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흙 속에서 피기 위해 몸부림치는 꽃에게 [영화]

소노 시온 - <두더지>
글 입력 2021.08.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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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란 게 그렇게 좋은 건가요? 하나뿐인 꽃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하고 피고 지는 꽃도 있어요. 모든 꽃이 꽃병에서 기다리진 않아요.”
 

 

 

#0



여기, 평범함을 꿈꾸는 소년이 있다.

 

꽃병 속의 꽃처럼, 화려한 색을 뽐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두더지처럼 땅속에 처박힌 꽃이어도 좋으니, 자신의 꽃을 피우기만을 간절히 원했다.

 

스미다는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다. 아버지가 스미다를 찾아오는 날은 돈이 필요한 날뿐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돈을 빼앗아가면서 ‘너 같은 놈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따위의 말을 뱉는다.

 

계속되는 아버지의 폭언을 견디다 못한 스미다는 결국, 우발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비가 계속 내려 모든 흙이 진흙으로 바뀌던 날 밤, 스미다는 진흙 범벅이 된 채로 아버지를 땅에 묻는다.

 

 

 

#1



평범함을 꿈꿨던 소년은 살인자가 되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한다.

 

 
"5월 7일, 덤으로 사는 인생 첫날이다. 먼지보다도 못한 목숨이지만 한 번쯤은 훌륭하게 사용하고 싶다. 사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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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을 마친 후, 스미다는 온갖 색깔의 물감을 얼굴에 바르기 시작한다. 자신도 색을 가진 꽃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려 한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여러 색의 물감이 스미다의 얼굴에 섞인다. 여러 색이 난잡히 섞이면 섞일수록 점점 진흙 색에 가까워진다.

 

이제 다시 진흙이다. 스미다의 꽃은 이곳에서 필 수 있을까.

 

 

 

#2



소노 시온의 영화 <두더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것이 휩쓸려 지나간 후, 일본에서는 허무와 상실에 대한 영화가 주를 이뤘다. <두더지> 또한 허무와 상실에서 출발하지만 종국에는 희망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우리 모두 특별하다’,‘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와 같은 무책임한 위로를 거부한다. 이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선생의 말에 ‘평범 최고’를 외치는 스미다를 통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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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수하기 위해 경찰서로 달려가는 스미다와 그 옆에서 함께 달리며 스미다를 응원하는 차자와의 모습은, 진흙 속에서 피기 위해 몸부림치는 꽃의 모습과 그를 위로하는 완벽한 방법을 보여준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제한적이다. 어줍잖은 해결책은 절망의 재확인으로 돌아올 테고, 미지근한 공감은 동정으로 변질되기 쉽다. 그렇기에, 차자와처럼 ‘힘내’ , ‘너는 진흙 속의 꽃이야’와 같은 단순한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다.

 

언뜻, 차자와의 말은 앞서 이야기한 무책임한 위로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위로는 함께 달리면서 전해지는 위로다. 삶의 바닥을 기는 스미다를 깔보며 던지는 동정이 아닌, 바닥에서 함께 손을 잡고 일어서려는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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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절망에 빠진 이에게 위로를 건네기 전에, 같이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러한 각오 없이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 함께 달릴 수 있는 위로만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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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균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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