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앤디 워홀 특별전 - 대량생산의 미학 [전시]

글 입력 2021.08.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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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람이 만들어도 문화는 사회가 만든다. 문화를 배우면서 자란 사람들은 조금씩 바꾸거나 이전까지 없던 것을 더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덩치를 불린 문화는 새로운 것이 자라날 수 있는 양분을 차곡차곡 쌓는다.

 

과정의 중간에서는 부적절하게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는 썩 괜찮은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몇십 년 전에 유행하던 옷이 지금 다시 유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의 가치는 언제나 일시적이라는 걸 실감한다. 미래의 유행을 정확하게 예견하는 디자이너에게 소름 돋는 때도 곧잘 있다.

 

예술도 결국 역사의 연장선을 채워가는 하나의 점일 뿐이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대중문화; 대량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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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은 작품이 아닌 ‘팝 아트’라는 하나의 장르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량 생산되는 상업적인 물건을 다루는 팝 아트는 경제적인 것을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옴과 동시에 예술을 경제의 영역으로 가져갔다.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장르가 또 있을까 싶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말 그대로 찍어내는 것이 앤디 워홀의 예술이다.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 시장으로 보내듯 앤디 워홀은 예술을 찍어내 감상자들에게 보낸다.

 

그의 아틀리에를 ‘The Factory’라고 이름 지은 것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 나온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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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중문화는 진또배기 예술과 달리 세속적으로 물들고 찌들어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돌 음악이나 인디 밴드의 노래는 ‘딴따라’라고 묶여 폄하 받고,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은 저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수준 높은 것이라 짐작하고 멀어져간다.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편견이 예술적 사대주의를 일반 ‘대중’에게 주입해 자신이 속한 계층 자체를 한 수준 낮은 것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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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흔한 게 아니며 수준 낮은 것도 아니다. 소수가 아닌 대중이 보편적으로 향유하면 그게 곧 대중문화다. 일부만 즐기는지 혹은 보편적으로 누구나 즐기는지에 따라 대중문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그 작품의 수준과는 일절 관련이 없다.

 

캠벨 수프, 바나나, 코카콜라, 메릴린 먼로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공장에서 찍어내 예술 작품으로 바꿔 세상에 내놓는 앤디 워홀의 행태는 사람들의 사대주의적 시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내가 욕을 먹는지도 모르게끔 뒤틀어 표현한다.

 

 

 

있어도 그만, 없으면 아쉬움.



예술은 계륵 같다. 별 필요도 없는데 남 주기는 아깝다.

 

가지고 있어도 딱히 실용적인 이득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탐난다. 그게 예술의 본질이자 매력이다. 우리가 예술이라는 분야에 몸담은 사람을 볼 때 ‘신비롭다’, ‘개성 있다’, ‘묘하게 끌린다.’ 따위의 인상을 받는 게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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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이 없는 것에 큰돈을 쓰거나 인생을 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실용적인 이익을 얻는 것에 인생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남는 것을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은 것에 투자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만족을 모르는 우리 인간은 내가 갖지 못 한 것이나 내가 못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내 반대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앤디 워홀은 그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다. 대량 생산된 ‘상품’을 ‘작품’으로 바꿔놓는다. 꼭 필요한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되면서 새로운 매력을 얻는다. 쓸모 있는 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바꿔놓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꼭 갖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게 그의 능력이자 그의 작품의 핵심이다.


그의 작품 세계가 대량 생산된 상품에 집중하는 것도 맥락을 같이한다. 시장에 공급이 많은 것은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같다. 앤디 워홀의 공장에서는 공장에서 생산된 필요 있는 것을 필요 없는 것으로 대량생산 해 세상으로 보낸다.

 

 

 

앤디 워홀; 진정한 인플루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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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생전 즐겨 사용했다던 카메라를 보자마자 인스타그램 로고가 떠올랐다.

 

그의 작품으로 태어나는 순간 미국 사회 전역으로 퍼지며 대중의 이목을 끌어들이게 되는 것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돼 대중에게 퍼지는 것도 현재의 인플루언서와 SNS의 역할에 비교해봐도 다를 게 없다.

 

디지털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없던 그 시기에 지금의 인플루언서가 하는 일을 수행하던 앤디 워홀이야말로 진정한 인플루언서일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영감을 주기도 하는 것이 팔로워나 좋아요 숫자 따위로 평가받는 지금의 인플루언서보다 그 개념에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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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이나 어록은 ‘세련됨’과 ‘통쾌함’을 안겨준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촌스럽기는커녕 되려 트랜디하다.

 

대량생산을 대량생산으로써 새롭게 재탄생 시키는 예술관은 몰아치는 상대의 주먹을 뚫고 파고들어 똑같은 기술로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복싱 선수를 보는 것 같은 쾌감을 안겨준다. 무심하게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상한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에게 정신 차리라는 일갈을 날린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는 안목은 무료해진 내 시야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넘어가는 시대로 변한 지금도 예술은 아직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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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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