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워커홀릭으로서 산다는 것 [영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글 입력 2021.08.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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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맥아담스와 아담 샌들러의 웃음엔 기본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종류의 어떤 것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소를 지녔기에 나는 그들이 연기하는 영화들을 즐겨보곤 했다. 대표적으로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어바웃 타임’이나 아담 샌들러의 ‘첫키스만 50번째’가 있다. 이외에도 ‘디서비디언스’, ‘펀치 드렁크 러브’ 등은 그들의 숨겨진 좋은 작품들 중 하나이다.


하루는 내가 그동안 보지 않았던 레이첼 맥아담스의 영화들 중 ‘굿모닝 에브리원’(2010)이라는 작품을 우연히 발견해 보게 되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열정과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신입 PD 역할을 맡아서 연기했다. 다른 영화의 앤 해서웨이 역을 떠오르게 하는 배역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배경은 패션업계가 아니라 방송계였고, 그녀는 방송국의 아침 뉴스를 진행하는 PD였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직장에서 사회생활 고참을 만나 주인공 여자가 좌충우돌 성장기를 겪게 된다는 점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나 ‘인턴’이라는 영화를 닮았다. 방송국의 신입 PD인 레이첼 맥아담스(베키 역)는 워커홀릭으로 나오고, 대선배인 마이크(해리슨 포드 역)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는 고집 센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뉴욕의 한 방송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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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대략적으로 이렇다. 시청률이 저조한 아침 뉴스 프로그램의 PD 자리를 열정이 넘치는 신입 사원인 베키가 새로 맡게 되면서 프로그램을 성공가도로 이끌어 나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 기분 전환을 하기에도 괜찮았다. 끝에는 나름의 교훈도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공감이 되는 한편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어 좋았다. 주인공이 사회 초년생이라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취직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매일 회의를 하는 것처럼, 나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매번 스태프 회의를 연다. 그리고 PD가 하는 것처럼 회의를 주도하여 이끌고 공연에 필요한 부분들을 사전에 체크한다. 경력이 그리 많지 않은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사실 부담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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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에 능동적으로 나서서 카리스마 있게 목표를 달성하는 주인공 베키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입사한 뒤로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 현재의 자리에 만족해 나태해진 것은 아닌지.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은 단체를 구성하는 이들에 의해 분위기와 성과가 달라진다. 주요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각 자리에서 맡은 역할들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율과 조정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현장을 지휘하는 매니저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베키가 많은 시련들을 극복하고 마침내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내가 미술관에서 스태프 일을 하던 때의 매니저님이었다.

 

레이첼 맥아담스가 연기하는 신입 PD 베키의 모습을 보면서 그분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당시 매니저님은 자신이 맡은 일에 늘 준비가 돼 있었다. 매니저님의 직업을 대하는 자세는 그분을 따르는 스태프들이 충분히 본받을만한 태도였다. 꼼꼼함과 진중함, 친절함과 능숙함. 매니저님은 이러한 자질들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위에서 말한 능력은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고 문화예술기획 및 운영업 종사자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능력들을 군더더기 없이 수행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적응 과정에서는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고, 돌발상황에 대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매니저의 일이란 게 그러한 것이다.


그 매니저님을 전시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다른 기관들에서 많은 경력을 쌓으신 분이었지만 그곳은 처음이라 긴장하신 모습이 역력했다.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될 경우 사람들은 보통 긴장감을 느낀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된 긴장과 준비가 된 긴장은 분명 다르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자신이 열심히 준비해온 결과물에 대해 긴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의 긴장감은 두려움이란 감정에 가깝다. 준비된 것이 없기에 닥쳐올 일에 대비하지 못하게 된다.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고, 그만큼 실무적인 부분에 있어서 예상하지 못했던 오류가 발생하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첫날 매니저님이 점심시간에 혼자 홀에 앉아 초조해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현장의 상황을 수백 번도 넘게 검토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그들은 자신이 필요한 위치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그 이상의 놀라운 성과를 보이곤 한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과업을 단순 치레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알고, 나아가야 하는 업무의 방향성을 주도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현실과 타협했다고 비방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러한 비방은 공정하지 않다. 이들은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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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베키의 열정과 긍정 에너지가 분명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베키는 마이크라는 방송계의 대선배와 영화 끝부분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그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동안 남자친구인 애덤이 베키에게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면서, 조금 과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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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버지로서 실패했어. 뉴스 잘리기 훨씬 전에. 집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집에 있어도 계속 전화에,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당신은 나보다 더 심해. 당신은 가능하다면 방송국에서 살 수도 있겠지. 결국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 아무것도 안 남아. 아무것도...”

 


자신의 커리어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너무 자신의 세상에만 갇혀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마이크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신입인 베키에게 들려주면서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것은 좋으나, 그러다가는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마이크의 조언은 나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 당장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점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조언은 분명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

 

이번 글에서 내가 집중하여 다룬 것 외에도 ‘굿모닝 에브리원’은 다양한 테마를 지니고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대중성과 순수성, 집단과 개인. 다른 영화들에서도 곧잘 다뤄지곤 하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베키를 보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겹쳐 보였다. 성장 영화나 소설의 좋은 점은 나를 돌아보게 되고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 속의 베키는 나보다 고작 2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인생을 훨씬 오래 산 선배이자 능숙한 회사 선배로 느껴졌다. 그녀를 만나면서 나도 조금은 성장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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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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