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벌거벗은 미술관, 고전 미술을 향한 질문

고전 미술을 감싼 베일을 벗기다
글 입력 2021.09.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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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의 미술 에세이 《벌거벗은 미술관》은 우선 고전 미술과 우리 사이에 있던 장막을 하나 걷어낸다. 존재하지만, 모르고 있던 기묘한 장막을 제거함이다. 바로 고전 미술이란 이름을 가진 신비주의다. 작품에 앞서 그저 교과서와 미술 수업에서 강조하였기에, 혹은 막연히 아름답다고 훈련받았기에 중요하게 여겨왔던 태도일 것이다.


《벌거벗은 미술관》 이런 신비주의의 베일을 벗겨내고자 하나, 이 베일을 지목한 후 곧장 들추어내려 들진 않는다. 대신 도서는 우리의 눈을 감싸고 있던 베일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그 기나긴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고전 미술 속 자리한 고전의 본래 뜻을 제시하는 일이 그 첫 번째 단계일 것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 고전의 의미가 '최상의 계층'을 뜻하는 라틴어 'Classicus(클라시쿠스)'에서 왔음을 밝힌다.


여기서 우리는 고전 미술이란 단어를 통해 과거의 미술을 떠올리는 사고가 이미 한 차례 왜곡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애초 아무런 장애물 없이 바라보지 못했던 셈이다. 책의 초반 부 언급된 석고 드로잉이 이 상황을 잘 보여줄 것 같다. 도서는 과거보다 무조건적인 석고 드로잉이 지양되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아직도 미술 입시에서 석고상이 가지는 영향력이 상당함을 밝힌다. 문제는 석고상 자체가 아니라, 그를 그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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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가 인정하듯 우리는 무의식중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떠올릴 만큼 석고상 드로잉에 익숙하지만, 정작 석고상이 정착하게 되는 과정과 석고상이 미의 표본으로 사용되는 이유를 의식 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 도대체 왜 이 석고상이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교재로 작용하는 것인지, 특정한 몇 석고상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인지를 보지 못한 채 그저 드로잉에 매진한다. 아름다움을 가르치고자 마련된 석고상이 아름다움을 묻는 일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도서는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새 시선을 가로막은 베일을 제거한다. 고전 미술의 고전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며, 그 시발점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이상으로 삼아 닮고자 했던 유럽의 오랜 태도를 설명하는 이유기도 할 것이다. 특정한 시공간의 모습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어 지금까지 고전 미술이란 이름으로 머물러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도서는 이렇게 고대 그리스를 기원 삼아 중세를 거쳐 근현대로 이어져 온 '고전 미술'의 수용과 답습 과정을 신체나 표정의 묘사를 통해 천천히 짚어나간다.


고전 미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흐름의 과정을 설명하던 도서는 이후 3장에 들어서며 이들이 현재 우리를 마주하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 흘러간 과거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 그를 담는 공간으로써 탄생한 '박물관'이 바로 3장의 주제어이다. 대개 조용하고 평화로운 지식의 보고로 인식되는 박물관 속 숨겨진 것들을 하나씩 해체해 나가며, 저자는 나폴레옹 이후 본격화된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도서는 현 상황 속 과거의 미술이 보존하고 전달했던 판데믹의 모습과 재난이 예술에 미친 양가적인 영향을 전달하며 미래를 고민한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미래를 향한 고민이야말로 곧 본질적인 책의 의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1장에서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물은 후 도서가 마지막 4장에 이르기까지 예외적인 작품들과 새로운 경향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명 미술사의 흐름을 전달하는 한편, 전통의 흐름 속에서도 그를 벗어난 작품들이 존재했음을 말한다. 그리고 고전 미술이 흘러간 시간을 추억해왔고 그를 고정할 장소마저 고안해내었다고 해도 변화의 과정이 함께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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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아테네 대학당 (School of Athens)>

 

 

고전 미술이란 신비의 베일을 곧장 벗겨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애초부터 그러했다면, 우린 아마 고전 미술이 무엇인지 답하려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눈앞의 베일을 벗기고자 베일을 치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야를 가려 질문의 출발을 막아왔기에 이를 제거하고자 했음이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장애물을 치워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도서는 우리의 단순히 시야를 맑게 하는 일을 넘어,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와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란 궁극의 문제로 나아가려 했음을 밝힌다.


이 문제의식은 곧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일일 것이다. 유럽인들이 미의 이상으로 삼았던 그리스인들은 떠올려보면 좋을 듯싶다. 사실 빙켈만의 맹신과는 달리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플라톤의 《국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이상적인 나라와 인간에 관해 설명하지만, 이들이 현실 속에 없음을 말했다. 그런 플라톤에게 글라우콘은 현실 속에 없는 것이 어떻게 의미를 지니느냐고 되묻는다. 그러자 플라톤은 'Paradeigma(패라데이그마)'를 대답한다. 이는 하나의 본을 의미한다. 즉, 하나의 이상적인 본으로서, 인간이 닮아나가야 할 이상적인 모습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도서가 전하는 내용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고전 미술'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과거를 추억해왔지만 동시에 꾸준히 변화해왔다. 말 그대로 최상의 예술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저자가 지적했듯 현재 우리는 미래를 맞이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미술의 출발점으로서 《벌거벗은 미술관》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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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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