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메리칸 셰프 – La Vie Boheme! [영화]

셰프 칼 캐스퍼, 그리고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7.1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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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상경하여 자취를 시작한 친구의 원룸에 놀러 갔다. 친구는 나에게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를 추천했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이 가졌던 꿈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하고도 아름다운 일인지 말해주었다.


나는 <아메리칸 셰프>를 이미 몇 년 전에 보았지만, 영화의 줄거리부터 인물관계까지 유창하게 늘어놓는 친구의 설명을 듣다 보니 한 번 더 보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내가 잊었던 영화 속의 장면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2021년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상을 얻게 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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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셰프(원제: CHEF)>는 <아이언맨>, <라이온 킹> 등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존 패브로’가 감독과 각본, 제작, 주연까지 모두 맡은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인 셰프 ‘로이 최’의 실화(그는 미국에서 푸드 트럭을 몰며 한국식 타코를 팔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로이 최의 조언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 한국 음식 재료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미국의 유명 셰프인 ‘칼 캐스퍼’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요리 평론가와 크게 다투고, 자신이 근무하던 식당에서 해고된다. 이후 그는 이혼한 아내의 전남편으로부터 푸드트럭을 받아 옛 직장 동료와 함께 미국 각지에서 쿠바 샌드위치를 팔기 시작한다. 캐스퍼의 아들은 SNS를 이용하여 푸드트럭을 홍보하고, 그들의 푸드트럭 사업은 점차 명성을 얻어 성공 가도를 달린다.


<아메리칸 셰프>는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애와 매력적인 캐릭터, 희로애락이 촘촘하게 담긴 줄거리를 잘 버무린 영화다. 무엇보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을 훌륭한 미장센으로 담아내어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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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 허기가 지는 건 확실하지만, ‘푸드 포르노’와 같이 말초적인 자극만을 꾀하는 작품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야기의 맥락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알맞은 요리가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장면들은 인간의 순수한 행복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내가 요리를 삶의 동반자로 삼은 이유 또한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아메리칸 셰프> 속의 요리들을 나열해보자면, 심야의 허기를 달래주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치즈를 듬뿍 담은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이 영화의 핵심인 쿠바 샌드위치까지. 이 세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jpg

* Pasta Aglio E Olio

레몬과 파슬리를 듬뿍 넣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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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illed Cheese

주인공은 빵의 가장자리를 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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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banos

미국 각지의 향토음식을 곁들여 판매한다,
푸드트럭에서 쿠바 샌드위치를 파는 가족이라니, 이보다 낭만적일 수는 없다.

 

 

사실 이 세 가지 요리는 주인공 칼이 레스토랑에서 만든 화려한 요리에 비하면 아주 간단한 것들이다. 원재료와 주방 도구를 다루는 방법을 능숙하게 익힌 사람이라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요리들이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보다 더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격식을 차린 공간에서 공들여 만든 음식을 호화롭게 즐기는 것만이 매일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허술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음식에 행복한 기억이 담길 때가 있다.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이 뜨거운 여름밤의 열기를 떠올리게 만들고, 팔팔 끓여낸 라면의 냄새가 한강 둔치에서 바라본 저녁노을의 기억과 이어지는 것처럼. 한 그릇에 담긴 소중한 인생을 맛보는 것, 그것이 바로 ‘소울푸드’의 매력이다.

 

<아메리칸 셰프>에서 칼은 사장의 압력을 받아 가며 식당에서 일해야 했다. 고용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해고당할 수밖에 없기에, 그는 메뉴를 바꾸지 말라는 사장의 명령에 굴복해야만 했다. 셰프가 타성에 젖었는데 화려한 모습의 정통 프랑스 요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혼이 담기지 않은 음식을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요리사에게는 정말 큰 고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소울푸드에 담긴 ‘소울’을 찾아 떠나는 한 인간의 수더분한 여행기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나는 주인공 칼을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꼈다. 꿈을 되찾기 위해 불확실성에 뛰어드는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리고 음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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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음식을 좋아한다. 요리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 실력을 쌓아 요리 대회에도 나갔다. 그렇게 요리하는 사람을 꿈으로 정하고 나니 요식업 종사자를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이 나에게도 붙는 것이 느껴졌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에는 포기하는 삶을 살까 봐 두려웠고, 진로 고민을 깊게 하지 않은 채 그저 주변의 조언에 휩쓸려 요리의 꿈을 접었다.


나는 요리 대회에 나갔을 때 한식을 주로 선보였는데, 꽤 뛰어난 솜씨로 음식을 만들었다. 플레이팅 실력은 좋지 않았지만, 음식의 간을 잘 맞춘다는 칭찬을 종종 들었다. 오세득 심사위원으로부터는 중학생의 손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훌륭한 요리(궁중 한식)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얻었다. 그렇게 예선과 본선을 거친 뒤에는 결승에서 엉겁결에 우승을 차지했다.


내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만났던 참가자들이 기억난다.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4살 위의 형, 누나들이었다. 그중에서 결승전에 함께 진출했던 형의 소식을 최근 인터넷으로 접했다. 그는 미국 요리 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후, 한국 요식업계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6개 이상의 지점을 내었다. 그 형은 이제 수십억의 연 매출을 바라보는 기업의 CEO가 되었고, 유명 TV 프로그램에도 셰프로서 출연했다.


형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마땅하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침울해졌다. 나도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뒤에 요리 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있었고, 여러 방송사에서 섭외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거절하고 요리사의 길을 포기했건만, 이제 와서 타인의 성공을 보니 내가 내렸던 결정이 다소 후회스러웠다.

 

 

서울의 밤.jpg

 

 

이과생이 되었다가, 공대에 가고, 예술을 하겠다면서 연극 연출을 배웠던 나의 과거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도 4년이 지나면 그 형처럼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다.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과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고 그 분야에 노력과 집중을 기울여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권위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나만의 권위를 쌓아놓아야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나는 마땅한 권위도 별로 없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권위 따위에 집착하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 고급 레스토랑의 헤드셰프라는 권위를 흔쾌히 놓아버리고 푸드트럭 아저씨가 되어 더 행복한 삶을 얻은 <아메리칸 셰프>의 칼 캐스퍼처럼.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부와 명예를 얼마나 쌓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혹은 학력이나 외모일지도 모른다. 대중은 수많은 잣대로 개인을 평가한다. 나는 아직도 이 시스템이 두렵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평가를 받게 될 것에 대비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는 한다. ‘나름대로’.


그래서인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를 올곧게 따라가는 이들의 야심 찬 도전기는 비록 뻔한 내용일지라도 항상 나를 설레게 만든다. 마치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한 집시들처럼, 소란을 피우고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가는 누군가를 보면 그 모습에 나를 덧대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때로는 사람들이 터무니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겠지만, 그래도 내 꿈은 La Vie Boheme(보헤미안의 삶)이다!


 

너희가 정한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 La Vie Boheme!

 

- 뮤지컬 <렌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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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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