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순간으로 유일한 빛 - 앨리스 달튼 브라운展

글 입력 2021.08.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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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되고 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테헤란로의 각박한 도시 풍경을 뒤로한 전시장에는 찬란한 햇빛과 출렁이는 바다가 수놓여 있다. 탁 트인 뉴욕 전원의 풍경에는 아기자기한 별장과 자연이 빛을 함께 받으며 어우러진다. 빛이 머무는 자리. 집과 나무와 바다에 어리는 빛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사실주의 기법을 바탕으로 50년간 뉴욕에서 활동해온 미술가이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이 오늘날의 회화에서 차지하는 영역은 풍경을 전통적인 풍경화와 사실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그녀의 관심사는 풍경과 사물, 그리고 빛의 표현에 머물러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표현주의, 정밀주의 화가들로부터 영향받은 그녀의 작품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평소에 느끼지 못한 이질적인 감각을 감상자에게 전해준다. 이미 아름다운 풍경을 단순히 감상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을 새롭게 분리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자연의 풍경들에 대해서 새로운 지점을 포착하는 것, 빛이 사물과 호응하는 양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에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alice dalton brown (2).jpg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풍경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달튼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사실주의는 사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들여다본 대상에 대한 작가의 총체적 평가와 관련되는 것이다.

 

달튼의 작품은 우리가 그 동안 놓치고 있었던 사물과 자연의 고유한 매력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 지점에서 그녀의 작품들이 더욱 눈부시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서 멀어진 자연과 휴양의 풍경들, 그리고 주변 사물들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 볼 수 있을 것이다.

 

*


풍경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햇빛이다. 대상에 빛이 닿음으로써 비로소 색채와 형태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모든 회화는 동일하다. 그러나 풍경화에서 대상을 비추는 것은 인공적인 조명이 아니라 햇빛이다. 조명은 항상 대상을 동일하게 비추지만,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이동하고 빛의 방향과 세기는 시시각각 바뀐다.

 

조명 아래의 정물을 동일한 구도로 갖춘다면 정물화를 다시 생산해낼 수 있지만, 풍경화는 순간의 일시적인 모습이고 다시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풍경화 속에 그려진 대상들은, 대자연의 일부라는 이유로 항상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머물고 있을 거라는 인상을 주지만, 실은 그 순간 유일한 모습으로서 존재한다.

 

달튼은 이러한 자연광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예술가다. 길게는 몇 년의 시간에 걸쳐 한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화폭에 담아야 했던 작가로서는 현상의 일시성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장시간의 관찰을 통해 체험한 한 대상을 오직 하나의 시각 속에서 포착하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체험한 하나의 온전한 존재를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해낼지, 그 고민이 새로운 기법과 화풍을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감상자에게도 색다른 체험을 선사해준 것 같다.


전시는 총 4개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섹션에는 작가의 서로 다른 화풍을 만나볼 수 있다. 제 1부 ‘빛과 그림자’에서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 창작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시기에 작가는 찰스 쉴러의 건축 묘사를 비롯하여 사실주의 및 입체주의 회화를 접한 것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햇빛 아래서 건축물과 자연물이 표현되는 양상, 그리고 그들이 호응하면서 나타나는 아우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시작된 시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 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jpg
©Alice Dalton Brown 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 197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67.6 X 127 cm 작가 소장 Collection of the Artist Location: near Cayuga Lake, NY

 

 

제 2부 ‘집으로의 초대’와 제 3부 ‘여름 바람’에서는 빛을 이용한 작가의 독창적인 표현법이 완성되어 특별한 색채를 가진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 2부 ‘집으로의 초대’에서는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독특한 주택들의 이미지를 담아내었다. 뉴욕의 웨스트필드 저택,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 섬의 집 등, 서로 다른 기후에서 포착한 각각의 빛들을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였다. 이들 작품으로부터 휴양지의 온기와 입체감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 3부 ‘여름 바람’에서는 바다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창문과 커튼 사이로 바다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햇빛은 사방으로 산란하며 빛난다. 달튼의 섬세한 붓터치 속에서 이들 이미지가 생동감 있게 감상자에게 다가온다.

 

 

3)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jpg
©Alice Dalton Brown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 199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 154.9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Key West, FL

 

8) 여름 바람, Summer Breeze.jpg
©Alice Dalton Brown 여름 바람 Summer Breeze 1995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78.4 x 127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Friend’s home, Long Island, NY

 

 

마지막 제 4부 ‘이탈리아의 정취’는 작가가 이탈리아에 머물던 시절 경험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담아낸 작품들이다. 주로 뉴욕의 분위기를 담아내던 작가의 기존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형성한다.

 

2015년부터 시작된 작가의 ‘이탈리아 시리즈’는 빛의 표현에 천착해온 뉴욕에서의 작품들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시도이며 이를 통해 파스텔로 표현된 새로운 빛의 양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14) 등나무가 있는 안뜰, Patio with Wisteria.jpg
©Alice Dalton Brown 등나무가 있는 안뜰 Patio with Wisteria 2019 뮤지엄 보드에 파스텔 Pastel and acrylic on museum board 115.6 x 76.2 cm 작가 소장 Collection of the Artist Location: Lucca, Tuscany, Italy

 

 

이번 전시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서 관람해야 하는 것은 자연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있고, 태양이 아닌 형광등 아래에서 모든 대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햇빛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채들은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달튼의 작품들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자연의 풍경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코로나 국면이 장기화되며 휴양의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는 모두에게 이번 전시가 위로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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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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