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미술에서 엿본,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 아트인문학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
글 입력 2021.09.2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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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예술가가 깨닫는다.

그간 남들 뒤만 따라왔다는 것을.

그는 벽을 기어올라 홈에서 탈출한다.

드넓은 세상과 마주해 감격한 그는

영감에 휩싸여 과거에 없던 미술을 창조한다.

 

이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힌 그는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 11p

 

 

새로운 미술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한 예술가는 홈에서 탈출하여 하나의 점을 만들어낸다.

 

작가가 표현한 '홈'이란 무엇일까. '홈'은 보편적 성공을 위해 많은 이들이 걷는 길이다. 예를 들어 SKY에 입학, 좋은 직장, 공시 합격 또는 자영업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홈에는 시대의 함정이 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높은 성장률만큼 괜찮은 일자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로운 산업의 패러다임과 함께 안정된 홈은 많이 사라지고 남아있는 홈은 좁아졌다. 그 홈에서 성공 확률은 5퍼센트 미만이다. 축하의 레드 카펫은 늘 95퍼센트의 좌절 위에서 펼쳐진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홈에 빠진 채 걸어왔다.

 

홈에서 나온 예술가는 드넓은 대지를 보았다. 그곳에는 줄 서기도 정해진 길도 없었다. 오직 나다움에 집중하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할 뿐이었다. 새로운 대지에도 홈이 파인다. 남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릴 때면 서둘러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역량이 있다. 그건 바로 독창적 사고력, 즉 '틀 밖에서 생각하는 힘'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쉽지 않은 것을 배울 때 성공사례를 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현대미술은 분명 좋은 교재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홈에서 나와 대지를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행위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삶의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술에 주목하는 것은 예술가처럼 생각하기 위함이고 우리의 삶을 예술처럼 만들기 위해서다."

 

 

 

점들을 이은 선들


 

 

 

이 책은 20세기 미술을 다섯 가지 가닥의 선으로 보여준다. 선이 지나가는 점들은 새로운 미술이 생겨난 '생성점'들이다. 이 생성점에서 현대미술을 창조한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이 탈피한 과거의 낡은 틀은 무엇이었는지, 이들에게 찾아온 사고의 도약은 무엇이었는지를 주목한다.

 

창조는 창조를 낳는다. 생성점은 또 다른 생성점을 만들었고 작가는 이러한 관계를 주목해 선을 이어나갔다. 이 선들은 현대미술이 거쳐온 경로다. 20세기 미술지도의 다섯가지 선을 따라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졌다.

 

이 책은 25개의 생섬점에서 일어난 사건과 미술사의 문화 전반적인 모습을 조명한다. 예술가와 작품을 소개하며 미술계에서 일어난 미술사의 사건을 이야기 형식으로 나열했기 때문에 예술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경로선을 담고 있던 1부에서는 현대미술의 초기의 흐름을 보여준다. 현대미술이 형성되는 과정을 장식한 주 생성점을 비춘다. 그리고 과거 미술을 이루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흠에서 빠져나온 미술사를 포착한다. 2부에서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경로선으로 현대미술 후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흠에서 빠져나온 예술가들이 드넓은 대지에서 새롭게 열어간 길들을 추적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첫 번째 경로선 : 공간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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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모자 쓴 여인>, 1905

 

 

20세기가 열리고 미술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대 사람들이 생각하던 미술엔 한계가 있었다. 눈으로 본 것과 다르면 안 된다는 "재현이라는 틀"이다. 이를 야수주의 화가들이 넘어섰다. 첫 번째 생성점은 1905년 프티 팔레에서 개최된 살롱도톤이다. 앙리 마티스는 <모자 쓴 여인>으로 파리 미술계에 충격을 던졌다. 얼굴에 덕지덕지 칠해진 초록색 물감은 관람객을 거북하게 하고 비평이 일게 했다.

 

그러나 스캔들은 종종 커다란 성공으로 반전되곤 했다. 마티스는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트루트 스타인의 선택을 받게 된다. 자유분방한 색채를 구사하여 미술계의 고정관념을 깸으로써 마티스는 "야수주의"로 현대미술의 시작점을 만들어 내었다.

 

야수주의의 등장에 이어 두 번째 생성점은 <아비뇽의 여인들>이 그려지던 무렵이다. 피카소는 여인들의 얼굴을 그릴 때 아프리카 가면을 참조하여 파격적인 작품을 내놓는다. 그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은 브라크는 피카소에게 찾아간다. 야수주의의 대가 마티스의 동료였던 브라크는 왜 피카소에게 공동작업을 제안했을까? 피카소만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특히 피카소는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가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베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것을 새롭게 재창조했다.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원본보다 더 강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조르주 브라크는 피카소와 공동작업을 하며 <에스타크의 집들>을 탄생시켰는데, 만져질 듯한 질감의 표현에서 "입체주의"가 잉태되었다. 원근법 자체를 부정한 브라크는 미술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브라크와 피카소는 함께 작업하며 경쟁과 협력의 시너지로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나갔다. 입체주의는 야수주의를 3년 만에 몰아내고 미술계의 정상에서 자리에 서게 된다. 두 사람은 미술시장의 정복자가 된 것이다.

 

 

 

두 번째 경로선: 지각의 해체


 


인간은 짐승과 초인을 잇는 하나의 밧줄이다. 인간은 다리이지 스스로 목표는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프랑스 살롱도톤에서 야수주의 스캔들이 벌어진 190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에른스트 키르히너'를 주축으로 예술운동이 일어났다.

 

니체의 말에서 따와 스스로를 "다리파"라고 칭하는 예술가들이었다. 다리는 멀리 있는 대상을 연결하는 존재다. 틀에 박힌 아카데미 미술을 거부하는 다리파는 과거와 현재를 이음으로써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했다.

 

다리파 구성원들은 모두 니체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들은 니체의 가르침을 따라 예술의 사명을 믿었다. 그것은 '인간이 문명의 억압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들에겐 아폴론적인 세계, 즉 아카데미가 추구한 이성적인 아름다움은 이미 오래전에 시들어버렸다. 대신 디오니소스적인 본능의 세계를 추구했다. 꿈과 환상, 원시성, 광기, 어린이의 순수성이었다.

 

이들은 원시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반 고흐와 뭉크의 기법을 배웠다. 키르히너와 다리파 구성원들은 이 모델을 순수성이 가득한 어린 소녀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여인이 순수성을 잃고 문명에 포섭되는 것이 코르셋에 갇히는 순간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 화가들은 경찰 조사를 받고 처벌까지 받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미술을 계속 이어갔다.

 

대도시 베를린으로 간 그들은 문화적 충격과 맞닥뜨린다. 교외로 나가면 바로 자연을 만날 수 있던 드레스덴과 다르게 베를린은 삭막한 대도시였기 때문이다. 키르히너는 긴장과 불안이 지배하는 도시의 삶을 거리의 매춘부로써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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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마르크 <동물 풍경>, 1914

 

 

다리파에 이어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그룹이 나오기 시작했다. 원초적인 세계와 감정의 표현에 충실하던 다리파와는 다르게 "청가시파"는 영적인 세계와의 교감을 중시했다. 프란츠 마르크는 <동물 풍경>을 그리며 자연세계와의 교감을 추구했다. 그는 자연세계엔 모두 신이 깃들어있다는 범신론을 믿었다. 그에겐 예술이란 자연 세계를 그리는 것이었다.

 

표현주의 화가들의 움직임으로 서양미술은 중요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더 이상 사람들에겐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만이 미술의 전부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현대미술에서 엿본,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이해하기 힘들고 난해했던, 그 어렵던 현대 미술을 재밌게 설명한 책이다. 당시의 스캔들과 예술계의 전반적인 역사가 적절히 곁들여지니 당대 미술계의 사건사고들이 적힌 이야기책처럼 흥미진진했다. 미술사의 생성점을 짚어 다섯 가지의 선으로 정리한 것은 미술계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토록 현대미술사를 재밌게 읽어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당신도 예술가다.

 

- 요제프 보이스

 

 

예술가들은 과거의 예술과 싸운다. 이들은 과거의 예술이 불편해졌다는 것을, 진부해졌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때 본질의 문제인지 형식의 문제인지 구분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25개의 생성점에서 일어난 사건은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보며 그들이 버린 틀과 새롭게 얻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앞으로 버려야 할 틀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많은 영감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안전한 홈에 있는 것들은 대체 가능해진 이 시대에선 틀 밖에서 생각하기란 필수 요소가 되었다.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넓이의 확장과 깊이는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 통찰력은 분야에 몰두할 때 찾아온다. 고정관념을 멋지게 뒤집어버린 예술가들의 발자취에서 통찰력의 노하우를 볼 수 있었다. 『아트인문학』은 이 시대를 예술가처럼 살기 위한, 더욱 나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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