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픽토그램 시퀀스, 한마디 말 없이 보여준 '일본' [문화 전반]

2020 도쿄 올림픽의 백미 그 자체
글 입력 2021.07.2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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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3일, 제32회 도쿄 올림픽이 개막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 연기가 발표된 3월 24일로부터 꼬박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난 시간이었다. 취소와 강행, 안전과 노력 등 각자 일리 있는 단어들이 오가며 말이 많았던 우여곡절의 시간 속에서 간신히 개최된 만큼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큰 변화를 자주 마주할 수 있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무관중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응원의 함성으로 가득 찼던 관중석은 소수의 관계자만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선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코로나 속 개최된 올림픽임을 가장 크게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은 개막식이었다. 개최국의 문화를 살려 호화롭고 성대하게 열리기로 유명한 올림픽 개막식은 이번에 큰 규모가 축소되며 보다 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이번 개막식은 각국의 많은 언론사와 네티즌들의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모래 속 진주와도 같이 개막식 속에서 반짝이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픽토그램 시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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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 공식 픽토그램

 



픽토그램은 그림(pi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로, 언어가 달라도 정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대상의 특징을 따 단순화시킨 그림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는 화장실의 성별 구분을 위한 픽토그램과 탈출 비상구의 위치 표시 픽토그램이 가장 익숙하다. 이러한 '간편한 정보 전달성 그림' 픽토그램은 사실 도쿄 올림픽과 아주 긴밀한 역사를 갖고 있는데, 처음 픽토그램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바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이후 올림픽마다 각국의 스포츠 픽토그램이 제작, 사용되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며 처음 픽토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계에 픽토그램을 대중화시키게 된 시발점, 1964년 도쿄 올림픽의 픽토그램을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확실하게 계승하고 있었다. 50개의 올림픽 종목을 표현한 2020 도쿄 올림픽의 픽토그램을 보면 1964 도쿄 올림픽의 픽토그램 디자인과 많은 부분이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몸통을 제외하고 머리, 팔, 다리만 사용한 깔끔한 표현 방식, 완만한 곡선, 가독성 좋은 디자인. 그들의 픽토그램이 도쿄 올림픽의 자부심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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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2인조 코미디 마임 그룹 가말쵸바(GAMARHOBAT)의 히로폰(HIRO-PON)과 마임 코미디 듀오 가베즈(GABEZ)의 히토시, 마사가 이러한 픽토그램을 세 명의 사람이 마임으로 즉석에서 표현하여 개막식을 향한 날카로운 혹평 속에서도 찬사를 받아냈다. 도쿄 올림픽 픽토그램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둥근 파란색 마스크를 머리에 쓰고, 몸통은 흰색, 팔과 다리는 파란색인 옷을 입어 단 5분의 시간 동안 사전 촬영한 영상과 즉석 마임으로 50개의 스포츠 픽토그램을 모두 구현해낸 것이다.


표현이 간결하다는 것은 그만큼 조금이라도 다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과 같다. 세계 지도에서 섬을 하나둘 안 그리는 것은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알파벳을 쓸 때 선 한두 개의 차이가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픽토그램 시퀀스는 보면서 감탄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몸짓, 발짓 하나하나에서 카메라 무빙까지 동작 모든 것이 깔끔하고 명확하게 픽토그램을 완벽히 구현시켰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놀라웠던 점은 이러한 픽토그램 시퀀스에 대한 SNS 피드백 중 '일본스럽다', '일본답다'라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도쿄 올림픽이 개막하기 전,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는 개막식에서 일본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같은 서브컬쳐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반농담조로 자주 이야기되었다. 그렇게 어떠한 대상에 대한 특징을 이야기할 때에는 주로 시각적으로 명확하고 눈에 띄는 이미지들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의 픽토그램 시퀀스에서는 모습 그 자체만 봤을 때 '일본스러움'을 찾기 어려웠다. 당연한 이야기다. 스포츠 픽토그램을 어떠한 꾸밈없이 고스란히 구현해낸 모습에서 어떻게 한 국가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영상 자체에서도 일본의 전통을 이미지화시킨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사람 세 명과 흰색과 파란색만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픽토그램 시퀀스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일본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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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토그램 시퀀스에서 굳이 전통적인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일본스러움'을 느끼게 해준 부분들이 너무도 많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를 키워드로 나타내자면 자연스러움, 유쾌함, 과장성, 캐릭터성 등이 있다.


아이돌 팬덤으로부터, 혹은 TV 시청자들로부터 한국의 K-pop과 일본의 J-pop 아이돌의 차이로 자주 이야기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완벽함'이냐, '자연스러움'이냐다. 한국은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해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깔끔하기를 바랐고, 이는 아이돌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칼군무라는 이름 하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지는 아이돌들의 춤이 이를 증명한다. 타이밍은 물론이고 각도, 파워 모든 것이 최상에 있기를 바랐고, 이것을 거뜬히 해내며, 이는 보는 이들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에 비해 일본은 완벽함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아이돌에서도, 그 외 다른 퍼포먼스에서도 편안함을 추구한다. 극강의 완벽함 대신 잘하면 잘하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유쾌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익숙하다. 유의할 점은 이것이 절대 허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노력은 보는 이들에게 확실히 와닿는다.


이러한 부분은 픽토그램 시퀀스에서도 나타났다. 단 세 명으로 이뤄지는 마임 속 카메라의 무빙이나 사람들의 움직임, 모두 바삐 움직이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배경 또한 깔끔하게 처리하는 대신 무대 아래 서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다. 그 때문에 깔끔함보다는 급박함과 현장성이 시청자들에게 더욱 크게 와닿았다. 마임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은 중간 배드민턴 픽토그램을 표현하는 도중 라켓을 떨어트리는 실수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오히려 일본스러움을 살렸다. 그 누구도 픽토그램 시퀀스를 보며 지저분하거나, 허술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그들이 그렇게 급박하게 움직이면서도 확실하게 해낸 퍼포먼스를 칭찬했다. 아티스트의 실수에는 인간미가 넘친다며 오히려 재미 포인트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퍼포먼스 중간 스태프의 모습을 실수로 보여주는 척하면서 옷에 그려진 픽토그램을 보여준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모습 모두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속에서 유쾌함을 찾는 일본의 특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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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캐릭터성과 과장성도 일본스러움을 나타내는 데에 한몫했다.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모두 확실한 캐릭터성과 함께 표정이나 행동, 말투 등을 과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번 픽토그램 시퀀스에서도 이러한 점은 확실히 나타났다. 흰색의 옷과 마스크를 쓴 아티스트가 밝고 활기찬 캐릭터성을 갖고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퍼포먼스 도중에 크게 박수를 치며 신나하는 모습, 아티스트들이 유도, 복싱 등 픽토그램을 구현하며 결투하는 도중에도 혼자 도복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듯한 모습 등을 보여주며 사람들이 '귀여움'을 느끼게 하고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드라마만큼의 오버액션은 아니지만, '일본스럽다'라고 느낄 만큼의 과장된 행동들과 함께 말이다.


이러한 퍼포먼스의 편안한 분위기는 보는 이들이 보다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며 '일본스러움'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기획을 공부하는 사람이기에 이번 픽토그램 시퀀스를 보면서 감탄을 내뱉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저렇게 말 한마디 없이, 전통적인 이미지 하나 없이도 저렇게 일본의 특징과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이미지를 내보이기는 쉽다. 유카타를 입히고, 경단을 손에 들고, 벚꽃을 끼워 넣으면 누가 봐도 일본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도 뻔했을 것이다. 그런 뻔하고 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일본 없이 일본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아득해진다.


유튜브 댓글에 '아베 총리가 일본을 강행한 이유는 이 픽토그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 정도로 신박하고, 유쾌하고, 대단한 퍼포먼스였다. 아마 이번 픽토그램 시퀀스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화자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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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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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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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강
    • 글쓴이 입니다. 독자 한 분 께서 저에게 '아날로그'도 말씀해주셨는데 제가 잊고 있었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여기에 댓글 남깁니다. 현재 기술의 발전은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너무 급속도로 발전하는 탓에 아직 아날로그가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일본에는 아직 화려한 신기술보다는 아날로그를 즐길 줄 아는, 아날로그 감성이 큰 곳입니다. 이것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으로 연결지어져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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