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ave Inimicum! [사람]

글 입력 2021.08.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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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e Inimicum; 타인으로부터 숨기는 장막을 생성하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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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후드’라는 짧은 소설들이 모인 책을 읽으면서 나를 깨운 문장이 있었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면 간단히 해결됐던 일들도 많았다.

 

- ‘광반사 재채기 증후군(임솔아)’ 중에서

 

 

해당 문장은 주인공의 직장 동료 ‘주은’이 비건을 선언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눈치를 주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주은은 그녀가 비건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를 것을 불편해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면 그녀의 신념을 지킬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오늘은 많은 고백을 하게 될 것 같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것. 나는 목요일 금요일마다 이 행동을 종종하곤 한다. 바로 아르바이트에서 말이다. 음식을 조리하는 일을 하는데 소스를 정량보다 더 많게 넣어 내 임의대로 맞추어 버리는 일, 손님의 요청사항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나갔지만 사장님 몰래 잘 해결한 일, 재료를 바닥에 떨어뜨렸지만 사장님이 이 모습을 봤는지 안 봤는지 어색하게 확인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마음속에서 ‘으악! 불편하다!’를 외치며 나의 실수를 사장님께서 아시고 혼날지도 모르는 불안과 괴로움을 안은 채 일을 한다. 사실 위와 같은 일들은 내가 빠르게 대처해서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면 정말 간단하게 해결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쉽지가 않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의 대표적인 예는 나의 덕질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취향을 내가 먼저 드러내지 않으면 이런 말들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경험했다. 나는 철새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꾸준히, 그리고 자주 바뀐다.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요즘은 내가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묻고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뀐다며 나를 나무라는 말들. 혹은 나의 성향을 드러내버리면 날아오는 문장들. ‘이런다고 걔들은 너를 안대?’, ‘제발 멀리 떨어져 있는 환상을 보지 말고 현실을 봐’. 그들의 열애설이나 구설수가 떴을 때 나에게 그들의 상황이나 나의 상태를 묻는 연락들. 이런 상황들을 많이 겪었기에 나의 일상적인 공간에만 내가 좋아하는 대상들에 대한 감정을 표출한다.

 

때로는 이야기를 하다가 ‘너도 XX 좋아해?’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나의 지인이 나와 동일한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희열을 얻는다.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것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을 겪었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가 밖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할머니 댁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하나의 차를 가지고 여러 명이 사용하기에 차 앞에 휴대전화 번호를 붙이지 않는데 이것을 본 다른 사람은 우리가 괘씸했던 것인지 우리 차의 앞을 막은 채 자신의 차를 떡하니 주차했다. 앞을 막은 차주는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지 않은 채 주차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빼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상대편의 차주는 이미 짜증을 내고 있었다. 다른 널찍한 주차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앞에 차를 대었으며 이렇게까지 짜증을 낼 일인가 그에게 따지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빨리 집을 가길 원했고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연신 사과하면서 그의 만행들을 모른 체했다. 사실 집에 오면서 그 사람에게 다른 주차 공간이 있는데 굳이 왜 그러셨냐고 물을 걸 조금 후회되기도 했다.

 

*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며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능력을 배운다. 하지만 불의에 대해서는 Aparecium(투명 잉크 등으로 숨겨진 것을 보이게 하는 마법) 주문을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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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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