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대하여 [도서/문학]

우리는 왜 세계문학전집을 살까
글 입력 2021.08.3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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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 또한 제조업이다. 마음의 양식일 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 진열대 위의 상품이기도 하여, 내용도 중요하지만 디자인도 중요한 것이 책이다. 독자가 책을 집어 들어 이 책이 살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단계 이전에, 일단 책을 집어 들게 만드는 것 자체에 표지는 상당한 역할을 한다.

 

도서 시장에서 더 중요하게는, 표지가 예쁘면 예전에 이미 읽었거나 빌려본 책에 대한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리커버 마케팅 또한 그 맥락이다. 좋아하는 책을 손에 쥐고 표지의 색감과 그 두께감을 느끼고 있으면 뭔가 그 내용 자체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때 책은 굿즈에 가까워진다.

 

물론 북 커버 디자인의 기능에 단순히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마케팅적 측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렇겠지만 그 이후부터 소설책 표지 디자인은 훨씬 다양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출판업은 제조업이 맞지만, 책은 일반적인 소모품과는 다르다.

 

어느 날 책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주르륵 꽂혀있는 모습이 벽지처럼 느껴졌다. 이참에 민음사 전집의 통일된 책 디자인에 대해 써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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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2006년 이후 연간 100만 부 수준의 판매 부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두드러지는 디자인적 특징은 우선 모아서 꽂아 놓이었을 때 한 번에 눈에 들어오는 색의 배치다. 이는 굉장히 직관적인 창의적 요소다. 이 배치를 보는 사람은 시선을 좌우로 움직이며 어떤 안정감을 받기 때문이다. 책마다 주어지는 고유의 색깔이 있고(워낙 권수가 많다 보니 색깔은 당연히 중복되긴 한다)책의 등 부분에 제목의 배경으로 그 색을 띤 직사각형이 배치된다.

 

책들은 발간 순으로 넘버링 되어, 고유 숫자 순서대로 배치하게 되면 같은 계열의 색깔들끼리 모여 있게 된다. 한 색의 군에서 다른 군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색깔 배치도 자연스러운 편이다. 이는 낱권이 모여 세트를 이룰 때 효과가 배가 되는 디자인으로, 집의 한쪽 벽면 서가에 쭉 꽂아 배치해두면 확실히 ‘있어 보인다.’.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들 보다 책의 판영이 가로로 짧고 세로로 긴 길쭉한 형태여서, 책 자체의 형태도 서가에 보관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이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디자인이 ‘전집’ 으로서 수행할 수 있는 최대의 기능이다.

 

옛날에 방문 판매원들이 책을 팔던 시절에는 아동용 도서집이나 문고집을 사면 책꽂이를 함께 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 시대에 거실의 한 쪽 벽면에 책장을 세워 두고, 그 책장을 세계문학전집이나 유명한 인문고전들로 채워 두는 일은 중산층이 지향하는 삶의 양식과 관련이 있었다. 실제로 그 시절 어른들이 판매원들에게서 사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책 몇 권이 아니라, 자신들의 집을 취향과 교양으로 꾸며줄 중산층 적 이미지의 전형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표지는 전집 세트를 일종의 가구, 벽지로서 기능하는 것 또한 가능하게 한다. 일관되고 멋져 보이는 디자인이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건드렸던 것이다.

 

이목을 끄는 정도를 넘어 북 커버는 책의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는 과정 중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표지는 감상자에게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거나 어떤 문학적 뉘앙스를 전달해야 좋다. 제일 좋은 경우는 내용의 암시나 압축적인 메시지 전달에서 더 나아가, 내용과 연계되어 감상자로부터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감상을 끌어낼 수 있는 표지다. 그러한 가능성을 제시하려면 디자인 자체의 아름다움도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책 표지는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상품으로서의 매력 어필, 내용과 메시지의 압축적인 제시, 그리고 미학적 성취라는 기능들을 종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제 이것들을 기준 삼아 민음사 문학전집의 앞면 디자인을 보도록 하자.

 

제목은 중앙 부근에 색 띠로 위아래가 둘러싸여 있는 상태로 배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큼지막하게 이미지가 배치되어 있다. 배치되는 이미지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고전 명화(그림), 영화 스틸컷(해당 작품이 원작인 유명 영화가 있을 경우 그 영화의 스틸컷이다.), 또는 작품을 쓴 작가의 사진이다.

  

이 이미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내용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창구로서 충실히 기능하는 디자인이다. 나는 이 중에서 첫 번째 경우, 즉 고전 명화의 이미지가 위에서 말한 책의 디자인적 기능에 가장 충실하다고 본다. 독자가 내용과 연계하여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도록 도움주기 때문이다. 나 또한 독자로서 책을 읽을 때는 표지에 삽입된 그림이 작품의 내용을 고려해 굉장히 신중히 선택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전집으로서의 디자인은 훌륭하지만, 작품 하나하나의 개별적 디자인은 다른 문학전집들에 비해 아쉬운 수준이다. 디자인의 상당 부분이 저 이미지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전집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지만, 전집 단위로 구매하는 사례는 이전보다 줄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을 서가에 꽂아 두고 과시하고자 하는 중산층 적 욕망이 서서히 소멸되어 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독서 공간을 전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시의 공간은 어디로 옮겨 갔을까?

 

근래에 들어서 인스타그램이 디자인계의 판도를 바꿨으며, 이제는 어떤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이것이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어떻게 보일까를 고려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전시의 공간이 서재에서 SNS로 옮겨갔다고 생각한다. 당장에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독서나 북스타그램 따위의 단어를 넣어 검색하면 사람들이 저마다 찍어 올린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수많은 표지 사진이 나온다. 이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책을 읽는 이가 다른 사람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새로운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개인 SNS 공간의 이용이 점점 더 증가함에 따라 표지 디자인의 미적 성취는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스타는 사진 위주의 플랫폼이기에, 표지의 미적 측면이 더욱 부각 될 것이다.

 

새로운 플랫폼은 인간의 독서방식에, 그러한 독서방식은 책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다. 인스타로 대변되는 현대적 삶의 형태는 전집 단위보다 개별 단위를 중요시한다. 책들이 꽂혀있는 전체의 그림보다 표지 하나하나의 독자적인 매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디자인은 미적으로 더 풍성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세트로서 통일된 형식의 디자인보다 개별 작품들의 독립적인 디자인에 더 주력해주었으면 하는 바다.

 

 

[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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