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호른의 모든 색깔을 만나다: 김홍박 호른 리사이틀 '컬러스(Colors)'

글 입력 2021.07.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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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그리고 심각한 코로나 상황. 이 두 가지가 겹쳐 올 7월은 그야말로 긴장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덥고 습해지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답답해지면서도,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모든 것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특히 7월 17일 김홍박 호른 리사이틀을 고대하고 있었기에, 혹여 공연이 취소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7월 16일 공연 직전날까지도 이어졌다. 실제로 2020년에는 공연 바로 전날인데도 불구하고 공연이 취소되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7월 16일 저녁까지도 별다른 공연 취소 연락이 없어서 안도하는 마음으로 17일 토요일 저녁을 기다릴 수 있었다.


늘 그렇듯 공연장을 가기 전까지 예정된 레퍼토리들을 미리 들어보았는데, 정말 다양한 느낌이 가득한 프로그램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원을 들어보니 어떤 프로그램에선 호른의 따스한 음색이 느껴지다가도 또 다른 작품에선 포효하는 거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글프고 애수 어린 음색으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레퍼토리도 있었고, 밝고 통통 튀는 소리로 경쾌함의 끝을 보여주는 선곡도 있었다. 그래서 컬러스라는 이번 리사이틀의 이름처럼,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호른의 여러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주고자 선곡했다는 점을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실제 공연을 다녀오고 나니 더 놀라웠던 것은, 음원으로 듣던 것은 역시 새발의 피였다는 점이다. 어느 공연이나 음원이 실연을 따라잡을 수 없는 건 맞지만,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보여준 호른이 공간감과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PROGRAM


펠릭스 드레제케 /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로만체, 작품32

Felix Draeseke / Romanze for Horn and Piano Op.32


폴커 다비드 키르히너 / 세 개의 시

Volker David Kirchner / Tre Poemi


잔느 비녜리 /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7

Jane Vignery / Sonata for Horn and Piano Op.7


Intermission

 

외젠 보자 / 정상에서

Eugene Bozza / Sur les Cimes

 

프란츠 슈트라우스 / 고별

Franz Strauss / Les Adieux


파울 힌데미트 /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장조

Paul Hindemith / Sonata for Horn and Piano in F Major



 

 

첫 곡은 펠릭스 드레제케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로만체 작품번호 32'였다. 리스트와 바그너와 함께 신독일악파에 속하는 드레제케는 독일 나치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연유로 친나치 음악가로 치부되어 후대에 저평가되었던 음악가다. 그러나 드레제케의 낭만적인 선율은 결코 저평가되어 끝날 음악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로만체만 해도 낭만적인 정서가 가득한 가운데 호른이 그 감정선을 점점 고양시켜 나간다. 호른의 음색이 얼마나 부드러운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적당한 무게감과 아름다운 선율이 어우러져, 이번 리사이틀의 포문을 여는 곡으로 아주 제격이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폴커 다비드 키르히너의 '세 개의 시'였다. 키르히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 영감을 받아 '오르페오'라는 호른과 피아노, 바리톤을 위한 연작가곡을 작곡했는데, 그 작품에서 다시금 파생된 것이 바로 이 '세 개의 시'라고 한다. 낭만주의적인 주제를 아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이 음악은 음원으로만 들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공연장에서는 훨씬 더 놀라웠다. 첫 곡을 연주할 때보다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피아노 쪽으로 더 가깝게 다가섰는데, 호른의 나팔관과 피아노의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 가까워져서 그로 인해 공명하는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1악장에서 느낀 그 소리의 공명에 놀라고 나면, 2악장에서는 포효하는 호른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야말로 김홍박의 비르투오소적인 면모가 폭발하는 대목이었다. 마지막 악장은 서글프제 침잠하는 느린 악장으로 앞선 두 악장과는 또 다른 호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부의 마지막 작품은 제인 비녜리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 7'이었다. 이 작품에선 특히나 호른으로 구현되는 생명력과 생동감이 일품이었다. 1악장에서는 호른의 팡파레를 비롯해서 익살스러운 주제 선율 등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김홍박이 이처럼 익살스럽고 생기 넘치는 선율로 흘러간다면, 김재원은 서정적인 선율로 또 다른 분위기의 전환을 일궈냈다. 2악장은 애수어린 노래로 가득하다. 그러나 다시금 3악장에서, 호른과 피아노는 뛰노는 어린 아이처럼 끝없는 생동감을 내보였다. 춤곡처럼 리듬감 있는 피아노 반주와 호른의 다채로운 표현들로 가득한 3악장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김홍박과 김재원이 마지막 음을 끝맺는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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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첫 곡은 '정상에서'였다. 이 작품은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작곡과 교수인 외젠 보자가 작곡했는데, 그는 이 작품 속에 20세기 중반 당시에 나오기 시작했던 호른 연주 기법들을 다양하게 녹였다고 한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점, 작품 초입과 말미의 카덴차 그리고 테크닉 구사와 정서적인 표현 사이에서 매순간 연주자의 분별력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작곡되어 있어 굉장한 난곡이라고 프로그램 북에 쓰여 있었다. 호른의 초절기교 같은 작품일까. 호른 연주를 잘 모르다보니 공연 전에 미리 들을 때에나 공연장에서도 굉장히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테크닉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요구되겠지만 호른의 풍부한 표현력이 상당히 강조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김홍박의 연주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고별'을 연주했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표제대로 선율이 흘러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낭만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표현들은 매 패시지를 감상적이게 만들었다. 특히 이 작품의 서정성은 그 낭만적인 선율들이 호른의 긴 프레이즈로 이어지면서 극대화되었다. 호른의 기교 측면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곡이 아닐지 몰라도, 안정적으로 긴 호흡을 유지하는 능력과 감정표현을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는 점에서 연주자에게 쉬운 곡은 아닐 것 같았다. 따뜻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서글픈 고별 속에서,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호른만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리사이틀의 마지막 곡으로, 김홍박은 파울 힌데미트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장조'를 선곡하였다. 호르니스트들에게 스탠다드 레퍼토리로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미리 들어볼 때부터 굉장히 난해하게 느껴지는 곡이었다. 공연 전에 미리 이 작품을 들으며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가 반주에 그치지 않고 호른과 비등하게, 아주 어렵게 작곡된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1악장은 드라마틱하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압축된 소나타 형식이라고 하는데, 이걸 캐치하기엔 작품의 구조가 너무 어려웠다. 2악장은 다소 느리게 환기된 분위기에서 오묘하게 진행되며 펼쳐지는 일련의 선율들이 비범하다. 마지막 3악장은 가장 활기 넘치는 분위기다. 마지막 순간까지 리듬감을 놓치지 않고, 끝없이 변주되다가 화려하게 끝났다. 듣고 완전히 소화하기엔 분명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그 비범한 작품 내용과 연주는 완전히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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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강화된 거리두기 방역지침으로 인해, 현 시점의 공연들에서는 앵콜 무대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객석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에 거듭 인사하다가, 마지막에 무대로 다시 나와 관객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코로나가 심각한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찾아준 관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정부 지침 상 앵콜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그가 해주어서 관객들은 이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분명 공연 전까지 연습하면서 앵콜곡도 준비해 두었을 텐데, 연주자도 아쉽겠지만 듣지 못하는 관객들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듣지 못하는 관객보다 그 곡을 연주할 수 없는 연주자의 아쉬움이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오랜만에 앵콜곡 없이 챔버홀을 나서면서, 왠지 모를 허전함을 그런 생각으로 다독였다.


황금빛 너머 호른의 모든 색깔을 꺼내겠다는 포부로 컬러스라는 타이틀을 내건 김홍박 호른 리사이틀은 참 다채로웠다. 호른이 주는 그 공간감이 부드럽게 관객들을 감싸기도 하고, 압도적으로 덮쳐오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팔색조의 매력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호른 리사이틀을 간 게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새삼 호른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색을 지니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연주하기 어려운 이 악기로 따뜻함과 날카로움, 뜨거움과 차가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의 모든 면면들을 보여준 호르니스트 김홍박의 비르투오소에 완벽하게 압도되는 무대여서 더욱 좋았다.


코로나 상황이 좀 안정되면,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곧바로 노르웨이로 출국할까?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호른 수석인 만큼, 시국이 안정된다면 그는 아마 유럽으로 돌아가 무대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래도 국내 무대에서도 그의 또 다른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호른의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 김홍박의 다음 무대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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