 한 번쯤은 배웠을 내용일 텐데' 하고 넘겼던 것을 이번 책을 통해 마무리 짓고자 하며, 책을 통해 현대미술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평소 현대미술을 어렵게 생각한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할 것이라 믿는다. 지금 이 리뷰를 읽고 있는 사람 중 현대미술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김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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