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이 된(Being human) 개, '윌리엄 웨그만 비잉 휴먼展'

글 입력 2021.08.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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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는 뮤즈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귀스트 로댕에게는 카미유 클로델이 있었고, 모딜리아니에게는 잔느가,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는 에밀리 플뢰게가 있었다. 뮤즈는 예술가의 집요한 관찰의 대상이나 무언의 파트너일 수도 있고, 예술가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여기, 자신의 반려견을 뮤즈로 삼은 한 사진작가가 있다.


2021년 7월 8일부터 9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윌리엄 웨그만 BEING HUMAN 비잉 휴먼]展을 개최한다. 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웨그만은 50여 년 전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된 바이마라너(Weimaraner) 반려견을 뮤즈로 삼는다. 바이마라너는 과거 귀족들이 사냥한 새를 물어오도록 길러졌기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고 가만히 있는데 익숙하다. 그 특징 덕분인지 카메라를 응시하며 고고하게 서있던 그의 반려견 ‘만 레이(Man Ray)’(윌리엄 웨그만이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이름을 본 땄다고 한다.)는 그의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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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웨그만 특별전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네덜란드, 한국을 잇는 전 세계 순회전이다. 이번 전시는 윌리엄 웨그만이 자신의 반려견을 찍은 초기의 대표 작품을 비롯하여 희소성이 높은 대형 폴라로이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 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더불어 지금까지 대중에게 공개된 작품 외에 작가가 직접 선정한 50점 이상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한다.


천만 반려동물 가구의 시대다. 나 또한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전시였다. 개와 사진작가가 보여주는 끈끈한 유대감이란 어떤 것일까. 기대를 하며 전시장에 입장했다.


*

 

윌리엄 웨그만은 회화, 드로잉, 사진, 영화, 비디오, 서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명성을 축적한 다재다능한 미국 출신의 작가로 그의 예술성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작품에서 웨그만의 뮤즈로 유명세를 떨친 바이마라너 반려견의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예술의 중심에는 반려견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웨그만의 작품 세계에는 반려견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작가는 엄선된 세트장, 의상, 소품을 통해 입체주의, 색면회화, 추상표현주의, 구성주의, 개념주의를 포함한 예술 사조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웨그만은 다양한 사진 장르에 매료되어 풍경, 누드, 초상, 르포르타주, 패션 포토그래피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윌리엄 웨그만 작품의 주제는 반려견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Being Human 비잉 휴먼] 전시에 등장하는 주부, 우주 비행사, 변호사, 성직자, 농부, 도그 워커 등 각양각색의 의인화된 반려견 모델에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자신감에 찬 위풍당당한 태도에서부터 유약하고 결단력 없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춘 웨그만의 작품을 이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지능의 차이, 본능의 차이로 구별하기에는 동물 또한 그들 나름의 규칙과 조직논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도 동물적인 본능과 속성을 갖고 있고, 학적으로는 영장류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잘 다듬어진 문화적 테두리 안에서 본능을 절제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아래 사회 구성원들에 의하여 생활양식, 즉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학문, 예술 등을 포함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사회 여러 계층에 따른 옷차림, 가면무도회, 사교춤을 추는 사교문화…. 이는 인간들만의 문화다. 동물들은 화려한 옷가지로 피부를 숨기지도 않으며, 걸친 무언가가 그들의 신분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윌리엄 웨그만은 아마 이것을 이용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작품의 주체를 ‘개’로 설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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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Casual, 2002 칼라 폴라로이드 Color Polaroid 24 x 20 inches (61 x 51 cm) © William We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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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 워커 Dog Walker, 1990 칼라 폴라로이드 Color Polaroid 24 x 20 inches (61 x 51 cm) © William Wegman

 

 

섹션명은 <우리 같은 사람들>. 용접공에서부터 농장 소년, 보안관 그리고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바이마라너의 모습들은 다양하다. 개는 인간의 옷을 입고 두 발로 서는 등 여러 포즈를 취한다. 섹션명과 같이 작품 속 바이마라너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 군상의 특징을 드러내는 패션과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개가 표현한다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마리의 개가 인간들의 삶을 묘사하는 모습은 틀을 깨부쉈다. 외모나 성별, 지위나 인종에 국한되지 않았고,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입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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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주의 Constructivism, 2014 피그먼트 프린트 Pigment Print 44 x 57 1/3 inches (112 x 146 cm) © William Wegman

 

 

입체파(큐비즘)라고 하면 우리는 주로 파블로 피카소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1955년 <여자와 개 Woman with Dog>을 그린 피카소는 큐브의 세계를 즐기는 웨그만과 그의 개들에게 조형적 영향을 끼친다. 대상을 철저히 해체ㆍ분석하여 화면을 사변적,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하였던 분석적 큐비즘 화풍을 선호하는 다른 견종과는 달리, 바이마라너들은 주관적이면서도 임의적인 방식으로 형태들을 구성하여 다시 평면적인 것으로 복귀시키는 종합적 큐비즘을 가깝게 느꼈다. 실제 물체를 구성에 포함하고 단순한 형상과 밝은 색상을 사진에 담은 것이 눈에 띈다.

 

위 작품의 제목은 '구성주의'이다. 웨그만의 작품이 주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진을 설명하는 작가의 표현인데, 유쾌한 말장난들이 많아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 또한 그 예로, 구성주의는 20세기 초 러시아 미술계를 이끈 전위적인 예술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사진에서는 마치 21세기 구성주의자처럼 기하학적 균형을 맞추어 흑백 큐브를 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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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Qey, 2017 피그먼트 프린트 Pigment Print 44 x 34 inches (112 x 86 cm) © William Wegman

 

 

바이마라너를 모델로 하여 패션잡지 보그와 콜라보레이션 한 샤넬, 디올, 입생로랑, 마크 제이콥스와 막스마라, 아크네 등 유명 브랜드와 함께 작업한 윌리엄 웨그만의 작품 세계도 엿볼 수 있다. 바이마라너의 진지하고 무표정한 모습, 거기서 배어나오는 시크함, 패션쇼의 모델이 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는 클래식한 정장부터 캐주얼한 평상복까지 아우르며 모델로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웨그만의 작품 <키 Qey>에서 바이마라너는 열쇠모양의 시그니처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다. 그의 패션쇼 활동명 또한 ‘키’라고 하던데, 쇼미더머니 프로그램의 우승자인 듯 단단한 눈빛이 이름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촬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도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로 돌아가 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웨그만

 

 

전시 해설 및 영상을 보며, 윌리엄 웨그만에게 바이마라너란 진실로 인생의 반려가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작품 해설에도 바이마라너를 칭할 때, 그들을 의견이 있는 존재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줌을 느꼈다. 사실 촬영이나 소음이 개에게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마음 한 편에는 염려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는데, 작업 환경을 보니 개는 그의 뮤즈로서, 동업자로서 즐기면서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의적 표현이 가득한 작품명 하나하나가 위트와 센스가 넘쳤다. 여러모로 유쾌하고 반려견을 생각하는 주인의 모습에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전시였다. 작가의 연극적인 상상력과 독특한 작품세계를 확실하게 엿볼 수 있으니, COVID-19 장기화로 지친 일상을 환기시키고 싶다면 한번쯤 방문하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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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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