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짝이는 순간들을 잡아채어 -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

글 입력 2021.08.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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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시멘트 벽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꽃 하나, 저녁 무렵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 아파트 벽에 비친 살랑대는 나뭇잎들이 떠오른다.


나의 경우는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여행을 떠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순간들은 장엄한 규모의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가 아니었다. 동남아의 리조트에 있는 풀장에서 한창 수영을 하다가 지쳐, 타월을 몸에 걸치고 멍하니 수면에 비친 햇살과 열대 식물들을 관찰했던 순간, 어느 봄, 맑은 동해바다가 그리워 막무가내로 도착한 오션뷰 숙소에서 드르륵 커튼을 걷어내자 들이치는 봄바람과 함께 저 멀리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의 수평선과 마주했던 순간, 석양이 들고 있던 지도와 내 손과 발까지 붉게 물들였던 어느 여행의 기억들이 일상을 환기시키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충만한 기쁨을 선사했다.

 

행복은 어디에도 있으나 어디에도 없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반짝거리는 순간을 종종 발견하고 그 기억들로 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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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그 빛나는 순간을 잡아채어 캔버스 위에 구현해낸다. 나뭇잎의 그림자, 노을빛에 물든 테라스, 바람에 커튼이 살랑대는 순간들이 그녀 작품의 주재료가 되었다.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녀의 해외 최초 최대 규모 회고전으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지난 50여 년간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작품 80여점과, 마이아트 뮤지엄과의 커미션 작인 ‘정적인 순간’, ‘설렘’, ‘차오르는 빛’이라는 총 3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는 2021년 7월 24일부터 10월 24일까지 개최되며, 전시는 총 4부로 나뉜다.


1부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ow)에서는 1976년부터 1978년에 제작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초기작을 선보인다.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앨리스가 처음으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로 나아가는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 집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the House)에서는 1979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앨리스가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주택을 다룬 작품을 아우르며, 3부 여름 바람(Summer Breeze)에서는 건물의 경계를 이어주는 공간에서 실내로 무대를 옮겨 집 내부의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을 담았다. 마지막 4부 이탈리아의 정취(Impression of ltay)에서는 2015년부터 화가가 작업했던 이탈리아 시리즈와 이에 영감을 준 과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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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뉴욕을 기반으로, 사실주의 기법에 가까운 세밀화 작업을 해온 화가이다. 그녀의 주로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소재의 관계에 관심을 두며, 두 요소가 만나는 지점의 빛을 탐구한다. 지난 50년간 작가는 건물의 외부와 실내의 경계, 그리고 실내를 옮겨와 빛이 머무는 자리를 그려냈다. 특히 작가가 예순에 접어든 시기부터 친구의 집에서 본 창가의 풍경은 그녀의 인생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가가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여름 바람(Summer Breeze) 시리즈라 불리는 이 시리즈들은, 현재 앨리스 달튼 브라운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여동생의 집 베란다에 뒤 배경으로는 이타카에 위치한 카유가 호수 풍경을 합쳐 새로운 장소로 재해석한 [Long Golden Day]를 비롯하여 아예 작가가 새로이 창조해낸 물가의 커튼 한 자락이 휘날리는 [Late Breeze]등은 현재 우리나라에 아트 프린트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는 여든인 지금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여러 차례의 습작을 그리면서 본 작품에 제작에 몰두하곤 한다. 사진과 같은 섬세한 붓 터치를 한땀 한땀 캔버스에 수놓는 앨리스의 화풍은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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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림자와 계단 Tree Shadow with Stairs 197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67.6 X 127 cm 작가 소장 Collection of the Artist Location: near Cayuga Lake, NY ©Alice Dalton Brown 

 

 

앨리스 그림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공간감이다. 1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들 ‘나무 그림자’는 헛간의 옆면을 수평으로 바라보고 있는, 같은 장소에서 그려진 세 점의 연작으로 그려져 있다.

 

단순한 평면 구도 안에서 추상적으로 묘사된 물체는 빨강, 검정, 흰색으로 단순하게 나열할 수 있지만, 그림자와 빛 안에서 넓은 스펙트럼의 색으로 다시 펼쳐진다. 빨간 벽면과 벽을 가로지르는 흰 선, 벽 위로 드리운 처마와 배수로의 검은 선은 화면을 기하학적으로 나누고 있다. 벽면을 나눈 나무 그림자는 다양한 명도로 일렁이고 있다.


그녀는 건물 외벽에 묘사된 빛의 흐름을 쫓아 같은 공간에 있는 나무 그림자를 다르게 포착해낸다. 이 연작에서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 대상의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으로 밖의 풍경을 유추해낼 수 있고, 더불어 그림자만으로도 시간대의 변화와 빛의 움직임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감지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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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세 번째의 나무 그림자에 주목해보자. 앨리스는 평면적인 풍경에서 멈추지 않고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의 커다란 나무 그림자를 드리워 관람자에게 깊은 공간감을 제시한다. 그림자의 주체인 나무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림을 감상하는 관찰자는 그림자가 드리운 헛간과 나무 사이에 위치하며 눈앞에 놓인 작품의 공간이 확장되어 관람자의 등 뒤로 이어지는 더 큰 공간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공간감이 드러나는 그림은 이뿐만이 아니다. 빛과 그림자로 인해 우리는 그녀의 그림 어디서든 거리감과 공간감을 발견해낼 수 있다. 이번 마이아트 뮤지엄과의 커미션 신작 중 하나인 ‘차오르는 빛’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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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 빛 Lifting Light 2021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54x137cm My Art Museum Collection Location: Cayuga Lake,NY @Alice Dalton Brown

 

 

편평한 면으로 플랫하게 채워진 넓은 면적의 하늘이 눈에 띈다. 앨리스가 묘사한 빛과 그림자의 모습을 보면 마치 사진과 같이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띄고 있는데, 하늘은 비교적 플랫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크게 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수면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이 불어오고, 그 굴곡에 맞춰 드리운 그림자가 순간의 형태를 기록한다.


그 사이로 비치는 실루엣과 내려앉은 그림자의 차이에 주목해보면, 왼쪽 커튼은 화면 가까이로 펄럭이는 형태가 크게 보이며, 진한 실루엣을 갖는 반면, 멀어질수록 그 명도가 약해진다. 이 커튼의 묘사만으로 우리는 공간감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살짝 고개를 들이민 커튼 사이 실재의 나뭇잎들은 층층이 깊이를 표현한다.


커튼 사이의 수면의 색은 전부 다 다른 파랑의 영역으로 묘사한 것과 오랜 시간 관찰하며 파도의 포말을 잡아챈 흔적,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체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했던 인상주의 화풍이 느껴졌다.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서 또 한 번 커튼 자락을 양 옆으로 나눈 액자 형태의 구성이 매력적이다. 마치 영화 속 화가들이 한쪽 눈을 감고 사진 촬영을 하듯 손가락을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 “커튼 사이에는 저 풍경을 넣고 말거야.”라며 작정하고 순간을 잡아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맑은 동해 바다가 그리워 막무가내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고는 종일 커튼을 활짝 열고 너울을 일으키는 모습을 관찰했던 어느 날의 내가 떠올랐다. 쏴아아- 어디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추상적인 표현, 그리고 조화



직전의 ‘차오르는 빛’에서, 반짝이는 수면과 대비되는 편평한 하늘의 표현에 대해 말했다. 앨리스의 그림에서 인상주의 화풍의 느낌을 받았지만 중간 중간에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를 목격하며, 후기 인상주의 스타일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에 작품 설명을 보니,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고갱과 세잔을 연상시키는 후기 인상주의 화풍과 추상 표현주의 등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해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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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이 그림에서 나는 추상적인 형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풀 쪽을 확대해보면, 사실적인 건물의 모습과는 달리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앨리스는 지방에서 자라는 다양한 질감의 식물을 똑같이 묘사하지 않고도 그 느낌을 전달할 방법으로 ‘선형 추상’을 고안했다고 한다.

 

가까이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색의 선이 겹쳐져 잎사귀들이 무수히 채운 공간을 암시해낸다. 점차 작품과 멀어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품을 관찰해보면 어느 순간 선들은 잎사귀가 되고, 그것이 또 무수한 나뭇가지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무 사이로 새어드는 빛은 복잡한 패턴의 그림자를 집의 벽과 기둥, 현관 바닥에 드리운다. 이런 복잡한 패턴의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섬세한 작업을 하는 화가가 나뭇잎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열대 지방의 식물들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그녀의 감각적인 시도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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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 199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 154.9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Key West, FL ©Alice Dalton Brown 

 

 

덧붙여, 이런 시도들 덕분인지 우리는 앨리스의 그림에서 대비되는 것들을 통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빛과 그림자와 같은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과 대비되는 식물이나 배경의 평면적, 추상적인 표현과 주택의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경치가 어우러져 반대되는 요소를 담아낸 것이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다.

 

시멘트 벽 사이에 피어난 꽃에서 우리가 희망과 잠깐의 휴식을 얻듯이, 그녀는 인공적인 구조물 사이에 그림자의 형태로라도 식물을 끼워 넣는다. 앨리스의 그림에서 편안함과 잠깐의 힐링을 얻었던 이유는 내가 일상에서 종종 발견하고 잠시 숨을 돌렸던 장면들과 닮아 있어서일 것이다.

 

 


시선



앨리스는 한 장소를 배경으로 몇 년간 여러 가지 다양한 구도를 실험하며 그림을 그렸고, 같은 장소도 빛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캔버스 속에 담아내는 구도를 바꿔갔다. 그녀의 그림 옆에는 몇 개의 습작들이 함께 할 때가 많은데, 그 습작들은 본 작품을 그리기 전에 연습 삼아 그린 것과 작품을 그리고 난 이후 연구의 목적으로 다시 그린 것 모두를 포함한다고 한다. 앨리스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집요함을 눈치 챌 수 있는 부분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한 시인의 말처럼 같은 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감상이 보다 다채롭고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장소에 대한 누군가의 애정 담은 시선을 따라가서겠지. 구도뿐만 아니라, 같은 장소를 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다른 배경으로 그려 넣은 작품들도 눈에 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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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첫 꽃나무 First Spring Tree 198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 142.2 cm 질과 알렉스 디미트리에프 소장 Collection of Jill and Alex Dimitrief Location: Artist's closest childhood friend's home, Ithaca, NY; tree from Washington Square Park, New York City, NY ©Alice Dalton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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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Dalton Brown

 

 

* 3부의 신작 세 점을 제외하고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지만 PRESS 권한으로 찍은 사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다.


이렇게 구성된 각 섹션에는 QR코드가 준비되어 있었다. 섹션에 어울리는 노래나 ASMR등을 제공해주어 보다 공감각적인 전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대표작인 여름 바람 시리즈 섹션에서는 지니뮤직과의 콜라보를 통해서 자연의 소리와 함께 여름 호숫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캔버스 속의 세계가 바깥으로 확장되어 마치 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명상을 하는 듯 평화로운 느낌을 주었다.


 

넘쳐나는 빛, 화려함.

여름은 강한 인상을 남기고

모든 영혼을 행복으로 몰아넣는다.

 

- 앙드레 지드

 


온 세상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석양, 파도의 포말, 주택가 사이사이 스며든 풀잎 그림자, 넘쳐나는 빛과 화려한 모든 것이 여름과 어울리는 분위기의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숨을 돌리고 휴식을 느끼고 싶다면 마이아트 뮤지엄에 방문해보는 게 어떨까.

 

여름휴가를 다녀온 듯 한층 긍정적인 기운이 돋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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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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