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국민 여동생', '여신', '여제' 아닌 '국가대표' [문화 전반]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글 입력 2021.08.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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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뛰고 소리치고 땀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에 메달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뜨거운 응원을 보냈고 열광했다. 나 또한 올림픽을 이렇게 챙겨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경기들을 열심히 챙겨보았다. 나는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다. 운동을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포츠는 남성들의 것이라는 오랜 편견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을 보던 중 한 여성 선수가 득점을 한 뒤 포효하는 모습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충격적으로 멋있었다. 이런 멋있는 여성들이 하는 스포츠 경기가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제대로 즐겼다.


지난 8월 12일,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이하 <국가대표>)가 방영되었다. <국가대표>는 스포츠를 남성의 것으로 규정했던, 나에게도 있었던 편견과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배구선수 김연경, 축구선수 지소연, 골프선수 박세리, 펜싱선수 남현희, 핸드볼선수 김온아, 수영선수 정유인, 이렇게 6명의 선수는 여성 스포츠인으로서 겪은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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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인어’, ‘탁구 여신’, ‘시드니 올림픽 얼짱’, ‘국민 여동생’, ‘미녀 배구 군단’, ‘여제’…. 여성 선수들 앞에 흔히 붙는 꼬리표다. KBS 스포츠 기자 박주미는 여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이런 수식어들이 “여자는 스포츠의 주인공이 아니야”라는 오랜 인식의 연장선이라고 말한다. “여자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추하고 상스럽고 부적절하다”라고 말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말에서 그 편견의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박주미 기자는 이후의 올림픽이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투쟁의 장이 되었다고 언급한다. 남성들에게 당연했던 종목도 여성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에게 운동이 허용된 경우에도 여성들의 운동은 너무나도 쉽게 폄하되었다.

 

선수들의 실력과 경기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해야 할 해설위원조차 ‘여자 선수들이 쇠로 된 장비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결혼하면서 기량이 상승한 것은 (코치인) 남편과의 사랑의 힘인가’, ‘특히 여자 선수, 여자 유도의 경우에는 그날의 컨디션이 아주 중요하다’는 둥 실력보다 성별과 외모를 언급하며 그들의 노력과 전문성을 폄하해왔다.

 

이러한 발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자 배구 경기를 앞두고 “이번에는 여자 배구, 아기자기한 맛의 경기를 보시게 됩니다.”라고 소개했던 과거의 해설이 <국가대표>에 방영되었다. 그리고 방영 바로 이틀 뒤인 8월 14일, 2021 의정부·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경기에서 한 해설위원은 ‘예전 여자배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말했고, 이어 아나운서는 ‘아기자기한 랠리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노력은 지금까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기자기’하다고 치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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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성의 운동은 폄하되어 왔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능력보다는 외모가 먼저 언급된다. 여성 선수는 운동을 하면서 외모까지 신경 써야 한다. 지소연 선수는 축구를 하기도 바쁜데 머리 길이의 문제 때문에 관계자와 다퉜던 일이 있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정유인 선수에게는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있다. 그러나 수영선수로서의 노력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그 몸에 “여자답지 못하다.”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정유인 선수는 한때 근육을 숨기기도 했었지만, 근육을 가린 몸은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이기에 앞서 여성이기에 받았던 시선과 질문은 분명히,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집에 치마가 몇 벌이 있는지, 경기를 웃으면서 할 수는 없는지, 지카 바이러스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는지 따위의 무례한 질문을 견뎌야 했다. 이번 올림픽 도중,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는 짧은 스타일의 머리와 과거의 SNS 게시물로 필요치 않은 ‘페미 논란’을 겪어야 했고, 금메달 3관왕이라는 대단한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모자랄 시간에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여성 선수들의 능력보다 외모를 보는 이 시선은 경기복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육상, 체조, 배구, 비치핸드볼 등 같은 종목이지만 남녀의 경기복은 확연히 다르다. 여성 선수들은 짧고 노출이 심한 경기복을 입어야 했으며, 성적 대상화되어 왔다. 이에 대항해 이번 올림픽에서 독일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은 전신을 가리는 경기복을 입었다. 그리고 “긴 경기복이든 짧은 경기복이든” 근사하게 보일 수 있으며, “여성 모두가 스스로 무엇을 입을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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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는 여성 스포츠의 임금 문제도 다룬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주장 메건 라피노 선수는 남녀 FIFA 월드컵 상금이 10배나 차이 나는 것을 문제 삼아 ‘Equal Play, Equal pay’를 외쳤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미국 남자골프 PGA와 여자골프 LPGA의 상금 차이 또한 6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김연경 선수는 한국 남녀 배구의 샐러리캡을 문제 삼았다. 김연경 선수는 남녀 샐러리캡의 차이가 인기 때문인지, 구단 재정의 문제인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고 말한다.

 

혹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여성 스포츠의 시장이 작아 상금을 적게 받는 것을 왜 남녀차별로 문제 삼느냐’고 따진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단순히 끝날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여성 스포츠 시장이 왜 작은지를 물어야 한다. 단지 우연이었을까? 이는 단순히 임금의 문제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비해야 여러 이윤이 창출되어 시장이 커지고, 상금과 임금도 커진다. 실제로 한국골프는 이례적으로 여자골프가 더 인기가 많고, 상금도 2배가 많다. 한국 골프의 판을 뒤바꾼 박세리 선수의 영향이다. 영국에서 축구도 한때는 여자축구가 더 인기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후 50년 동안 여자 축구 경기가 금지되었고, 1992년에야 첼시 여자팀이 출범되었다. 오랫동안 여성에게 운동을 금지시켰고, 운동을 시작하자 ‘아기자기’하다며 폄하했으며, 지원조차 부족했는데 과연 그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 성장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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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문제는 현역 선수뿐만 아니라 은퇴한 선수에게도 있다. 2020년 기준,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지도자 성별은 여자가 4,386명, 남자는 무려 2만 2,213명이다. 핸드볼 국가대표 김온아 선수는 “여성 지도자의 길이 좁다”며, “왜 메달리스트 언니들이 지도를 안 할까? 자리가 없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말한다. 10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한 한국 여자 핸드볼은 남자 핸드볼보다 국제 대회 성적이 더 좋다. 그러나 지도자는 거의 남성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 핸드볼 8강 경기 작전 타임 도중 강재원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국 핸드볼이 이렇게 창피하다’며 소리를 질러 막말 논란을 빚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 최종 선수 선발에 대한 의문과 감독의 자질에 대한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의 기회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분명 유의미하다.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선수 또한 여성 선수들은 여성 지도자가 더 잘 파악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펜싱 국가대표 감독 중 여성은 없었다고 말한다. 여자 메달리스트는 많이 배출되었지만, 그들이 은퇴한 후에 지도자로서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남현희 선수는 첫 사례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하며 ‘올림픽 2회 연속 감독’이라는 여성 감독 최초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감독 박세리에게 응원을 보냈다.

 

또 박세리 선수는 방송에도 남자 선수들이 유독 더 많이 노출되며, 은퇴한 후에도 여자 선수들이 거의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방송에도 나오지 않고, 지도자도 되지 않는다면 그 많던 여성 메달리스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박세리 선수는 여자 선수들을 더 봤으면, 더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는 언니>라는 새로운 여성 스포츠 방송을 통해 후배들을 지지한다.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노는 언니>에 나와 자신의 종목을 알리고 놀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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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왜 자꾸 여자 남자를 구분해 생각하고 평가하는지 묻는다. 그것을 나누기 전에 가진 능력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박세리 선수는 ‘안 하고 찾지 못하고 시도를 안 했을 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껏 기회가 없었고 제대로 봐주지 않았을 뿐, 여성 스포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기회를 찾으려는 여성 선수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0%였던 여성 선수의 비율은 비로소 도쿄 올림픽에 이르러 125년 만에 49%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수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바꿔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고 말한다. 김연경, 지소연과 같은 실력 있는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자 기존의 불합리한 제도들이 점차 바뀌어 왔다. 안산 선수는 앞서 언급한 논란에 대해 “제 경기력 외에 관한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선수들에게는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부당한 시선과 질문들을 단호히 거부할 권리가 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다 보면 변화는 일어난다.

 

관중으로서 나는 목소리를 내는 선수들을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현역 선수뿐만 아니라 은퇴한 선수들의 행보, 협회나 구단의 운영까지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여성 스포츠를 소비할 것이다. 그렇게 여성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이며, 관중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에 함께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리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멋진 근육으로 뛰고 땀 흘리고 포효하는 여성 선수들의 경기는 일단 매우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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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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